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한국선수들이 독식하면서 한국 골프팬들의 관심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더욱이 LPGA를 평정했던 박인비가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노보기 퍼펙트 우승을 차지하면서 슈퍼루키들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다소 부진한 모습으로 세계 1위 자리와 올해의 선수상을 아깝게 놓쳤지만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올 시즌 최강자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코리안투어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LPGA의 뜨거운 열기를 만나봤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맹활약했던 슈퍼루키들이 LPGA 투어에 대거 진출하면서 한류열풍을 예고했지만 시즌 개막전부터 5개 대회에서 4개 대회를 한국선수들이 독식하는 이변을 낳고 있다. 더욱이 뉴질랜드 교포인 리디아 고까지 1개 대회를 우승하면서 LPGA는 가히한국계선수천하가 돼 당초 한국선수들의 11승 기록을 넘어설지보다 연승행진이 언제 끝날지를 놓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골프여제 박인비가 지난 8일 끝난 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 최종라운드에서 첫 승을 거두면서 노련미를 갖춘 LPGA 선배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박인비는 최종라운드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린 리디아 고, 세계랭킹 3위인 스테이시 루이스와 한 조가 되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단 한 번의 흔들림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미국남자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41년 전인 1974년 리 트레비노의 뉴올리언스 오픈 우승 이후 단 한 차례 없었던 노보기 퍼펙트 게임을 선보여 골프팬을 열광시켰다. LPGA 투어에서 노보기 퍼펙트 게임은 박인비가 처음이다.
경기 후 박인비는 “보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버디를 하면 아버지에게 500달러를 받고 보기를 하면 1000달러를 주기로 내기를 했는데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비결을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또 “리디아 고, 루이스와 동반 라운드를 펼치면서 자신감이 더 생겼다. 또 이 상황에서 승리를 거둬 조금 더 많은 동기부여가 됐다”면서도 “앞으로 이들과 최종라운드에서 만나지 않기를 고대한다. 정말 어렵고 가장 고된 라운드 중 하나였다. 심지어 물도 마실 수 없었다”며 경기 당시의 긴장감을 전했다.
박인비는 지난 12일부터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의 미션힐스골프장 블랙스톤코스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참가해 우승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비록 1라운드에서 보기를 범해 99홀의 연속 노보기 행진이 끝났지만 공동 선두로 출발하면서 한층 성숙하고 완성된 박인비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혹독한 동계훈련,
브리티시오픈 노려
흔들림 없는 박인비는 지난해 놓친 세계 1위 복귀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오는 7월 30일에 열리는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을 향해 있다.
그는 2008년 20살의 나이에 US여자오픈을 제패한 뒤 한동안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2년 제 2의 메이저대회인 에비앙마스터스에서 통산 2승째를 수확하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이후 2013년에는 나비스코, 웨그먼스LPGA, US여자오픈에서 LPGA투어 역사상 63년 만의 메이저 3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박인비는 브리티시여자오픈까지 우승할 경우 사상 최초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이에 박인비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목표로 뛰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해부터 승격된 에비앙챔피언십도 있지만 유독 브리티시여자오픈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일부러 추운지역을 골라 동계훈련을 하면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또 “예전에는 비옷만 입어도 스윙 템포가 느려지는 등 무엇인가 불편했다”며 “(브리티시여자오픈은) 비바람 등 악천후와의 싸움이다. 타킷을 설정한 훈련 덕분에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내 커리어 그랜드스램에 청신호를 켜고 있다.
더욱이 그는 “스트로크의 경로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으로 톡톡히 효과를 봤다. 일단 왼쪽으로 빠지는 미스 퍼팅을 제어하는 데 그게 도움이 됐다”며 “조금 더 연습하면 2년 전 절정의 퍼팅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절치부심했던 심정을 전했다.
슈퍼루키,
본토무대 위해 예열 마쳐
박인비 뿐만 아니라 아시안 시리즈를 모두 끝내고 미 본토에 상륙해 경기를 펼치게 된 슈퍼루키들의 각오 또한 남다르다.
올 시즌 가장 주목받고 있는 김효주는 LPGA 공식 데뷔 두 대회 만에 톱 10을 달성하면서 본토무대에 대한 청신호를 켰다. 그는 공식 데뷔전인 혼다 LPGA타일랜드에서 공동 23위에 그쳐 다소 아쉬웠지만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로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김효주는 버디 3개를 몰아치는 능력을 보여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역전의 여왕 김세영은 시즌 두 번째 대회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단숨에 신인왕 1순위에 올랐고 장하나는 올 시즌 3개 대회에 출전해 두 차례 톱10에 들면서 신인왕 자리를 노리고 있다.
아직 잠잠한 백규정 역시 지난 시즌 LPGA 투어 하나외환챔피언십을 포함 4승을 거둔 만큼 반등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처럼 태극낭자군단이 기존의 골프 강국을 제치고 우뚝 서있는 데는 어려서부터 다져온 탄탄한 기본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골프 해설위원은 “한국 선수들은 워낙 기본기가 탄탄하다. 어렸을 때부터 스윙 폼에 대해 오랜 시간을 할애하며 레슨을 받는 등 기초가 확실히 다져져 있기 때문에 경기력의 기복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또 한 골프 해설위원은 “집중력이나 성실함 등 한국선수들의 근성이 남다르다. 부모들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엄청난 연습을 한다. 최근에는 외국선수들도 한국선수들을 따라할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선수들이 체구는 작지만 샷감은 탁월하다는 데서 우승 이유를 꼽는다.
이와 함께 박세리를 시작으로 이어진 세리키즈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두터워진 선수층이 한국골프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덕에 국내 투어 자체도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국내무대에서 우승하는 선수들이 LPGA투어에서 우승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짧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금 43% 우리 손에
시즌 초반부터 거세게 불고 있는 한국 돌풍은 본격적으로 미국 본토무대로 이동할 경우 다소 주춤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올 시즌 역대 최강으로 꼽히는 군단을 보유한 만큼 한국선수들의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도 포착된다.
더욱이 세계랭킹 2위인 루이스를 비롯해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도 시즌 초반 주춤한 상태고 랭킹 4위 펑산산(중국)도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등 한국선수들을 대항할 수 있는 별다른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 올 시즌 코리안 돌풍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 시즌 얼마의 상금을 차지하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미 한국계선수들은 5개 투어를 통해 상금 690만 달러 중 300여만 달러(43.3%)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앞으로 25개 투어에 걸린 4585만 달러(약 517억6000만 원) 상금이 남아 있어 상금을 향한 선수들의 각축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랭킹을 비롯해 상금랭킹, 올해의 선수 랭킹, 신인왕 등 다양한 타이틀에서도 한국선수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코리안 돌풍이 시즌 후반까지 이어질 경우 올 시즌은 ‘한국 선수의 해’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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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