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강호순 사건 되나

영원한 미제로 남을 뻔 한 사건이 우연한 기회를 통해 밝혀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1995년과 2001년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확보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전담수사반까지 꾸렸던 사건이었지만 뚜렷한 용의자가 없어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 우연히 발각된 것이다. 특히 범인이 소지한 수십 장의 신분증을 토대로 여죄를 캐고 있어 자칫 제2의 강호순 사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지난 달 26일 광진구의 한 주택가. 30대의 한 남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배회를 하고 있었다. 올해 37세인 이모씨. 그는 주택가를 돌며 여성의 속옷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
주택가 빨래줄을 유심히 보던 이씨는 마침 그곳을 지나던 경찰의 눈에 띄었다. 수상히 여긴 경찰은 이씨를 불심검문했다. 그런데 뜻밖에 나온 것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휴대전화였다. 출처를 묻는 경찰에 횡설수설 하던 이씨는 결국 임의동행으로 경찰서로 직행했고, 이 과정에서 이씨의 차량에 있던 외장 하드디스크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 사진 파일이 23장이나 저장돼 있었다. 특히 이 중에는 지난 2001년 광진구 자택에서 살해 된 정 모(당시 31·여)씨의 신분증도 포함돼 있었다.
정 씨 살인사건은 당시 수사본부까지 꾸려졌지만 증거 부족으로 미제로 처리됐던 사건이었다. 경찰은 이를 수상히 여기고 이씨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게 됐고 결국 범행사실을 자백 받게 된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1년 9월 광진구 화양동 정 씨의 집에 침입해 자고 있던 정씨를 성추행한다. 하지만 정씨가 반항을 하자 이에 격분해 목을 졸라 살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씨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고 일반 강도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금품을 훔치고 집에 불을 지르는 폭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의 살인행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4년 전 발생했던 살인사건의 범인도 바로 이씨였던 것. 마치 자신의 살인행각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태연하게 범행 과정을 진술했다고 한다.
1995년 10월 서울 아차산 약수터에 오른 이씨는 얼굴을 씻기 위해 약수를 받아 세수를 한다. 마침 약수터에 산책 나온 김모(58·여)씨가 이를 보고 “약수물로 세수를 하면 안되지 않느냐”며 이씨를 나무란 것. 이에 격분한 이씨는 둔기를 들고 김씨를 때려 숨지게 했다. 이 사건도 당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살인 사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씨의 진술을 토대로 미제 사건 2건을 해결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놀라운 것은 이씨의 태도였다. 자신의 범행을 태연스럽게 진술하고 있어 경찰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웠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이코라고 표현하고 있어 여죄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씨는 자신이 살인을 하고 방화를 저지른 정씨사건에 대해 “정씨 사건의 경우 아무런 증거가 없기 때문에 내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인 것을 안다”며 마치 경찰과 게임을 하듯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 성추행 경험 후 성도착증세
그의 집에는 약 1000여장의 포르노 CD가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보관되어 있는 포르노 대부분이 롤리타(아동 성학대) 등 변태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성도착증의 한 형태로 여성들의 속옷도 발견됐다. 또한 지난 2001년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근처에 신혼 살림집을 차리고 꽃집도 운영하기 위해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정신 상태를 감정하기 위해 범죄심리분석가인 프로파일러 면담과 사이코패스 판정도구인 PCL-R 감정을 한 결과 이씨가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판단하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갖고 있던 주민등록증 23점 중 신원파악이 안 된 9건에 대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씨의 부인은 경찰 조사에서 “남편은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절대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에서는 이씨의 엽기적인 행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 경우와 같이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들은 평상시에는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 많다고 한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보통 사이코패스들은 일상생활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범행을 저지를땐 전혀 다른 사람이 돼서 폭력적이고 난폭하게 변하며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이코 패스들의 경우 여성들에게 버림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의 살인 동기에 대해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하면서 왜곡된 성관념이 자리 잡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아차산 부근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난 뒤 성도착 증세를 보이게 됐다”고 진술했다.
자칫 이번 사건이 제2의 강호순 사건으로 번지는 게 아닌가 경찰 관계자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9건의 신분증을 토대로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이씨의 여죄가 밝혀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이코패스 범죄 날로 심각해져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인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연쇄살인범들의 최근 특징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코 패스는 무엇일까.
사이코패스는 인격적 결함의 일종이며 반사회적 인격 장애 중의 하나다. 뇌의 전두엽에 이상이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 부른다.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최초 사이코패스 증상에 대해 저술하였고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슈나이더가 사이코패스의 개념을 설명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는 사이코패스 판정도구인 PCL-R을 개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이코 패스는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도 살인이나 폭력을 휘두를 땐 무척 안정되고 침착해 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들은 연쇄살인이나 폭행을 일삼는다고 한다.
한 전문가는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지 잘 모르며 태연하게 살인 행위를 재연해 내는 등 극한 폭력성을 겸비하면서 침착성을 잃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학자들은 사이코 패스를 가리켜 ‘정장차림을 한 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자만심이 강하며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망각하는 경우다.
특히 이들은 평상시에는 절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언제든 부딪칠 수 있는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충고한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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