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이 4.29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중대 기로에 섰다. 야권 재편성과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그다. 한때 야당의 대권주자였고 당 대표도 장관도 역임한 정 전 의원의 탈당은 그만큼 야당사에 정치적 의미가 깊다. 그럼에도 국민모임 측에서는 오는 4월 재보궐선거에 정 전 의원이 출마해 야권 재편성의 불쏘시개가 되라고 압박을 가했다. 출마 자체가 야권 분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고 불출마할 경우 국민모임 내에서 리더십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생명을 건 정 전 의원의 선택지를 따라가봤다.
- 세속적인 정치인 생명 이미 끝났다?
- ‘야권재편 밀알론’vs‘호남기득권 타파’
국민모임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최근 정 전 의원의 출마와 관련해 한 언론 매체를 통해 국민모임이 보는 정동영에 대한 시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손 교수는 “정치인 정동영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정치인 정동영은 잘한것도 많지만 결점투성이 정치인으로 생각한다”며 “그런 정 전 의원이 현재 민생파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문을 발표하고 여의도를 떠나 용산과 쌍용차, 세월호 등 가장 고통 받는 민초 속으로 내려와 같이 하기 시작하면서 세속적 의미의 정치인 정동영은 죽었다”고 전제했다.
“새 정치인 정동영 지금 새로 태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치인으로 정동영은 지금 새로 태어나고 있다”면서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새로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손 교수는 “국민모임의 실험이 실패할 수 있고 새정연을 탈당한 정동영의 세속적인 정치생명은 끝났다. 그러나 정반대로 새정연에 앉아 있는 정 전 의원의 정치생명은 이미 끝나 있었다”며 재보선 출마와 정 전 의원의 정치생명은 무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전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나오면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밀알이 되겠다”고 밝힌 탈당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손 교수의 이런 주장은 권노갑 전 고문이 관악을 재보선 출마설에 휩싸인 정 전 의원을 겨냥해 “야권 분열을 일으킨다면 정치생명은 끝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한 반박문에서 나온 주장이다.
하지만 정 전 의원 개인을 둘러싼 정치적 현실은 선뜻 출마하기에 녹록치 않다. 현재의 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당 대표에 대권 주자까지 된 정 전 의원이다. 한때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의 일원으로 민주당 쇄신을 위해 정풍운동을 일으켜 권노갑 고문을 사실상 정계은퇴시켰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초석을 다졌다. 현 야당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정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해 선거에 뛰어든 그 순간 야당은 자중지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 전 의원이 출마가 거론된 지역구는 ‘서울의 광주’로 불리는 관악을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해찬 의원이 내리 5선을 한 지역으로 과거 27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수 정당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 정도로 야권 강세지역이다. 이 지역에 정 전 의원이 국민모임 몫으로 출마할 경우 압도적으로 득표를 하지 않는 이상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가 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전 의원으로서 최상은 당선이지만 최악은 야권 후보가 모두 떨어지고 여당 후보가 될 경우 고스란히 책임은 정 전 의원이 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국민모임측, "정동영 해볼만 하다" 강력히 주장
국민모임 측에서는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의 ‘세속적’ 정치생명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큰 내상은 입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정 전 의원 출마자체가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당 대표에게 타격을 주고 야권재편에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관악을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유일한 친노 인사이고 경선에서 김희철 전 의원에게 0.5%p접전 끝에 승리했다는 점도 불리하지 않은 상황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김 전 의원은 정 후보의 지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앙금이 남아 지원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 전 의원이 출마하고 김 전 의원이 간접적으로 도울 경우 정 전 의원이 해볼만하다는 게 출마를 종용하는 인사들의 관측이다.
한편 정동영의 출마 압박 배경에는 진보진영의 통합과도 직결돼 있다. 현재 국민모임과 함께할 세력은 심상정, 노회찬, 천호선 등이 참여하고 있는 진보정의당이다. 그러나 진보정의당 측에서는 새로운 당을 창당하기보다는 국민모임이 원내 의석을 갖고 있는 정의당으로 들어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이 한명도 없는 국민모임에 합류하기 위해서 정의당이 해체를 하고 합류를 해야 하는데 이런 점이 부담이다.
이에 국민모임 측에서는 과거 안철수 세력과 민주당이 새정치연합을 창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 전 의원이나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선방해 금배지를 달 경우 정의당과 합당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 전 의원으로선 총선도 아닌 재보궐 선거에서 정치적 생명뿐만 아니라 야당 내 ‘배신자’라는 낙인까지 받으면서 선뜻 출마하기에는 부담스러운게 현실이다. 정 전 의원이 고민이 얼마나 깊었으면 지난 22일 측근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해외로 출국해 버리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의 한 측근은 “그동안 정 전 의원이 보여준 정치 스타일은 좌고우면이나 장고하는 모습이 아닌 ‘정면돌파’다”면서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고 내려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려온다면 아예 탈당을 재보선 이후에 했어야 했다”고 출마 당위성을 주장했다.
반면 정 전 의원이 출마를 반대한 한 측근은 “정 전 의원의 역할은 내년 총선때 진보개혁세력 결집을 주도하는 것”이라며 “재보선이 생겼다고 정동영을 투입하는 것은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내년 총선에서 호남에 출마해 호남의 기득권 구조를 깨뜨리는 데 앞장서는 것이 향후 신당 바람을 일으키는 데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불출마 땐 ‘야권재편’ 주장 진정성 의심
그러나 정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할 경우 맞닥뜨려야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미 국민모임 측에서는 재보선 출마를 하지 않을 경우 ‘떠나라’고 할 정도로 압박을 넘어 협박을 가하고 있다. 정 전 의원의 국민 모임 내 리더십 실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정 전 의원이 탈당하면서 밝힌 ‘기득권을 내려놓고 야권 재편에 밀알이 되겠다’는 다짐이 거짓이었다는 비판도 받을 수밖에 없다. 야권 재편논의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그 책임 역시 정 전 의원이 질 공산이 높다.
게다가 전남 광주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당선돼 국민모임으로 올 경우 정 전 의원의 위상은 더 추락할 공산도 높다. 설령 천 후보가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국민모임 측에서는 ‘아무것도 안한’ 정 전 의원보다 천 전 장관을 당 대표로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정 전 의원은 사실상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정 전 의원은 자신의 정치인생에 중대기로에 섰다. 출마를 해 당선이 된다면 제2의 정치적 황금기를 보낼 수 있지만 떨어질 경우 정치적 생명은 끝나게 된다. 반면 불출마를 선택할 경우 야권 재편에 의지가 없다는 반증으로 ‘밀알이 되겠다’는 그의 진정성에 의심을 살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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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