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관가 현역 공무원 등 전방위 사정
비박· 친박계 사이 격한 대결구도 본격화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를 놓고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비박계와 친박계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이 총리가 취임 후 첫 담화에서 집중 수사 대상으로 적시한 ▲해외자원 개발 배임 의혹 ▲방위사업 비리 ▲대기업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은 대부분 전임 이명박 정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지목되는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친이계 인사들은 이 총리가 갑자기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배경, 부정부패의 대표적 사례로 굳이 이들 사안을 부각한 이유 등을 놓고 불만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방위사업 비리나 대기업 비자금 조성 의혹과 더불어 자원 외교를 ‘부정·비리’ 사건을 묶어 조사를 추진 중인 것에 대해 불안과 불만이 혼재된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 첫해 '4대강 감사' 결과를 둘러싼 충돌과 최근 이 전 대통령이 발간한 회고록 내용을 둘러싸고 표면화된 갈등 등이 수면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친이계 측은 현 정부가 MB 정권 비리를 들춰내는 전략을 통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누리려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정권의 기반도 취약한 상황에 정치공학적 움직임만 내세울 경우 갈등 유발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과제를 하나라도 제대로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의 반발이 확산하면 친박 주류 측에서도 정면으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 지도부 일부에서는 당혹해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부정부패 척결’ 대상으로 자원외교가 지목되면서 국회 자원외교 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친이계 의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자원외교 특위 여당 관계자들은 청문회 일정과 증인채택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자원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특위 기관보고 때까지만 해도 느긋했던 친이계 분위기가 검찰 수사로 술렁이고 있다.
여당이 자원외교 특위를 새롭게 주목하면서 향후 청문회 일정과 증인채택에도 관심이 쏠린다. 야당은 자원외교 국조 특위 청문회 핵심증인 5명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자원외교 특위 여야는 청문회 일정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증인채택을 둘러싸고 이견이 커 협상에 진통을 겪고 있다.
아울러 사정 당국의 부패와의 전면전이 속도를 내면서 정치권 등 공직사회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사정타깃은 대기업들과 정치권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을 향한 사정이 임박했다는 말이 무성하다. 검찰은 지난 18일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경남기업과 석유공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남기업이 300억 원대의 정부 융자금을 빼돌린 횡령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여권 핵심부 전면전
검찰은 또 롯데쇼핑의 비자금 조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롯데쇼핑의 임직원 10여명을 소환해 비자금 조성과 용처 등을 추궁하고 있다. 비자금의 불똥이 롯데 최고 경영진에게도 튈 수 있다.
포스코에 이어 SK건설, 신세계, 동부그룹, 동국제강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포스코 수사는 정준양 전 회장의 비리뿐만 아니라 ‘영포라인’이 주요 타킷이다. 검찰은 MB정권 실세나 측근들의 소유 기업에 대한 포스코의 일감몰아주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정준양 전 회장의 사법처리와는 별개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박영준 전 국무차장이 다시 검찰청에 불려나오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포스코의 방만 경영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척결 의지가 아주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그토록 어렵게 세운 포스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 실세들의 노리갯감이 됐다며 여러 차례 한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포스코의 인수·합병의 비리 등에 대한 수사에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말이 여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일체의 관용이 없을 것이라는 예단이 수사 초기에서부터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부패와의 전면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 1,2부와 첨단범죄부 등 부정부패 수사 부서가 총동원되고 있다. 횡령과 배임죄란 털면 사법처리되지 않을 기업이 한 곳도 없을 정도로 기업주들의 횡령과 배임은 거의 일상화돼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검찰은 특별한 수사가 아니고 통상적인 부정부패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검찰이 일할 때가 됐으며 일체의 정치적 고려없이 검찰이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그러나 기업들이 받아들이는 강도는 대기업들을 겨냥한 사정 수사, 옥죄기 수사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부정부패 전면전은 깨끗한 국가, 청렴한 공직사회 형성이라는 큰 목표와 함께 공직자 기강잡기와 기업들 움켜쥐기, 그리고 정적 제거 등의 다목적 의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이번 부패와의 전면전은 일석이조의 다목적 포석으로 읽힌다.
