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아니라 폭행 사망이었다”
개그맨 김정렬 씨의 친형 故 김성환 씨의 베일에 감춰져 있던 의문사 진실이 밝혀졌다. 선임병의 구타에 이은 심장마비 사망으로 결론이 났다. 사건 하루 전날인 1977년 10월 3일, 김성환 씨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던 동생 김정렬(개그맨·당시 17세)을 찾아왔다. 그 다음날 김성환 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군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온 몸은 시퍼런 멍투성이였다. 그로부터 32년이 흐른 지금, 농약에 의한 부대 내 자살로 덮어졌던 故 김성환씨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졌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는 지난 1일 “1977년 10월 3일 군 복무 중에 자살로 처리된 김성환 씨(당시 26세)에 대한 조사 결과 선임병의 구타에 이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가해자인 정 모 씨는 “지난 32년간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며 용서를 구했고, 김정렬은 “법적 처분이나 물질적인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 형의 명예롭지 못했던 자살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개그맨 김정렬은 지난 2006년 1월, 유언 전문 사이트인 마이윌(www.mywill.co.kr)에 자신의 유언장을 게재한다. 그는 유언장에 1977년 하나뿐인 형을 잃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마침 그해 결성되었던 군의문사위 측에 진상 규명을 요청한 끝에 약 3년 만에 진실이 밝혀졌다. 다음은 개그맨 김정렬씨와의 일문일답.
- 먼저 슬픈 가족사에 대한 진실 밝혀졌다. 소감은.
▲자살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썼던 형님의 억울함이 뒤늦게나마 벗겨져 다행이라 생각한다.
- 부대 측은 처음 국립묘지행을 약속했던 걸로 안다.
▲그들이 처음엔 심장마비로 인한 죽음이니 화장하는 것에 동의해주면 국립묘지에 안장시켜주겠다며 쌀 한가마니를 주었다. 그런데 화장시키고 나니까 사인은 심장마비에서 자살로 바뀌어 있었다. 국립묘지는 근처도 가지 못했다. 쌀 한가마니에 시골에 살던 우리 어머니는 아들 죽음의 진실을 맞바꾼 셈이 되었다. 평생 한으로 남으셨다.
- 사건이 일어난 게 무려 32년 전 일이다. 뒤늦게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시골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 때 일찍 돌아가셨다. 세상 물정에 어둔 어머니가 군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특히 형의 시신도 재빨리 화장을 해버려서 증거가 모두 인멸되었다. 당시 나는 어린 학생이라 해결 방법조차 알 수 없었다.
-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정권 등 기회는 있었을 텐데 노무현 정권에 와서야 의뢰 한 이유는.
▲민간인이 대표로 조직된 ‘군의문사위’가 생긴 시점이 2006년 1월이다. 당시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시행과 함께 대통령 소속의 ‘군의문사위’가 3년이라는 한시적인 시한을 가진 채 발족되었다. 그 당시 민원 접수자를 600명 선착순으로 모집했는데 내가 약 400명 째 순서에 응모해서 형의 죽음에 진실을 밝히게 된 것이다.
-사망 당시의 김성환 씨의 정황을 말해 달라.
▲부대에서 몰래 탈영한 게 아니다. 국군창동병원에서 밤에 외출을 했다가 제 시간에 복귀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형은 위장병이 있어서 군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다. 물론 제 시간에 병원 도착을 못 했으니 탈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군부대 담을 몰래 넘어 탈영한 건 아니다.
- 공소 시효 만료로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손해 배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
▲가족 회의한 결과, 법적 처분 뿐 아니라 물질적 보상도 안 받기로 했다. 일단 그 가해자가 악의를 가지고 죽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님이 돌아가신 후 세월이 많이 흐르다보니까 나의 마음 속 상처도 상당 부분은 치유된 상태이다. 원수를 이기려면 용서하는 게 이기는 거다. 법으로 그 사람을 응징해서까지 내가 이기려고 하면 내 마음이 도리어 더 상한다.
-가해자의 신원은.
▲그 사람의 직업이나 주소는 알 수 없었다. 군의문사위 조사관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에겐 말해주지 않았다.
-당시 형이 근무했던 부대는.
▲더 이상은 밝히고 싶지 않다. 내 양심 상 여기서 진도를 더 나가는 건 꺼려 진다.
-현재 가족들의 상황은.
▲형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형이 그렇게 죽은 후 평생 정신병 비슷한 화병을 앓고 사셨다. 11년 전에는 척추 수술이 잘못되어서 골다공증으로 하체마비가 되셨다. 1년 전엔 치매까지 오셔서 대화 소통이 어려운 상태다. 어머니는 평생 우리 가족 먹여 살리며 힘들게 살아 오셨다.
한편 이번 故 김성환씨 사건을 진행했던 ‘군의문사위’ 유왕선 팀장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 이유에 대해 “법률적으로 자신은 이번 故 김성환씨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다”고 답변했다. 故 김성환 씨의 사건은 12월 11일까지 김정열씨와 국방부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다.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군의문사위가 발표된 사실이 기록에 남게 된다.
[박성환 기자] 1723shy@hanmail.net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 밝혀 인권증진 앞장
지난 2006년 1월 1일 출범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는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관련자 피해와 명예회복을 통해 군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인권증진을 위해 창립된 민간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이다.
군의문사위의 활동 기한은 작년 말까지였다. 하지만 선착순으로 접수된 600개의 사건 중 20% 가량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12월 31일까지 연장했다.
올 초부터 조직규모가 대폭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해동 위원장 등 수뇌부 5명이 모두 퇴임했다.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실무진 40여명도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자리를 떠났다. 또한 각 부처에서 파견됐던 공무원 일부도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최소 30여명이 남아 군의문사위를 지켰다.
이들은 그야말로 일당백의 정신으로 유가족 면담과 사건 조사 등 전방위적인 업무를 맡아 고군분투를 했다.
최근 개그맨 김정렬씨의 친형인 故 김성환 씨의 사망 사건 등 군의문사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성환 기자 1723sh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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