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장비 도입하며 정부예산 가로채…이규태 회장 영장
이완구 총리 ‘부패와의 전쟁’ 해외자원개발 수사로 확대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되면서 그동안 깃털만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온 방산비리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분위기다.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함께 수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수사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 회장은 무기중개업계 거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불곰사업’으로 불린 러시아와 우리나라 간 무기거래 과정에서 8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을 통해 지난 정권의 비리를 들추어내려는 것 아니냐며 합수단의 수사를 놓고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아울러 합수단이 이 회장 외에 다른 로비스트들의 뒤도 캐고 있다는 소문이 검찰 주변에서 무성하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될 경우 전 정권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이 회장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비리 등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이 회장과 공모해 사기를 벌인 혐의로 권모 전 SK C&C 상무도 함께 영장을 청구했다. 합수단은 지난 11일 오전 일광그룹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 후 이 회장을 체포한 데 이어 오후에는 예비역 공군 준장인 권 전 상무를 체포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 합수단은 또 이날 오전 일광그룹 계열사인 (주)솔브레인의 이사 조모(49)씨를 체포해 조사 중에 있다.
합수단 조사 결과 이 회장과 권 전 상무가 공모한 EWTS사업 비리에는 일광공영과 SK C&C, 일광그룹 계열사인 (주)솔브레인·일진하이테크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EWTS사업은 방사청이 지난 2009년 4월 터키 하벨산사와 EWTS시스템 도입을 조건으로 9600여만달러(1050억 원대)에 체결한 계약으로 일광공영은 이 과정에서 중개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합수단 조사결과 밝혀졌다.
당초 하벨산사는 방사청에 약 5100만달러를 공급가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나서 입찰가를 1억4000만달러로 부풀렸고 결국 최종적으로 9600여만달러에 계약이 이뤄졌다. 5100만달러짜리 사업이 9600만달러까지 늘어난 데는 이 회장이 훈련장비의 국산화를 명목으로 금액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규태 회장 연결고리 수사
이 회장은 “하벨산사로부터 EWTS시스템을 들여오더라도 기술이전이 안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때 곤란할 수 있다”며 “국내 업체를 통해 자체적으로 EWTS시스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방사청에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소요되는 연구개발비는 4500만달러로 책정됐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국내 협력업체로 권 전 상무가 근무하고 있던 SK C&C를 추천했고 SK C&C가 다시 일광그룹 계열사인 (주)솔브레인과 일진하이테크에 재하청을 주는 식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이 회장은 이 과정에서 재하청 부분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사 당국은 SK C&C의 계약과 단가책정이 합당했는지 살피는 한편 일광그룹의 수익금의 일부가 로비자금 등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지 등을 정밀조사 중이다.
더욱 석연치 않는 점은 EWTS시스템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진하이테크 등은 자체 개발이 아닌 외국 회사에서 성능 미달의 부품을 들여와 마치 자신들이 개발한 것처럼 속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SK C&C는 방사청에서 EWTS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권 전 상무(예비역 준장)가 군 제대 후 2007년 4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근무한 회사다. 이에 합수단은 권 전 상무가 비리에 깊게 연루된 것으로 보고 또 다른 SK C&C 관계자의 공모 여부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합수단은 권 전 상무가 군 제대 후 SK C&C에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면서 EWTS사업과 관련 방사청 관계자들과 접촉을 시도한 정황을 잡고 조사 중이다.
일단 SK C&C 측은 당시 권 전 상무를 방위사업 수주 목적으로 영입한 것은 맞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2009년 말에 퇴사했기 때문에 비리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EWTS 수주 건과 관련해 SK C&C는 정상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합수단은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부풀려진 금액이 상당부분 이 회장의 비자금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고 일광공영의 자금흐름 추적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합수단은 이미 일광공영 계열사뿐만 아니라 이 회장의 비자금 세탁 창구로 의심되고 있는 A교회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여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또 합수단은 군단급 정찰용 무인기(UAV) 능력 보강사업 과정에서 제기된 일광공영 계열사의 기밀유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특히 이 부분은 향후 경우에 따라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정찰용 무인기 사업 비리 의혹에 여권 관계자가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업과 관련해 지난 전 정권 핵심 실세가 뒤를 봐줬다는 말이 무성해 합수단 수사가 이 부분까지 미칠지 주목된다.
청와대 전방위 수사 예고 왜?
사정기관의 수사가 거물급 로비스트 수사로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청와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합수단의 방산비리 수사가 거물급 로비스트를 겨냥하고 있는 시점에 청와대와 여권이 부패 척결을 선언하자 이를 두고 여러 추측과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방산비리 수사가 정치권과 관가로 확대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방산비리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청와대 주변에서 끊임없이 “방산비리 수사가 정·관·재계로 확대될 것이며 청와대와 사정기관이 수사확대 가능 여부를 긴밀히 타진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완구 국무총리(65)는 지난 12일 첫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정부 역량을 총동원해 우리 사회의 적폐와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특히 해외자원개발과 방위사업 등 이명박 정권과 연관된 비리 사건을 구체적 부패 사례로 지목했다. 최근 검찰이 자원외교 비리 의혹 수사를 권력형 비리를 담당하는 특수1부로 배당했다. 사정 칼날이 이명박 정권을 정조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당면한 경제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특히 “최근 방위사업과 관련한 불량 장비·무기 납품, 수뢰 등의 비리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해외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 부실투자 등도 어려운 국가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핵심사업인, 일명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 가운데 자원외교와 방위사업 비리를 대표적 부패 사례로 적시한 것이다. 이를 두고 박근혜 정부가 전 정권에 대한 사정 작업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총리가 총리 자리에 오르고 적응기간을 끝내자마자 이처럼 전 정권을 겨냥하고 나서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MB정권 사정 시나리오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총리가 방위사업비리, 해외자원개발 논란 등과 더불어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등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향후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대형 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수 1부는 최근 형사부와 조사1부에 흩어져 있던 자원외교 관련 각종 고발 사건을 모두 재배당 받아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검찰은 일단 여러 부서에 나뉘어 있던 사건을 모아 정리하는 것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주변에서는 ‘사건의 전면검토 작업’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특수부가 자원외교 관련 사건을 모두 맡은 점을 감안할 때 검찰 수사가 방산비리에서 정치권과 재계의 로비, 횡령 등 부패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위험한 시간
특수1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 수사에 가장 근접해 있다. 특수부에는 감사원이 캐나다 하비스트사 인수와 관련해 1조3300여억 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올 초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고발한 사건과 정의당이 자메이카 전력공사에 지분투자를 결정한 이길구 전 한국동서발전을 800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재배당된 상태다.
또 한국광물자원공사, 가스공사, 석유공사의 전·현직 사장 6명과 이 전 대통령, 최경환 경제부총리(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고발된 사건도 역시 특수1부가 맡았다. 재계 수사도 추진되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등 해외에서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도 검찰의 내사가 진행 중이다.
포스코건설은 발주처에 리베이트로 쓰기 위한 비자금이었다고 자백에 가까운 해명을 했지만 검찰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포스코건설이 일부 비자금을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에 주목해 자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6일 전국 검사장회의에서 대기업들의 부정부패와 불공정거래를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사실상 대기업 수사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1년여만에 대기업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고 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이와 관련, 검찰 주변에서는 올초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가 기업 비리 수사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사건을 법리적으로 처리하는 형사부의 기능을 넘어 특별수사 방식으로 불공정거래 관련 비리를 캐기 위해 새로 만든 조직이다. 공정거래위에 대한 고발요청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불공정거래 수사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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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