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 대표의 광폭 행보가 연일 화제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부터 남경필 경기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집권 여당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1위를 달리는 등 야권내 부동의 대권 주자로서 우뚝섰다. 하지만 여권 최고 권력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인 여권 인사들의 문 대표 회동 수락 배경에 ‘문재인 띄우기’라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집권 10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보수정권으로서 정권 교체의 위기감을 ‘친노 한계’를 지닌 문 대표와 경쟁할 경우 정권 연장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숨겨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를 죽이고 문재인을 띄워’ 권력을 쥔 집권 여당이 재차 차기 대선에서 ‘친노 디스카운트’라는 약점을 가진 ‘문 대표 띄우기’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 ‘친노 한계’ 문재인 대표와 붙으면 승산?
- 2012년 대선때 안철수 죽이고 문재인 띄우기 전략 재판

그러나 안 후보의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문 후보의 경쟁력을 상승효과로 나타났고 ‘조직’에서 앞선 문 후보가 안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막판에는 박근혜 후보와도 막상막하 상황이 됐다. 결국 안 후보가 ‘대선’을 포기하고 양보하면서 문 후보는 야권 단일화를 등에 업고 대결을 벌였지만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당시 ‘안철수 후보였다면...’이란 물음표는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안철수 후보였다면…현재진행형”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안철수보다 문재인이 더 상대하기 쉽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정당대 정당 싸움이고 친노 회귀 및 구정치로 몰아갈 수 있는 문 후보가 새정치로 무장한 안철수보다 승리 프레임을 짜기 쉽다는 해석이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전략은 맞아떨어졌고 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5년 3월 대선은 2년 넘게 남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우려감이 야권내에서 나오고 있다. 문 대표의 지지율이 당 대표 취임 이후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고 당 대표 행보가 아닌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서 면모를 과시하면서부터다. 무엇보다 ‘문재인 띄우기’ 전략에 집권 여당 최고 권력자부터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룡군까지 가세해 문 대표를 야권 내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을 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3월10일 문 대표가 ‘연정’을 실험하고 있는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통합’행보의 일환으로 전국 17개 시.도를 돌며 광역단체장과 회동을 갖고 있는 문 대표는 여당출신 단체장과 회동은 취임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야당 단체장과의 회동은 자연스러운 만남이었지만 여당 단체장과 회동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문 대표실에서는 최저임금이라는 의제를 설정해 만남을 제안해 남 지사측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 지사측은 사회부지사라는 직제를 만들어 야당 인사를 임명해 ‘연정’을 처음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 대표와의 회동을 수락했다. 이 자리에서 남 지사는 ‘소득주도형 성장’이라는 문 대표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고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도 적극 찬성의사를 밝히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남 지사로서 야권 내 유력한 대권 주자와 만남을 통해 ‘몸값’을 올리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박 대통령·청와대 잠룡군 文 연쇄회동 왜
문 대표 입장에서도 여야를 뛰어넘는 행보를 통해 통합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리더로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잃을 게 없는 회동이었다. 굳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남 지사보다는 문 대표가 더 실리를 챙긴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집권 여당 출신으로 차기 대권주자로 인정받는 경기도지사가 야당 당 대표와 회동은 여당 지지층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 지지층에서는 문 대표가 단순히 야당 당 대표가 아닌 여야를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호평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5선을 한 남 지사가 이를 몰랐을까.
두 번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제안해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의 3자 회동 성사다. 사실 문 대표는 지난달 26일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사실상 거부 의사였다. 그러자 김무성 대표가 정치적 묘안을 찾아냈다. 3.1절 행사장날 문 대표와 나란히 선 김 대표가 “중동순방 이후 여야 대표를 불러서 얘기해 달라”고 제안하자 박 대통령이 못이기는 체 화답한 것이다.
사실상 ‘물 건너간’ 영수 회담을 집권 여당 대표가 나서서 성사를 시킨 셈이다. 형식만 3자 회담이었지 결과는 영수 회담이나 다름이 없었다. 김 대표는 중재자로서 역할에 충실했고 관심의 초점은 박 대통령과 문 대표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현 최고 권력자와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의 만남이라는 점, 지난 대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당사자이고 나아가 대선TV토론이후 2년 3개월만에 이뤄진 회동이라는데 의미를 뒀다. 무엇보다 당 대표 당선이후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선언한 문 대표였다. 당연히 회동 결과에 대해서 집중됐다.
회동 결과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를 주장한 문 대표가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가 됐다. 또한 야권내 차기 대권주자로서 위상 강화와 존재감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는 호평도 줄을 이었다. 문 대표가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이미지도 심었다. 나아가 야권 내 구심력을 강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면 3인 회동을 사실상 성사시킨 김 대표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문 대표의 경제 실패 지적에 따라 연이틀간 시간을 할애해 배려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당일 박 대통령이 일일이 문 대표의 비판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고 18일에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나와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논리가 아니다”며 예우하면서 문대표의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까지 내놓았다. 청와대의 이런 행동은 야권 차기 유력한 주자로서 위상을 한껏 치켜세운 것으로 ‘문재인 띄우기’에 화룡점정이라는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집권 여당의 ‘문재인 띄우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역시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만난 문 대표는 ‘무상급식’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홍 지사는 최근 ‘무상급식’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자녀를 지원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홍 지사는 “당 대표라는 분이 대안 없이 왔다”고 비판했고 이에 문 대표는 “벽에 대고 얘기하는 줄 알았다’고 맞붙었다. 외형상 홍 지사의 ‘무상급식 논란’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었고 대안 마련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문 대표가 생채기를 입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집권여당 잠룡들 ‘만만’한 문재인?
하지만 홍 지사와 만남을 통해 실리를 챙긴 것은 문 대표라는 지적이 더 많다. 남 지사와 회동과 마찬가지로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들과 소통에 나서며 이슈를 정면 돌파하는 ‘광폭행보’를 보여줌으로써 ‘얻을 것은 얻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부터 집권 여당 잠룡군들까지 나서 ‘문재인 띄우기’에 배경은 당연히 2017년 대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수정권 10년이 흘러가고 있고 15년을 잡는 것은 5년 단임제하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왕적 후보’가 부재하면서 잠룡군들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문재인이라면 해볼만하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노무현 비서실장’이라는 친노 프레임으로 승부를 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과연 문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로서 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니면 2012년 대선판이 재현될지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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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