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명동 사채왕’ 최모씨 구속 이후 우리나라 사법계의 명예와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경찰부터 판사까지 사법당국의 중심이 되는 구성원들이 최씨에게 뇌물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복과 법복을 벗어야 했다. 엄중한 법의 잣대로 각종 범죄와 싸우던 이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이런 가운데 속속 밝혀지는 최씨의 범죄 행위는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신모씨, 사기도박 당하고 밀수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
보험금 노린 정보사냥꾼으로 변질, 위장 거래수사와 달라
신씨는 탄원서에서 2001년 도박으로 8억 원을 날렸는데 나중에 최씨의 측근에게서 “당신이 참여한 도박판은 최씨가 꾸민 사기도박이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신씨가 이를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최씨가 신씨를 다방으로 불러냈고 이 자리에서 신씨는 최씨가 데리고 나온 사람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신씨의 주머니에 필로폰 0.3g이 들어있던 것을 발견했고 신씨는 마약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게 됐다.
신씨는 최씨가 데리고 나온 일명 ‘바람잡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도중에 누군가가 신씨의 주머니에 필로폰을 몰래 넣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출동했던 경찰들이 자신도 모르는 마약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또 신씨는 그 경찰들이 최씨와 통화도 했다며 둘 사이를 의심했다.
마약범으로 몰린 신씨는 옥살이까지 했다. 하지만 2008년 최씨 측근이 다른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다 “사채왕이 시켜 ‘마약 던지기 수법’으로 신씨를 희생시켰다”고 진술을 하면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수사 끝에 최씨가 재판에 넘겨지자 최씨 측은 “10억 원을 주겠다”며 허위 진술을 요구했지만 신 씨는 거절했다. 결국 최씨는 당시 수사를 맡은 김모 검사(42)의 사법연수원 및 대학 동기였던 최 전 판사에게 금품 로비를 했다. 최씨는 마약 관련 사건이었지만 불구속 기소됐고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마약범죄자들 사이
유명한 보복 수법
최씨가 신씨에게 쓴 속칭 ‘던지기’ 수법은 마약범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보복 수법이다. 던지기 수법은 검거되거나 지명수배 중인 범죄자가 수사기관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정상을 참작해 형을 줄여주는 유죄답변거래인 플리 바긴 수사기법을 악용한 것이다.
위장거래수사가 수사기관이 마약 소지자나 판매자로부터 마약을 압수하기 위해 거래를 위장한 것이라면 던지기 수법은 범죄자들이 범행 의도가 없는 사람을 마약범죄에 끌어들이기 위해 거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비교된다.
이 수법은 검찰의 선처 외에도 상대 조직원을 제거해 마약시장을 장악할 목적으로 악용될 뿐만 아니라 범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을 마약범죄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최근 수사기관에 범죄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들이 마약사범의 가족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조작된 정보를 제공, 스스로 던지기 범죄를 자행하는 경우도 있어 수사 혼란도 초래하고 있다.
2년 전에는 던지기를 이용해 마약 판매·투약 사범을 구하려던 일당이 검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
양형참작 위해
밀거래 조작해 신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정모씨는 2012년 8월께 알고 지내던 장모씨가 필로폰 판매·투약으로 구속기소 되자 재판 과정에서 수사공적(범죄 혐의자를 제보해 공을 세우는 것)을 쌓아 양형참작을 받게 해주려고 생각했다.
그는 같은해 10월께 필리핀에 거주하는 마약상 이모씨에게 전화해 이를 상의한 뒤, 이 씨가 한국에 있는 김모씨에게 마약을 보내면 이를 수사기관에 제보해 수사공적을 쌓기로 했다.
그는 이후 3~4회에 걸쳐 검찰에 연락해 이를 제보했으나 제보 내용과 경위를 수상하게 여긴 검찰이 제보 접수를 거부하자 같은해 12월에 필로폰 1.3g를 국제배송업체를 통해 김 씨에게 보낸 후 이를 검찰에 제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 이들은 김씨가 우편물을 받도록 하기 위해 “중고 골프채 카달로그를 소포로 보내주겠다”고 제의한 뒤 마약 거래의 일환인 척 위장하기 위해 “기름값이 없으니 10만원을 보내 달라”며 계좌번호까지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보다 앞선 2008년에도 던지기 수법을 사용하던 ‘정보장사꾼’이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혐의로 밀수조직원 및 운반자 11명을 적발, 이 가운데 3명을 구속 기소하고 4명을 추가 기소했으며 중국으로 달아난 2명을 기소 중지했다.
검찰에 따르면 재소자 최모씨와 마약범죄로 중국에 도피 중이었던 그의 친형, 이모·장모씨 등은 2008년 4월 초 중국인과 결혼하러 온 황모씨에게 2000만원을 대가로 필로폰 506g를 국내에 숨겨오도록 한 뒤 이를 검찰에 신고했다.
최씨의 친동생은 이 과정에서 대포전화를 이용, 자신이 구매자인 것처럼 황씨에게 전화를 걸어 매매장소로 나오게 한 다음 그가 수사기관에 붙잡히면 잠적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한 달 뒤 별도 사건으로 수감돼 추가 기소됐다.
최씨는 재판에서 양형참작 사유가 된다는 점을 노려 자신이 마약 밀거래를 신고하는 것 꾸몄으며 세관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으려다가 범행이 들통 나 미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최씨 3형제와 김모씨는 경제사범 재소자 이모씨에게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마약 밀거래 정보를 제공해 주고 그 대가로 1억 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이 들여온 필로폰의 경우 순도 20%미만의 저질이거나 모양은 같지만 설탕과 화학조미료 등으로 만들어져 마약 성분이 거의 없는 이른바 ‘멍’(멍텅구리)이었다.
신고보상금도 받고
정보원 가치 높이기도
경찰 관계자는 “범죄자들이 ‘마약 던지기’와 ‘정보장사꾼’에 나선 이유는 신고보상금과 정보원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범행”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마약류 보상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마약 거래 등을 신고할 경우 일정금액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또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순한 ‘던지기 수법’을 많이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정보장사꾼’ 형태로 진화해 밀수 사건을 조작하거나 만들어 경찰에 신고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던지기 수법’은 영화 속에서도 자주 사용됐다. 2010년에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던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이웃집 아이 납치범으로부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지시를 따를 것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정적이었던 조직에 마약 운반을 시켰다. 이들은 동시에 밀수로 경찰에 신고해 원빈과 상대 조직이 경찰에 일망타진 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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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