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서울 강남에 전국 조폭 5000명이 모인 까닭은?
단독보도-서울 강남에 전국 조폭 5000명이 모인 까닭은?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9-10-13 16:44
  • 승인 2009.10.13 16:44
  • 호수 807
  • 5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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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계 원로 자녀 결혼식 ‘야인시대’한장면 연출
(사진왼쪽) 지난 9월 9일 결혼식장을 찾은 하객들 중 상당수는 자리가 없어 서있어야 했다.(사진오른쪽) 식장 입구에 늘어선 화환들은 신상사의 파워가 여전히 간제함을 보여준다.

2009년 10월 9일 서울 강남의 르네상스호텔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등 아세아권 주먹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 것. 호텔은 그야말로 주먹천하였다. 이들은 주먹계의 원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동파 행동대장 신상사(본명 신상현·75세)의 자녀 결혼식 참석차 모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일대 교통은 마비되고 주변 정리를 위해 사복 형사 등 수백 명의 경찰인력이 동원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신상사는 자유당시절 명동의 보스였던 이화룡의 직계이다. ‘일요서울’은 결혼식 소식을 미리 듣고 이날 결혼식장을 찾아 현장을 스케치했다.

금요일인 지난 9일 오후 4시 서울 강남 르네상스서울호텔 3층 다이아몬드 볼룸홀. 예식시간이 가까워지자 정장을 차려입은 하객들이 홀을 가득 채웠다. 방명록을 살펴보니 4000명이 훨씬 넘는 하객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호텔 관계자들 이야기로는 결혼예정 한 두 시간 전에 미리 다녀간 하객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미리 식장을 다녀간 이들은 대부분 거물급 인사들로, 외부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예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얼굴만 잠깐 비추고 사라진다는 게 주먹계 인사의 전언이다.

20세기파의 보스로 알려진 천달남, 시라시니의 직계로 알려진 대구의 조창조, 칠성파 보스 이강환씨 등은 결혼식 시작 전에 미리 식장을 다녀갔다고 이 주먹계 인사는 전했다.

또 일본의 쓰미요시구미, 아나가와구미, 야마구치구미 등 야쿠자 3대 패밀리도 미리 다녀갔다고 했다.

호텔 주변은 식장을 찾은 주먹들의 고급 승용차로 가득 찼다. 이로 인해 호텔 주변 교통도 혼잡했다. 어떤 이들은 호텔입구에서 차가 막히자 차에서 내려 수행원들과 함께 바쁜 걸음으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달라진 주먹들 분위기 밝아

호텔 입구에선 주먹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이들은 주로 나이든 원로 주먹들이었고 그 인사들의 주변에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경호를 하고 있었다.

이날 하객들의 복장은 대체로 밝은 색이었다. 검은색을 즐겨 입던 때가 가고 이젠 밝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런 점은 주먹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또 과거에는 서로 부딪혀도 정겹게 인사를 나누는 일이 드물었다. 칼부림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서로 친구처럼 편하게 만나 담배를 나눠 피우거나 악수를 나눴다.

이강환씨는 결혼식 전날 이미 서울에 올라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칠성파 식구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주먹계 인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칠성파가 현재 서울을 대부분 장악한 상태이며 이강환씨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서울에 올라와 머문다고 한다. 르네상스 호텔의 한 관계자는 “이강환씨가 자주 호텔에 머문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꼭 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호텔은 마치 주먹들의 요새 같았다. 호텔 주변 곳곳에 일명 ‘깍두기’들이 서성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호텔 입구는 말할 것도 없고 호텔 주차장 입구, 후문, 정원 등에도 깍두기들이 두 세 명씩 배치돼 있었다. 이들은 지나는 사람을 유심히 살피다가 아는 인사들이 지나갈 때면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호텔 주변 경계 삼엄

식장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나라당 체육분과위원회, 농협중앙회장, 탤런트 최수종, 가수 설운도, 현대금속회장 등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화환이었다. 또 김윤규 전 현대아산부회장은 직접 이 자리를 찾아 축하인사를 건넸다.

예식은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어졌다. 사회를 맡은 개그맨 강성범씨가 지각을 한 탓인 것 같았다. 강씨는 퀵서비스 오토바이 뒤에 타고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허겁지겁 호텔 앞에 나타났다. 강씨의 도착과 함께 곧이어 예식이 진행됐다. 대부분의 인사들은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서둘러 하나 둘 씩 자리를 떠났다.

호텔 주변에 정복 경찰은 없었다. 사복 경찰관으로 보이는 인사만 소수 눈에 띄었으나 이상상황 발생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서인지 이들도 오래 자리에 머물지는 않았다.

한편 2007년 4월 14일 부산 서면 롯데호텔에서도 이와 유사한 진풍경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칠성파 대부로 알려진 이강환(67)씨의 아들 결혼식 축하를 위해 전국에서 이름난 주먹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대 교통은 마비되고 주변 정리를 위해 사복 형사 등 수백 명의 경찰인력이 동원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는 것.

주먹 원로들의 결혼식에 조폭들이 대거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한 경찰관계자는 “조폭들은 원래 폼생폼사이다.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모이는 것이 자신의 세 과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라며 “또 청첩장을 받은 사람도 의리 때문에 참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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