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사명) 성공한 ‘보이지 않는 손’ 있다

일본인 7명과 한국인 4명이 목숨을 잃은 부산 가나다라 사격장 화재참사(이하 부산 화재참사)는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관리소홀에 의한 인재(人災)로 치부하기엔 미심쩍은 정황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까닭이다. 현장 감식에 나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따르면 사고는 실탄 발사 뒤 사격장 안에 흩어진 탄가루(잔류화약)에 불이 붙어 폭발하면서 벌어졌다. 즉 ‘분진폭발’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사고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폭발을 일으킬 만한 발화요인이 없다는 점이다. 분진폭발이 일어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이 이 같은 조건과 들어맞지 않는다는 정황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참사가 계획된 테러일지 모른다는 음모론마저 불거지고 있다.
경찰 잠정결론의 허점
이번 참사는 총을 쏘는 곳인 격발장 안에서 잔류화약이 폭발해 벌어졌다는 게 경찰의 잠정결론이다. 화재 수사본부는 지난 18일 공식 프리핑에서 “3차 정밀감식 결과 최초 발화지점은 사격장 격발장 안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분진폭발’이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얘기다.
분진폭발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분진(먼지)이 급격히 연소하는 현상이다. 연소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열과 압력이 생기기 때문에 마치 가스나 증기폭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존자 가사하라 마사루(37)씨의 증언도 분진폭발로 인한 사고임을 뒷받침한다. 그는 “사격대 주변에서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 본능적으로 출입구 쪽으로 뛰었는데 등 뒤로 뜨거운 바람과 화염이 덮쳤다”고 말했다.
분진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가루는 화약 뿐만이 아니다. 금속과 세제를 비롯해 밀가루와 설탕 등도 특정 조건 아래서 폭발 가능성이 있다.
분진폭발은 가스, 증기폭발에 비해 불완전 연소가 심해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훨씬 높다. 사망자들의 기도와 폐에서 그을음이 발견된 것도 이런 이유다.
경찰은 밀폐된 격발장에서 터져 나온 불길이 휴게실과 출입구를 통로삼아 번졌고 사격장 내부 방음재가 타면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희생자들이 출구를 눈앞에 두고도 탈출하지 못한 것은 순식간에 퍼진 유독가스 때문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일련의 정황과 생존자 진술, 희생자 부검결과로 미뤄 사고가 분진폭발 때문이라는 경찰의 잠정결론은 언 듯 아귀가 맞는 듯 하다.
그러나 분진폭발 직전의 발화원인, 즉 아무도 없는 격발장 안에서 불꽃이 튄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수사본부의 잠정결론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폭발 일으킨 제3의 점화원 있다”
불기둥은 일본인 관광객 10명이 모두 사격을 마치고 나온 뒤 CCTV 작동이 멈춘 2분 사이에 치솟았다. 격발장에 당초 사고원인으로 추정됐던 잔류화약이 쌓인 진공청소기나 휘발유 등 인화성 물질은 없었다.
또 해당 사격장은 사건 발생 9일 전인 지난 6일 소방안전점검을 마친 상태였다. 9일 동안 사격장 내에서 소비된 실탄은 1000발 정도로 알려졌다.
핵심은 이전에 사용된 실탄 1000발과 폭발직전 10명의 관광객이 쏜 총알에서 대규모 폭발을 일으킬 만큼의 잔류화약이 나왔는지 여부다.
이론상으로는 물론 가능하다. 화재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분진폭발은 농도 15~50mg/㎥의 가연성 분진에 최소 10~18mJ의 작은 힘만 가해도 일어난다.
그러나 여기엔 까다로운 조건이 따른다. 먼저 분진은 가연성이어야 하며 입자 크기는 700㎛(700미크론·0.7mm)이하여야 한다. 또 분진이 땅에 쌓여있어서는 안된다. 밀폐된 공간 내에서 공기 중에 골고루 분포돼 산소와 적당히 혼합된 상태에서만 폭발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분진과 산소가 반응해 폭발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제공할 ‘점화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분진이 햇빛에 장시간 가열돼 건류가스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하 350~6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불이 붙는다.
이를 위해 점화원은 최대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방출해야 한다.
한편 일본 야쿠자 상당수가 부산 등 국내 실내사격장에서 실탄 사격을 익히는 사실이 확인됐다. 화재규모에 비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화재참사가 일본 야쿠자 조직 간 분쟁이라는 설이 퍼진 것도 이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부산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야쿠자 조직원들 상당수가 정기적으로 부산, 서울 등지의 실내 사격장을 찾는다.
야쿠자들은 자신 소유의 권총과 같은 모델을 사격장에서 골라 몇 시간 씩 실탄을 쏘며 한 번 방문 때마다 사격장 사용료로 100만원 정도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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