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레임덕 막아라
朴대통령 레임덕 막아라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3-23 11:06
  • 승인 2015.03.23 11:06
  • 호수 1090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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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의 전쟁 이후 다음 카드는
▲ photo@ilyoseoul.co.kr

레임덕을 막아야 새로운 국정운영의 추동력 생겨
특보정치로 여의도정치 제압… MB때리기로 시동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임기 반환점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가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집권 3년차 징크스에서 탈출하고 새로운 국정운영의 엔진을 달기 위한 몸부림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조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 방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한 때 20%대로 무너지면서 일찌감치 레임덕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40%대로 반등하면서 박근혜 정부 전반에 자신감이 넘쳐나는 모습이다. 이 여세를 몰아 아예 ‘레임덕’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차단 전략은 ‘대란대치’(大亂大治)로 요약할 수 있다.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마오쩌둥이 부인 장칭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하대란이 천하대치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썼던 일화는 유명하다. 세상이 한바탕 큰 난리를 겪어야만 큰 정치를 할 수 있다.

로드맵 만들고 여론전 돌입

박근혜 정부는 레임덕 차단 프로그램 1단계로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창조적 파괴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전쟁을 선포하기 전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레임덕을 막아야 국정운영의 추동력이 생긴다는 판단 아래 정교한 로드맵을 미리 만들어 놓고 여론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총리는 3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총리 좌우로 황교안 법무부 장관(검찰),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경찰)이 결연한 자세로 서 있었다. 황 장관은 다음 날 “검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신속 철저하게 부정부패를 척결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포스코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앞서 방위산업비리 합동수사단은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전격 체포했다. 로드맵이 없었다면 전쟁선포와 전쟁돌입이 이처럼 전광석화같이 거의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대국민담화는 이 총리가 발표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이 총리는 담화 발표 전날 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3월 17일 청와대 국무회의)는 등 결기를 다지고 있다.

행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사정 관련 부처 차관급이 참석한 ‘부정부패 척결 관계기관 회의’를 열었다. 사정(司正) 정국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모임이었다.

박 대통령이 대란대치를 위해 미리 인적배치를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 ‘특수통’ 출신들의 전진배치다. 검찰 특수부는 대기업과 정치인 비리, 공무원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과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역할을 하는 부서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에서 수직 승진시킨 우병우 민정수석은 대검 중수부 1과장과 수사기획관 등을 거친 특수통이다. 검사장을 거치지 않은 그를 차관급인 민정수석으로 발탁했을 때 의아해 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지금 복기해 보면 박 대통령의 원모심려를 읽을 수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인천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 중수부 2과장 등을 역임했다.

우병우 수석등 특수통 포진

박 대통령의 인적 포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민정특보로 기용한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다. 이 특보 임명 당시 ‘옥상옥’이란 지적이 많았지만 박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사정 정국이 조성된 지금 그를 ‘기획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특보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대표적인 ‘특수통’이다.
검찰총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홍업·홍걸씨를 구속시켰다. 2002년 검찰총장 취임 때는 “진정한 무사는 겨울날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취임사를 남겼다. 역시 검찰총장 출신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당대 최고의 수사검사”라고 극찬했던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이처럼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특수통들을 전진 배치한 뒤 여권 세 축인 당(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정(이완구 총리)·청(이병기 실장)의 진용개편이 마무리되자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나섰다.

부정부패와의 전쟁 전선에는 이명박(MB) 정부도 포함돼 있다. 이 총리는 담화에서 부패 척결 대상으로 방산비리와 해외자원개발 의혹을 적시했다. 두 사업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중점 추진과제였다. 신-구 정권의 갈등을 유발시켜 전임 정부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이 전 대통령 측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정권 유지를 위한 쇼”라고 일갈했다. MB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낸 A씨는 필자에게 “우리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 현 정부에서 계속 몰아붙이면 정면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옛 참모들이 수시로 모여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MB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B씨는 “아마 내년 총선에서 친이계를 상대로 공천학살을 하려고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 같다.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친이계의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정권 핵심의 대란대치 전략에 말려드는 측면이 있다. 방산비리와 해외자원개발 의혹에 대해선 국민들도 공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검찰 수사의 칼날이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부의장이나 핵심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겨눌 경우 상대적 이익을 얻는 쪽은 현 정권이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정부들과 달리 아직까지는 친인척이나 측근비리에서 자유로운 까닭이다.

공적문서 유출 경고에 주목

이 총리가 담화에서 “개인의 사익을 위한 공적문서 유출은 우리의 기강을 흔드는 심각한 일탈행위”라고 경고한 대목도 심상치 않다. 공적문서 유출은 당장 지난해 연말 박근혜 정부를 위기에 빠뜨렸던 ‘정윤회 문건’ 파문을 연상시킨다. 정윤회 문건의 본질은 비선라인의 국정농단이 아니라 문건 유출이란 박 대통령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대목은 특히 공직사회의 기강잡기에도 조만간 착수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레임덕 차단 프로그램 2단계 실행으로 번질 수 있는 부분이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은 공무원사회의 복지부동에서 시작된다. 정권의 힘이 빠지면 공직자들은 새로운 일을 만들지 않고 나태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차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 눈치를 살피며 줄을 대기도 한다. 특히 국정원이나 검찰과 경찰, 국세청 같은 권력기관이 그런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 총리가 4대 척결 대상 가운데 하나로 ‘공적문서 유출’을 적시한 건 하나의 유형으로 꼽았을 뿐이지 실제론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레임덕 방지를 위해선 여당도 관리해야 한다. 특히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 본인이 MB 시절 미래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바도 있다. 여당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를 잘 아는 박 대통령이 빼든 카드가 ‘특보정치’다.

박 대통령은 K-Y(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호영·윤상현·김재원 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했다. 친이계 출신인 주 의원은 별개로 치더라도 윤상현·김재원 의원은 비박계 지도부 체제의 여당에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호위무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윤 의원은 정무특보 임명장을 받자마자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격했다.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인 유 원내대표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찬성하면서 의원총회를 열기로 한 것을 두고 “고도의 전문성이 뒷받침되기 어려운 의원총회에서 자유토론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는 유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했다는 해석이 많다.

청와대는 레임덕 차단 프로그램의 후속 단계들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핵심 주도자는 이병기 비서실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정권에서 책사 역할을 여러 차례 했던 이 실장의 위기돌파 능력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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