대통령이, 경제부총리가 기업들을 향해 그렇게 고용과 투자, 임금 인상, 일자리를 늘리라는 요구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말로만 투자를 한다거나 가끔 ‘대거리’하는 대기업들을 겨냥한 수사라는 해석도 있다.
이에 새누리당의 친이계가 정부의 자원외교와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에 대해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조직적으로 반발할 움직임이다.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공직자 부패 등 내부 부패를 먼저 엄중히 다뤄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면 수사를 하니 정치검찰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MB의 반격 사정기관의 고민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패와의 전면전이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친박계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이계 간의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부정부패에 대한 검찰 수사의 대상이 이명박(MB)정부의 자원외교에 관여한 민간 기업들로 확대되면서 새누리당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해외자원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전 정권의 실세들과 가까운 현역 의원들이 거론되고 있어 당내 친이-친박 대결구도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친이계는 검찰 수사에 대한 강력반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병국 의원은 최근 최고중진연석회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누가 기획을 했는지, 정말 새머리 같은 기획”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이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에 맞춰 사회지도층과 권력층의 부패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검찰의 부패 척결 수사가 대기업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총리의 담화 내용을 살펴보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 총리는 담화에서 방위사업비리, 해외자원개발 배임 논란,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공공조직의 기강을 다잡고, 민간 영역에서 논란이 되는 부정부패 영역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서민증세 논란과 공직기강 해이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민심수습을 위해 내놓은 일종의 처방전 아니냐고 꼬집는다.
친박계와 청와대 내부에서는 일단 공직기강해이와 정책혼란 그리고 경제문제 심화 등으로 실추된 지지율 회복을 위해 국민적 카타르시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가 부패와의 전쟁을 용두사미형으로 마무리할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지지율 회복을 위한 처방전 성격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전쟁의 장기화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특수부1가 자원외교 관련 사건을 모두 맡았다는 점에서 수사의 집중력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수사 범위가 배임을 넘어 로비, 횡령 등 부패 전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특수1부에 전 정권과 관련된 사건이 재배당돼 시선을 끌고 있다. 재배당된 사건은 감사원이 캐나다 하비스트사 인수와 관련해 1조3,300여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올 초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고발한 사건과 정의당이 자메이카 전력공사에 지분투자를 결정한 이길구 전 한국동서발전을 8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 가스공사, 석유공사의 전·현직 사장 6명과 이명박 전 대통령, 최경환 경제부총리(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고발된 사건도 역시 특수1부가 맡았다.
또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등 해외에서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도 검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 리베이트로 쓰기 위한 비자금이었다고 이례적 해명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일부 비자금이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검찰이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할 조짐인 가운데 최근 검찰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과 관가의 일부 인사들을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의 극약처방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조합장선거 등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을 상대로 검찰과 경찰이 내사하고 있다. 이 중 여권의 K의원은 조합장 선거와 관련 모 조합의 조합장후보를 추천하는 과정에 개입해 뒷돈을 챙긴 정황이 검찰에 포착돼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K의원은 조합장 선거에 배후 역할을 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첩보가 사정기관에 입수돼 사정당국이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이 비리관련 제보를 받고 내사 중인 K의원의 경우 여권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여권 관계자가 검찰 수사 내용을 직접 챙기고 있어 검찰이 조사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또 영남지역과 충청지역에서도 정치인 비리 첩보가 입수돼 사정당국이 살피고 있다. 영남지역의 경우 전 정권 실세 A의원을 비롯해 현 여권 실세B의원과 절친한 관계인 사업가 L씨가 이들을 등에 업고 사업상 특혜를 받은 것으로 파악돼 사정기관이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최근 잇따른 비리 사건들이 정부 불신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보고 이를 척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는 분석도 있다.
관가와 재계 일각에서는 “본보기로 여권 유력 인사와 대기업 중 한 곳이 집중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재계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기업은 S사와 H사 N사 등이다.
사정기관의 수사 선상에 오른 중견 기업은 전직 고위 공무원이 오너인 방위산업체 G사와 마찬가지로 전직 고위 관가 인사가 근무 중인 F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관피아 수사가 정점일 때 다음수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들 회사 관계자와 여권 핵심인사들이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에서 비켜갈 것이라는 말도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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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