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간호사가 날 갖고 즐겼어!”

평범한 목요일 아침, ‘고개 숙인 남자’의 피맺힌 복수극에 애꿎은 여인 두 명이 피투성이가 됐다. 지난달 26일 아침 댓바람부터 벌어진 칼부림에 간호사 송모(33·여)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동료 간호사 양모(44·여)씨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범인은 이날 A병원의 첫 환자였던 김모(34)씨. 그는 지난 5월부터 전립선염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순식간에 두 사람을 도륙한 김씨는 격한 분노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과연 무엇이 김씨에게 여 간호사들에 대한 살의를 품게 만든 걸까. 남성의 은밀한 부위를 둘러싼 ‘묻지마 살인극’의 전말을 벗겨본다.
흉기 미리 준비 ‘계획범죄’
지난 11월 26일 아침 8시 55분경 강원도 원주 명륜동 A비뇨기과 병원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첫 환자로 진료를 마친 김씨가 갑자기 품에서 흉기를 꺼내 간호사 2명을 잇따라 찌른 것. 그가 병원에 온 지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는 주사실에 있던 송 간호사를 첫 번째 희생자로 삼았다. 피해자의 목과 등을 수차례 난도질한 그는 곧바로 접수대에 있던 또 다른 간호사 김씨에게 달려들었다.
비명소리에 놀란 담당의사가 나왔을 땐 이미 병원 로비가 피해자들의 선혈로 칠갑된 뒤였다.
경찰은 김씨가 이날 살인을 작정하고 병원을 찾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미리 흉기를 준비해왔을 뿐 아니라 자택에서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낸 쪽지가 발견된 까닭이다.
사건을 담당한 강원 원주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병원에 가기 전 짤막한 자필메모를 남겼다. 여기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엉뚱한 주사를 놓으며 비웃는 것 같다’ ‘전립선염 치료는 명목이고 즐기는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립선염을 앓고 있던 김씨는 지난 5월부터 A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이전에 충동조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도 있었다. 경찰은 이 같은 김씨의 병력이 범행동기가 됐을 것에 주목하고 있다.
‘욱 하는 성격’ 정신병력 원인?
미국 정신질환진단 통계편람에 따르면 해를 끼칠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자신이나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이 충동조절장애다.
다시 말해 아주 사소한 언짢음이나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격하게 반응해 공격적 충동이 조절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씨는 여기에 의사와 간호사를 향한 피해망상 증세까지 겹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씨가 앓고 있던 전립선염이 남성의 ‘은밀한’ 자존심을 건드렸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립선 질환 환자들은 병원 치료에 나서기보다 혼자 참는 경우가 대다수다. 치부를 보인다는 수치심과 의사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작용하는 까닭이다.
정신과 전문의 진용택 박사는 “오랜 기간 투병을 해온 김씨가 심리적 열등감으로 인해 피해망상에 빠져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피해망상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며 피해를 입힌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진 박사에 따르면 피해망상 환자들은 타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심한 경우 스스로의 열등감이나 불만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돼 실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한편 김씨처럼 충동조절장애가 원인이 돼 살인이나 폭행을 저지르는 이른바 ‘욱 범죄’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흔히 우발적 범행이라고 말하는 이들 피의자들에게는 적잖은 공통점이 있다.
먼저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대화가 거의 오가지 않는 외톨이인 경우가 상당수다. 또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임시직 등 불안하고 평소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거나 도박·게임 등에 비정상적으로 중독 된 경우가 많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외톨이는 평소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감정을 억눌러 본 경험이 적어 결정적인 순간 참아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반인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받게 될 처벌을 두려워 하지만 외톨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책임져야 할 가족이나 직업이 없는 이들은 자연히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범행에 빠져들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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