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 세계-30] 제보와 정보수집(下편)
[국회 보좌진 세계-30] 제보와 정보수집(下편)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5-03-23 11:43
  • 승인 2015.03.23 11:43
  • 호수 1090
  • 4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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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수 회장의 무모한 투자, 국가 부도위기
- 검찰 포스코 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제보’ 결정


<정대웅 기자>photo@ilyoseoul.co.kr
한보사건 이후 급속도로 위기에 치달았다.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금리가 치솟고, 기업들은 자금난으로 아우성쳤다. 환율과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충격적이었다. 외국투자가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결국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다. 나라가 부도위기에 내몰렸던 것이다. 즉 모라토리움(moratorium)의 직전이었다.

결국 재벌과 은행, 정책당국자 등이 심각한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외환위기는 정경유착과 불법·특혜금융, 재벌들의 문어발식 기업확장과 분식회계,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심각한 부실과 리스크관리 부재, 환율운용 정책의 실패, 외환보유고 관리부재, 이 밖에 청와대와 정책당국의 무능함과 무책임 등이 난마(亂麻)처럼 얽혀져 초래된 것이다.

1996년 한 해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정태수 회장의 한보그룹은 결국 망했다. 특혜금융을 통한 무리한 투자를 지속하던 한보철강은 1997년 1월 23일 부도처리되었다. 당시 신광식 제일은행장, 김시형 산업은행 총재, 우찬목 조흥은행장이 제일은행 본점에서 한보철강 부도결정을 발표했다. 한보철강이 막대한 금융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이날 한보그룹 주력회사중 하나인 (주)한보도 자금부족으로 부도를 냈다. 한보그룹 22개 계열사의 연쇄부도는 쉽사리 예상되었다.

한보그룹은 당시 국내 재계순위가 14위에 달했다. 정경유착으로 회사를 키운 정태수 회장이 기업의 덩치에 비해 무모한 투자를 한 것이다. "세계 5위 내 규모를 자랑하는 제철소"를 짓는다며 과잉투자가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혜와 불법, 비리가 난무했다. 당시 한보철강의 은행 대출규모만 5조7천억원에 달했다. 정경유착에 의한 사실상의 묻지마 대출이었다.

한보 부도 후 기업 연쇄도산

한보그룹이 망하기 1년 전인 1996년 1월, 재계 서열 27위였던 우성그룹의 주력회사 우성건설이 부도가 났다. 한보그룹이 부도나기 전에도 이미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다들 수수방관했다. 설마했던 것이다. 한보그룹이 부도나기 6개월전인 1996년 5월말, 15대 국회가 임기가 시작되었다. 권력층과 정책당국을 견제·감시해야 할 국회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97년 1월부터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국제금융을 받기까지 연쇄부도사태가 이어졌다. 가장 먼저 1월에 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되었다. 3월 삼미그룹, 4월 진로그룹, 5월 대농그룹, 6월 한신공영그룹이 부도를 선언한다. 7월 15일에는 기아그룹이 긴급융자지원을 요청하는 등 사실상 부도가 발생한다. 10월 쌍방울그룹, 11월에 해태그룹과 뉴코아가 부도처리된다.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기업정보와 금융정보에 빠른 증권가에서는 유동성 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어떤 재벌계열사가 자금난이 심각하다.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대규모 부실여신으로 은행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처럼 현실로 이어졌다.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지급보증 등으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재벌들의 실상은 금융·외환시장 위기에서 속수무책이었다.

97년 11월 5일,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의 가용외환보유고 20억달러" 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한다. 11월 10일에는 원화환율이 1달러당 1천원을 돌파한다. 11월 17일에 IMF총재가 극비 방한을 하고, 11월 21일에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신청 사실을 발표했다.

결국 12월 3일, 임창렬 재경부장관과 미셀 캉드쉬 IMF총재간에 공식적인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기에 이른다. 한보철강의 특혜금융부터 본격화 된 금융·자금시장의 위기는 나라마저 거덜낸 것이다. 대통령 선거 직전에 국가부도사태를 겨우 모면하고 나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민심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한 것이다. 그 긴박했던 상황들은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 열린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 위기징후 보고서들이 청와대에 전달되기도 했지만 묵살되었다고 한다.

대마불사 통용 안돼

IMF 구제금융에 합의한 바로 다음날, 9개 종합금융사의 영업정지가 있었다. 곧바로 고려증권과 한일그룹이 부도처리된다. 12월 10일에는 5개 종금사 추가 영업정지와 동서증권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2월 23일에는 환율이 1달러당 최고치인 1,995원을 경신한다.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이듬해도 기업과 금융권을 뒤흔들었다. 98년 1월 14일, 나산그룹의 부도처리부터 시작되었다. 1월 16일, 현대건설 구조정계획이 발표된다. 그 뒤를 이어 극동건설, 거평그룹, 한일그룹이 부도처리된다. 10개 종금사는 인가 취소된다. 급기야 김우중 회장이 이끌던 대우그룹마저 위기에 봉착했다. 끝내 국내 제1의 건설사였던 현대건설에 이어 동아건설도 줄줄이 쓰러진다.

내부제보, 투명사회에 기여

국내 기업들의 부실화가 이어지면서 큰 타격을 받은 곳이 종합금융사였다. 그 뒤를 이어 은행권의 부실로 이어졌다. 대기업들의 부실화로 자금회수에 문제가 생기면서 금융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종금사에 이어 증권사, 은행으로 위기는 확산되었다.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은행 등이 부실로 회생불가능해졌다.

당시에는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하던 시대였다. 경제학에서 'Too big to fail'의 역어로 쓰인다. 더이상 대마불사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국민과 재벌, 금융권 모두가 쇼크상태였다. 이처럼 정태수 한보그룹의 정경유착, 연속된 재벌과 금융기관 부실, IMF 국제금융을 받기까지 교훈을 많이 준 것이다.

한편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를 앞두고 의원실에는 각종 제보들이 쏟아진다. 대부분 보좌진들이 접수한다. 제보방법도 다양하다, 전화·이메일·SNS도 활용된다. 의원회관을 방문해 증빙자료와 함께 제보하는 경우도 있다. 은밀한 정보를 증언해주는 것이다. 사실에 입각할 때가 많다. 따라서 제보를 결코 무시해선 안된다. 만약, 내부제보를 통해 파악된 비리가 국회나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게 되면 해당기관은 발칵 뒤집어진다. 검찰수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처 등은 검찰수사나 내부의 제보가 아니고서는 외부에선 알 길이 없다.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종종 터지는 비자금 조성도 내부제보가 결정적이다. 최근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압수수색이 이뤄진 포스코건설(주)의 비자금 조성의혹 등 각종 비리도 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제보(提報)는 수사당국은 물론 의정활동 자료에는 유용한 자료다. 어떤 조직의 안에 속해 있는 사람, 즉 내부자에 의한 제보는 결정적이다. 민간기업, 공공기관, 행정부, 사법부의 비리도 알려진다. 접근하기 어려운 군과 경찰, 검찰, 국정원 등의 내부비리들도 드러날 수 있다. 내부제보는 투명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김현목 보좌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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