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 (주)리도에너지 김대형 회장
‘그때 그사람’ (주)리도에너지 김대형 회장
  • 서승만 편집위원
  • 입력 2015-03-09 14:22
  • 승인 2015.03.09 14:22
  • 호수 1088
  • 6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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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과 예술 넘나드는 ‘다재다능 엔터테이너’

[일요서울 | 서승만 편집위원] 김대형 회장(다이꾸 사사키)은 늘 자신은 그냥 늘 쉬지 않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한다 해도 그것을 결코 실패라고 생각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내 길을 걸어 왔던 것이 지금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다이꾸 사사키(김대형 회장)씨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990년대부터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어 선구적인 역할을 해 온 (주)리도에너지 김대형 회장. 그는 일본소재의 국내 NEW 에너지 추진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판 이코노미스트, 주간 아사히, 주간 아에라 및 아사히 공업신문 등에 보도되며 몇 년 전 일본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인물이다. 신제품 테스트와 생산 라인 준비를 위해 늘 일본과 한국을 바쁘게 오간다. 이번에 귀국한 김 회장을 [일요서울]이 만나봤다.

그가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이 내년엔 매출 500억 목표 달성, 이쯤 되면 내년쯤엔 이제 자신도 책 한 권 쓸 만하지 않느냐고 자신있게 말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인터뷰 할 당시만 해도 ‘다이꾸 사사키’라는 일본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그를 한국인으로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알고 보니 지금은 고인이 된 과거 작곡가 박춘석, 길옥윤, 가수 조미미씨 등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다. 그는  지금도 녹슬지 않은 감각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멈추지 않는 끼는 이번 귀국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는 이미 ‘구인사의 종소리’, ‘미련’, ‘한 생을’, ‘더욱 큰 사랑’, ‘친구’ 등 많은 곡을 작곡했고 ‘유니버셜 레코드’ 등과 함께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바 있다.

현재 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향후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앨범을 출시할 계획이다. 자신의 나라에서도 힘들다고 하는데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 땅에 와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고 말한다. 또, 올해는 더 많은 공부도 할 계획이고, 작곡가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또 기업인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이처럼 열심인 것은 잠재되어 있는 “끼”의 발산인가, 굴복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감출 수 없는 재능,
음악으로 표출

그는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늘 한국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는 소명 때문이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느 젊은이보다 빛나는 눈빛을 자랑했다.

그는 예전부터 가수로도 활동 중이며 향후에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앨범을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한때 홍대 앞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은 인기 있는 화가로 왕성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으며 내년에는 LA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 문화 예술을 홍보하는 데도 힘쓰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20여 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리도에너지를 설립하고 큰 성공을 거둔 김 회장은 순수 국내파 사업가로 재일교포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일본 전통적인 야쿠자들의 사업방해와 그들과의 사투, 말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문화적인 이질감, 그곳에서 흔들리지 않고 알뜰하게 중소기업을 성장시켜 왔다.

15년 전 그가 일본에서 레스토랑 체인점을 오픈할 때마다 동네 야쿠자들의 행패가 심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진솔하게 마음을 열고 음악과 그림으로 감동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아예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체에 그들도 적극 협조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그의 예술적인 재능과 감각은 척박한 일본 땅에서 자리잡는 데 아주 큰 몫을 해냈다. 다재다능한 예술인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인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업가이기 이전에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인으로서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갔던 것이 성공의 포인트였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그의 예술적 감각이 일본인들의 정서에 진실하게 전달됐고, 소통의 창으로 작용했다. 사업에 임하는 그의 겸손한 자세는 일본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사업이라 말할 수 없다. 한국 기술로 좋은 상품을 새롭게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고도 싶다. 그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러한 겸손함으로 인해 그는 일본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 활동해왔다. 2013년 일본 세계한인재단 총회장, 세계한인재단 총괄본부장으로 임명돼 현재까지 맡고 있으며 특히, 그는 예술적, 사업적 가치 창출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세계 시장 진출 본격화

1990년에서 1994년까지 섬유수출회사 사장과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수출부분에서 많은 실적을 올렸던 김 회장은 1995년 3월 일본 대기업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컨설팅을 하게 되면서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지진 발생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베, 오사카 지역에서 에너지 사업과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 위생 청소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점차 지금의 리도에너지의 모습을 갖춰왔던 것이다.

그는 “일본의 지진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나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그 중 태양에너지 개발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업을 활발히 해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리도에너지는 꾸준한 R&D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일본, 중국 등의 기업들과 함께 공동 사업 협약을 맺고 세계무대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김대형 회장은 여전히 二八靑春이다.

 solar21c@ilyoseoul.co.kr

서승만 편집위원 solar21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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