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보그룹, 내밀하게 움직여

나중에 검찰수사와 그 이듬해 열린 국회 청문회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보그룹의 임원이 로비를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기업들은 집요한 특성이 있다. 특히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그룹의 오너인 회장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이 은밀히 나서더니 당시 몇 명은 로비에 넘어갔다. 해당 의원들은 정치생명이 곧장 끊어졌다.
하지만 필자가 당시 모셨던 의원만큼은 로비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한보 측의 부탁을 거절해 버렸다.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유일하게 로비가 통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대학 후배로만 생각하고 나간 자리였다. 하지만 그 후배는 한보그룹의 임원이었다. 짧게 안부인사를 묻고는 느닺없이 두툼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로비를 시도하는 것으로 직감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히 거절했다. 곧장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런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이듬해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로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디딤돌 인사’로 선정되었다. 그 뒤로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였다. 존경스러운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로비를 단호히 거절했기 때문에 떳떳하고도 강하게 청문회에 임할 수 있었다. 날을 세웠다. 정태수 회장과 한보그룹, 금융감독당국, 청와대 등 권력주변의 비호세력들을 상대로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전문성을 갖추고 있던 의원의 질의는 칼끝처럼 매서웠다.
청문회, 제보와 전문가 활용
1997년 12월,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그 이듬해 초부터 있었던 국회 외환위기 원인규명 국정조사와 청문회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가 있었지만 미흡해 결국 국회가 나섰다. 1998년초에 국회에 ‘IMF 환란원인규명과 경제위기 진상조사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곧바로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진행되었다.
보좌했던 의원은 로비를 단호하게 거절한 후 해박한 금융지식을 바탕으로 한보그룹와 정부 측을 한층 몰아세웠다. 당시 부총리와 재정경제부 고위간부, 은행관계자들은 답변에 애를 먹고 쩔쩔맸다.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당시 비서진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가 실력이 출중했고 경험이 많은 보좌진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당시 내로라하는 경제·금융전문가들의 조력도 받았다.
금융전문가들을 동원해 금융특혜의 진상과 외환위기 원인을 파고 들었다. 환율, 금리 등 어려운 통화신용정책 분야는 물론 은행계수 등 복잡한 수치도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은행과 은행감독원, 종합금융사, 증권사, 경제연구소,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을 동원해 청문회를 치밀히 준비했었다. 그들은 금융권의 내부정보에도 밝았다. 금융감독당국, 정책수립 부서 등 정책결정 라인의 동향과 내부정보에도 밝았다. 청문회를 앞두고는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정경유착과 정권의 무능함에 분노해 있던 금융권 인사들이 각종 사례를 제보해 주었다.
당시에 의원회관이 아닌 마포 인근에 별도 사무실를 마련해 청문회를 준비했다. 밤낮없이 토론하고, 핵심적인 자료에 접근하려 했다. 당시 피감기관에 요청해서 제출받은 자료들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질의서 방향을 정했다. 몇차례씩 질의서를 수정했다.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에 씨름하며 간식을 시켜먹으며 날밤을 지새웠다. 그같은 노력으로 국정조사와 청문회 스타를 만들어냈다. 제보를 받은 이후 꾸준히 노력했던 만큼 당연한 결과다. 무척이나 고단했지만 뿌듯했다.
정태수 회장, '모르쇠'로 일관
한편 당시 청문회에 나타난 한보 정태수 회장은 일명 ‘모르쇠’로 지칭되었다. 의원들의 서릿발 같은 매서운 추궁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는 일이다”로만 일관했다. 뻔뻔한 행태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의원실의 전화통이 불이 날 정도였다. 청문회를 보며 답답해하던 시민들은 더 강하게 추궁하라고 연신 전화를 해댔다.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마치 중병이라고 걸린 것처럼 휠체어를 타고 청문회장에 들어오던 정태수 회장의 모습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당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권력 주변 인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로비를 벌였다. 그렇지만 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자물쇠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당시 모 의원은 정태수 회장을 빗댄 답시고 실제로 청문회장에 자물통을 들고 나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긴장감이 돌던 청문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카메라를 의식한 보여주기 식 행태였다
한보그룹 정경유착, 2차례 있었다!
한편 한보그룹의 정경유착 사건은 두 번이나 있었다. 1996년 전후 한보철강 건설에 따른 금융특혜 사건이었고, 또 한번은 1991년에 있었던 수서택지 비리사건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을 흔들었다. 1991년 2월, 한 중앙일간지가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인 수서택지 분양특혜 사건을 특종 보도했었다. 사건의 개요는 1991년 1월 21일 서울시는 강남 수서택지개발지구 토지 35,000여 평을 주택조합에 특별공급키로 했다고 발표했으나, 이 곳은 당초 서울시가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 서민들에게 분양해야 할 땅임이 밝혀졌다. 한보사건의 시발이 시작된 것이다.
검찰조사 결과 서울시가 발표한 특별공급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곳곳에 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물론 정부관계자, 국회에도 뇌물을 제공했던 것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서울시와 건설부 등 유관 기관에 압력을 가하여 택지를 공급한 것이다. 정경유착에 관련된 인물이 청와대·정부·국회·서울시 등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한보그룹은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 특혜를 받은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부정과 비리가 감춰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은밀하게 진행된 한보그룹의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특혜 사건은 숨은 제보자와 국회의 노력으로 밝혀진 것이다.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통해 재벌기업들의 금융특혜, 재벌들의 상호출자, 계열사간 지급보증, 천문학적인 규모의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 온갖 비리와 폐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외환위기 징후는 곳곳에 있었지만 무능했던 김영삼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계속) <김현목 보좌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