[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쉽지 않은 중앙박물관 용산 부지 선정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쉽지 않은 중앙박물관 용산 부지 선정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5-03-30 16:05
  • 승인 2015.03.30 16:05
  • 호수 1091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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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반대론자의 억지 주장

새 박물관 부지선정은 매우 어려웠다. 첫 번째 예상부지는 지금 현대미술관 서울관 자리였다. 이전에 보안사와 국군통합병원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종친부가 있던 자리였다. 두 번째 예상부지는 지금남산 밑 한옥마을이었다. 이곳엔 수도경비사령부가 있었다. 세 번째 예상부지는 지금의 국립도서관 자리였으며 여기도 군부대가 있었다. 세 곳 다 현지에 가서 여러 가지 검토해 봤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지어 긴 앞날을 봐야할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로는 좁아서 적당치 않다는 판단이 나왔다.

다시 여러 곳을 찾던 중 관리과 김중곤 과장이 찾아낸 곳이 현 부지인 용산 미8군 골프장부지였다. 이 부지는 미8군이 사용하다 일단 관리를 국방부에서 하고, 서울시에서 시민공원으로 대략 정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현장에 가 보았더니 10만평 넓은 대지에 우측으로 엇비슷한 뒤에 남산이 있고 앞에 한강이 흐르고 앞이 탁 트인 넓고 적절한 부지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부지문제로 총무처, 문체부 등에 문의도 해 봤지만 답변이 없었다.

찾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우리 자신의 일이고, 열심히 찾다보니 훌륭한 부지가 김준곤 과장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부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였다. 정부의 재산 재정관리 등을 잘 아는 문체부내의 문화재관리국 등 여러 부서 사람에게 물었더니 총리실 산하의 용산관리위원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는 국방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니까 국방부와 협의해 관리권을 이양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용산관리위원회는 최고위층이 모이므로 모이기 어려웠다. 또 상설이 아니라서 어떤 안건이 있어야 특별히 모였다. 때문에 거기 상정하려면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을 만나서 이야기를 건넸다. 이 장관은 “국립박물관 사정을 알겠으나 국방부로서는 그 땅을 매각해 군 장교아파트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양해해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우리 관리과 과장이 또 낭보를 들고 왔다. 용산위원회도, 국방부도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재무부에서 국가재산을 관리했는데 지금은 경제계획원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계획원에 품의해서 용산부지의 관리권만 이양받으면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문체부를 통해서 용산부지의 관리권 이양을 품의 했다. 일주일도 안 돼 그 부지의 관리를 이양 받았고,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로 확보됐다. 역시 찾는 자에게 길이 있게 마련이었다.

겨우 부지를 확보했더니 이제 반대론자들은 “용산 부지는 골프 치러 자주 갔는데 비만 오면 물 바다가 되더라”며 “습지와 같은데 거기 박물관을 세우면 유물이 모두 손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강과 아주 가까워 한강이 범람하면 물바다가 될 것이니 절대로 부적합하다”고 우겨댔다.

그뿐 만이 아니라 “수십만 점의 유물을 두 번씩 옮겨 다니면 유물에 손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특정한 언론사는 “총독부 건물 철거비용이 3000억 원이나 되는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그 위대하고 아까운 건물을 왜 허물어야 하는가”라며 연일 철거 반대의견을 쏟아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고 일부러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첫째로 용산 부지가 습지와 같다고 하고 한강과 가까워 매우 위험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우리는 용산 부지를 관리·이양 받아 수 십군 데를 검사해봤다. 상당한 깊이까지 사력(모래와 자갈)지대였고 그 아래 암반이 있었으니 습지도 아니었다. 다만 미8군이 사용하는 부지 중 용산 골프장 부지가 가장 낮아 표고가 약 13.30m 정도였다. 그 앞 큰 도로의 표고는 14m정도였으니 비가 많이 오면 일시적으로 물이 고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년간 한강의  대홍수 주기 수위는 14m65cm였다. 따라서 용산 박물관 건립부지의 높이를 14m65cm보다 10cm쯤 더 높이면 큰 문제가 없다. 지하실을 만들지 않으면 더욱 안전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초층의 방수를 철저하게 하기로 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세느 강변과 아주 맞닿아 있다. 또 세느 강 바로 경변에 프랑스의 중요한 건물이 여러 채가 서 있다. 미국 스미스 소니안 인스티튜트도 허드슨강변에 있다. 반면 우리 용산 신축박물관은 한강변에서 2km나 떨어져있다.
 

▲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청화백자 파초분재매란국문준

18세기전반 / 높이23.2cm / 국립중앙방물관 소장

조선시대는 청렴결백과 검소검박함을 이상으로 한 사회였다. 따라서 사치하고 치장하고 진귀한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는 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그러나 문인 묵객이 꼭 필요로 하는 종이·붓·먹·벼루에 대한 애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기 따르는 연적, 필통, 필가, 묵상 등과 서책, 화첩, 서첩, 서화, 고동기, 보검, 거문고 등 악기등에 대한 애완이 따르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취미를 문방, 청공, 청완(文房 淸供 淸玩)이라 해 고상한 문인취미로 일컫게 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석류, 파초, 대나무, 매화, 국화, 연과, 모란, 패랭이, 신선초 등을 화분에 심거나 괴석을 곁들여 심기도 했다. 이를 별당과 사당에 놓거나 후원이나 창밖에 심어 완상하는 풍조가 18세기 이후 널리 퍼져 부상 역관 등에게까지 일반화 됐다.

이 준은 18세기전반기의 기형에 종속문으로 준(키큰항아리) 등의 밑에 많이 그리는 연판문을 어깨에 그렸다. 그 밑 항아리 전면에 화분에 심고 탁자에 받혀놓은 풍성한 파초그림이 주 문양으로 가득 차있다. 다른 면에는 매화와 난초, 국화를 그렸다. 활짝 퍼진 싱그러운 파초와 이와 어울어진 매화, 난초, 국화가 생동해 그 향기가 퍼져 나올 것 같다. 18세기의 고상하다고 할 생활 취미를 엿볼 수 있는 흥미 있는 귀한 청화백자 준이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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