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서청원 중대결단 임박
맏형, 서청원 중대결단 임박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3-09 10:42
  • 승인 2015.03.09 10:42
  • 호수 1088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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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권 행사·당협위원장 교체 [파문]
▲ photo@ilyoseoul.co.kr

친박계 핵심 이끌고 총선 D-1년 4월 거사說
김무성, 친박계 소장파 포섭 작전도 본격화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지난 5일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서청원 최고위원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김무성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작년 7·14 전당대회에서 했던 말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쏘아붙였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김 대표가 지도부 경선 당시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기 위해 당 대표가 되려한다”고 공약한 내용을 꼬집는 발언이었다.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을 약속해 놓고 총선을 1년여 남긴 시점에 일부 원외 당협위원장을 축출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김 대표의 측근 이군현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 조직강화특위는 지난해 말 실시한 당무감사 결과를 토대로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 8명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친박계로, 7·14 전당대회 당시 서청원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이다. 친박계에선 조강특위가 당무 감사를 핑계로 ‘보복성 찍어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친박계 한 인사는 “가령 부평을 김연광 위원장의 경우 당협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뻔히 알면서도 친박 원로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표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있던 2013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당적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부평을 당협은 조직위원장이 한시적으로 당무를 대신했다. 이 때문에 조직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사정이 있음에도 김 위원장 지역구를 ‘부실’로 판정해 교체를 시도하는 건 김 대표 측이 자기사람을 심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주장이다.

‘보복성 찍어내기’ 의구심

김 대표가 자신의 핵심 측근인 권오을 전 의원을 인재영입위원장 자리에 앉힌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권 위원장은 각계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신진을 영입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친박계 핵심 현역 의원들이 포진한 지역이 주요 공략지점이다.

김 대표 진영에선 최근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친박계 이한구 의원(대구 수성갑)의 사례를 공천 물갈이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의원은 4선 중진으로, 친박계 원로그룹 ‘7인회’의 리더인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과 동서지간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총선에 임박하면 이한구 의원의 경우를 들어 ‘영남권 친박 중진 공천 배제론’이 확산될 수 있다”며 “지금처럼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차질을 빚고, 다시 한번 인사 참극이 벌어진다면 국민적 공감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표 세력은 친박계 포섭 작전도 병행하고 있다. 친박 핵심에 불만이 많은 초·재선 소장파가 대상이다. 친박계 한 초선 의원은 홍문종·윤상현·김재원 의원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소위 친박계 핵심이라는 사람들이 계파 안에서도 이너서클을 만들어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들먹이며 호가호위 하는 데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소장파가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친박계 후보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친박계 소장파의 반란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남 친박중진 공천 배제론

김무성 대표 측은 그런 틈새를 파고들 기세다. 이미 포섭 가능한 친박계 소장파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행동에 돌입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김 대표가 직접 식사 자리 등을 통해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 진영의 전방위 압박이 이어지자 친박계 좌장인 서 최고위원이 이런 움직임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지난 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도 자신의 측근인 서울 동대문을 김형진 위원장 등이 교체 대상에 오르자 탁자를 내려치며 “지금 뭐하자는 것이냐”고 고함을 지르는 등 거칠게 항의했다.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서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결연한 표정으로 “언젠가 내가 여러분들 앞에서 기자회견 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와의 결별을 포함한 ‘중대 결단’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정치 고수인 서 최고위원이 그 정도 말을 한 건 계파 차원에서 뭔가 복선을 깔고 있다는 의미다. 단순한 엄포용이 아닐 것”이라고 해석했다.

교체대상으로 지목된 8명의 당협위원장들도 행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당협 부실관리라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현역 당협위원장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려는 의도가 무엇이냐”며 김 대표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내는 등 저항에 돌입했다.

서 최고위원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전체 당협위원장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당협위원장이 몇 달 안에 전원 사퇴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데 총선을 1년 앞두고 일부 위원장만 선별적으로 교체하는 건 무슨 의도냐”고 따진 것으로 전해진다.

“독단적 인사 안된다” 독설

서 최고위원이 김 대표의 ‘전횡’을 크게 문제 삼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연말 김 대표가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에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가 좋지 않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영입하려 했을 때 강하게 반발했다. 여의도연구원은 총선 때 현역의원 교체지수를 산정하는 등 공천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당시 서 최고위원은 김 대표를 향해 “독단적 인사를 하지 말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지난 1월에는 당 지도부가 사고 당협위원장 인선에 100%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하자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내년 4월에 실시될 20대 총선 D-1년을 앞둔 시점에 친박계는 바짝 독이 올라 있다. ‘공천학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친박계는 지난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 작업에서 대거 탈락하는 쓰라림을 맛봤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반대로 친박계가 친이계를 무력화 시켰지만 내년 총선에선 다시 김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이끄는 비박계로 부터 공천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김 대표가 “지도부는 공천에 관여하지 않고 완전 국민경선제를 실시하겠다”고 줄곧 강조하지만 친박계는 믿지 않는다. 이번 당협위원장 교체 시도에서 보듯이 다른 명분을 붙여 친박계를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따라서 친박계 내부에선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은 당내에서 계파가 충돌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최소화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총선이 1년 남은 시점에 비박계의 친박계 고사(枯死) 작전이 본격화 되는 마당에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박계 ‘4월 거사설’이 제기되는 이유다. 4월은 임시국회가 열리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어렵고 5월에 거사를 벌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중점과제인 공무원연금개혁 처리 시한은 4월로 정해져 있다. 현 지도부가 이를 관철시키지 못하면 거사의 명분이 된다.

또 4·29 재·보선 결과도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통합진보당이 점유하고 있던 3곳에서 치러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완패한다면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거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집단 퇴진으로 K-Y(김무성-유승민) 체제를 붕괴시키는 일이다.

현재 김 대표를 제외한 5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친박계는 3명(서청원·김을동·이정현)이다. 나머지 2명(김태호·이인제)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거사에 동참할 수 있다. 이 경우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패배한 직후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이 일제히 사퇴하면서 홍준표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 일이 참고가 될 수 있다. 당시 유승민 최고위원이 주도한 거사 이후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섰다.

4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거꾸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한 축을 맡고 있는 K-Y 지도부가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거사로 와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정치의 아이러니다.

정치평론가들 가운데는 여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친박계가 지금의 새누리당을 껍데기만 남긴 채 집단으로 빠져나와 새로운 여당을 만드는 방법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이 2003년 출범한 직후 여당인 민주당에서 일제히 탈당해 열린우리당이란 새로운 여당을 만든 일이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집단 탈당 후 신당을 만드는 방법은 이미 새누리당의 상당 부분을 김 대표가 장악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희박하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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