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무기 K-9자주포 납품단가 부풀리기 적발

또 다시 군납비리가 터졌다. 이번엔 국내 10대 명품 무기로 선정된 K-9자주포다. 부품 단가를 부풀려 부당이익을 취한 외국계 기업이 적발된 것.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삼성테크윈과 방위사업청이다. 외국계 기업 한국무그에서 부품을 납품받아 K-9을 조립하는 삼성테크윈과 이를 관리 감독하는 방위 사업청 모두 납품 단가를 속인 한국무그의 행태를 적발해 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삼성테크윈의 경우 이를 1차적으로 확인해야 했음에도 협력업체의 서류만 믿었던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요서울>은 이번에 적발된 부품 원가 부풀리기를 통한 납품비리를 파헤쳐봤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지난 7일 K-9자주포 부품 단가를 부풀려 수십 억 원을 챙김 혐의로 외국계 무기 업체인 한국무그사 이천 본사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한국무그는 K-9자주포의 부품중 하나인 서브실린더 조립체를 삼성테크윈에 납품하는 납품업체다. 그런데 한국무그사는 서브실린더 700여개를 납품하면서 단가를 2배 정도 부풀려 개당 650만원~125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무그 본사를 압수수색해 회계 관련 서류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삼성테크윈도 압수수색을 하려 했지만 기밀자료가 많은 관계로 자료협조요청을 하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한국무그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정밀 제어 전문 기업으로 지난 1986년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현대모비스, 포스코 등 대기업의 생산시설에 모션제어설비를 납품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본사에서는 무그의 모션 제어 제품들을 위한 최첨단 유지보수 서비스와 함께 액츄에이터, 서보모터, 일렉트로닉스 등의 생산을 하고 있다.
무그사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영국 등 13개의 지사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정밀무기체계 부품회사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무그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많은 무기 부속품들을 납품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기체계를 만드는 무기업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무그사는 삼성테크윈과 방위사업청을 어떻게 속였던 것일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제품 단가를 명시하는 세금계산서를 위조했던 것이다.
달랑 서류 한 장에 속아 넘어가
일반 공산품들의 경우 여러 회사에서 제품이 생산되므로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들의 단가 비교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적발된 K-9의 경우 우리나라가 자체 생산한 것이기 때문에 부품 단가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는 게 삼성테크윈의 설명이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한국무그사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을 마치 외국에서 수입한 것처럼 세금계산서를 꾸며 제출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세금계산서를 믿고 단가가 그렇게 형성됐다고 생각할 뿐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삼성테크윈이라는 대기업에서 국가 세금을 들인 사업을 진행하는데 외국계 기업의 서류 한 장만을 믿고 납품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물론 처음부터 철저하게 관리를 했고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한국무그사에서 그만큼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K-9을 만드는데 많은 부품이 드는 만큼 다른 협력업체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전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부품 단가에 있어서 1차적으로는 삼성테크윈에서 확인을 하지만 결정은 방위사업청에서 최종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이번 납품비리는 세금계산서를 위조한 것인데 보통 원가를 따질 때 세금계산서를 보고 따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원가를 부풀릴 수 있다. 다른 품목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어 왔다. 그래서 방위사업청은 계약을 할 때 원가 부분을 속이는 경우에는 부적격업체로 지정하고 부당이익에 대해선 2배의 환수조치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방위사업청은 이번 납품비리와 관련해서 삼성테크윈과 계약을 했기 때문에 1차적 책임은 삼성테크윈측에 있다며 “환수조치는 계약자인 삼성테크윈측에 청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의혹 수준이기 때문에 수사결과에 따라 방침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위사업청도 이번 납품비리에 자유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이 조사를 하기 전인 지난 6월 방위사업청은 이미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자체 감사를 벌였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은 “지난 5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관련 내용을 통보 받고 6월 초 일주일 동안 감사를 벌였지만 특별히 밝혀낸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방위사업청의 안일한 대처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 김옥이 의원은 변무근 방사청장에게 “도대체 5월에 인지하고서도 국방위에 보고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몇 개월 동안 무엇을 했나. 하계휴가만 다녀왔느냐”며 비난했다.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은 “방위사업청 산하에 계약관리본부와 원가관리부도 있다. 그런데 원가산정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이런 비리가 자꾸 발생하는 것에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며 질책했다.
외국계 기업에 놀아난 삼성테크윈과 방위사업청. 이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가 어떤 결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명품 무기, 해외 수출에 먹구름 드리우나
‘K-9 자주포’는 21세기 전장조건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사거리, 반응성, 기동성 및 생존성이 우수한 세계수준의 자주포로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력화된 52구경장 자주포이다.
K9자주포는 사거리 40Km를 위한 155mm 무장과 항법장치, 자동 탄 이송장치 및 자동사격통제장치를 적용하여 급속발사, 최대 발사속도 사격이 가능하며 1000마력 급 엔진, 자동변속기 및 유기압 현수장치를 장착하여 우수한 기동성능을 갖추고 있다. 승무원은 5명이고 발사속도는 분당 최대 6발, 지속 2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한 대당 가격은 약 37억 원에 달한다. 1989년부터 약 10년간의 노력 끝에 국내 독자 기술로 이뤄낸 국산 무기 중 하나다. 지난 2000년부터 군에 보급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번 납품비리 사건으로 일각에서는 세계 무기 시장에서 국산 무기의 단가 부풀리기가 마치 관행처럼 보여 질 가능성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 전문가는 “자칫하다 우리 고유 기술로 이뤄낸 국산 무기들을 수출하는 데 이번 사건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든다. 이번 단가 부풀리기 사건이 잘 해결돼 국산 무기 수출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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