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0인조 ‘떼’대도(大盜) 100억대 절도행각
강남 10인조 ‘떼’대도(大盜) 100억대 절도행각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10-07 09:58
  • 승인 2009.10.07 09:58
  • 호수 806
  • 5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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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세형보다 한수 위” 큰소리 진짜 ‘대도’ 화났다!
범인들이 노린 침입경로(상단 왼쪽) 범인들이 훔친 금품

“대도(大盜)라는 말은 내 인생을 통틀어 최악의 저주다.”

1980년대 ‘물방울 다이아 절도사건’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조세형(71). 신출귀몰한 솜씨로 고관대작의 집을 털고,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 ‘의적’으로 불렸지만 정작 조씨에게 도벽으로 물든 과거는 씻을 수 없는 낙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수십억원대 절도행각을 벌인 전문 털이범이 ‘조세형’이란 이름을 팔아 조직원을 모은 사실이 드러났다. 불과 수개월 전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부인과 결별한 조씨는 본인의 이름이 범죄자들 사이에 오르내렸다는 것에 괴로워했다.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도둑놈’이라는 손가락질에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가 된 까닭이다.

조씨의 이름을 팔며 도둑질을 저지른 일당은 범행으로 모은 수십억원을 필리핀 원정도박으로 대부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목표는 강남 70평 이상 고급아파트, 가담 인원 물색·침입·운반·장물처분조 등 10명, 범행 제한시간 최대 2분.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경찰서를 통해 드러난 ‘강남 10인조 절도단’의 범행과정은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3명의 ‘정찰조’가 점찍어둔 아파트의 CCTV 위치, 경비원 순찰 경로, 집주인 부재 시간 등의 정보를 모아 거사를 제의하면 ‘침투조’ 2명이 로프나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해 돈 되는 물건을 쓸어담았다.


‘귀하신 몸’ 덕에 혐의 절반 줄어

이들이 집중적으로 노린 것은 개인금고. 이는 범인들에게 있어 ‘부의 상징’이었다. 직접 다듬은 일자드라이버(-)와 속칭 ‘빠루’(노루발)로 강철로 된 금고를 뜯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현장을 정리해 자리를 뜨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수중에 넣은 물건을 현금화 하는 것은 3명의 ‘장물처분조’였다. 이들은 장물아비 김모(50)여인과 거래를 트고 시중가의 절반 가격으로 보석과 명품시계 등 장물을 넘겼다. 김 여인은 수사가 시작되자 종적을 감춰 경찰에 수배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52회에 걸쳐 총 32억7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수사팀은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은 범행까지 합쳐 이들이 절취한 금품 규모가 최대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가운데 대기업 간부, 의사, 법조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사가 상당수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은 피해사실을 숨기거나 아예 도난당한 일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피해자로 지목된 인사들 가운데 절반이 ‘잃어버린 물건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워낙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하는 ‘귀하신’ 피해자들 덕에 일당은 혐의 가운데 절반 이상을 벗게 된 셈이다.


‘리틀 조세형’과 아이들

이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수사과정에서 두목 김모(47)씨가 ‘대도 조세형’을 운운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특수절도 등 전과 14범의 베테랑으로 자신을 “대도 조세형보다 뛰어난 고수”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와 함께 구속된 공범 정모(26), 소모(26)씨 등이 범행에 가담한 것도 ‘고수’라는 김씨의 호언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뻘 가까운 두 사람에게 “부자들이 사는 집은 내 개인금고나 마찬가지”라고 큰소리쳤다. 청송감호소 출신으로 도박장을 전전하며 돈이 궁했던 청년들은 귀가 쫑긋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사설도박장에서 김씨를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한 달 만에 그의 열렬한 팬이 됐다.

김씨가 ‘대도’의 이름을 팔아 절도단을 조직했다는 것에 대해 정작 조세형씨 본인의 반응은 어떨까. 10명의 조직원을 모아 기업형 절도단을 이끈 김씨와 달리 조씨는 철저히 단독으로 범행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 훔친 물건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줘 ‘의적’으로 불렸던 조씨와 달리 김씨 일당은 훔친 돈을 모두 도박판에서 날렸다. 김씨가 조씨보다 뛰어난 것은 ‘몹쓸 기술’ 뿐이었다는 얘기다.

주변인에 따르면 조씨는 “참담하다”며 할말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16세 소년 절도범이었던 그를 검거한 인연으로 후견인까지 된 최중락(81·총경)삼성 에스원 고문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 고문은 “그 친구가 가장 싫어하는 게 ‘대도’라는 호칭이다”며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을 함부로 입에 올린 범인도 나쁘지만 이를 신문 제목으로 뽑는 언론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난 1998년 역경을 딛고 결혼한 아내 이은경씨와 최근 이혼한 조씨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 고문은 “2001년 일본원정 절도 사건부터 시작해 그 친구가 말 못할 사연이 참 많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모두 덮고 새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슈화 시켜 상처를 주는 건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세기의 로맨스’ 조세형-이은경 부부 파경

11년 전 16년 나이차를 극복하고 가정을 꾸린 조세형-이은경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세기의 사랑’으로 꼽힌다. 교도소를 밥 먹듯 드나든 가난한 남자와 유능한 커리어우먼이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언론과 몇 권의 책을 통해 오랫동안 회자돼왔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로맨스가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최중락 고문이 <일요서울>과의 인터뷰(본지 792호)에서 조씨의 근황을 전할 때만해도 이 같은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최 고문은 당시 “조씨가 늦둥이 아들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소문난 모범생이라 부모가 끔찍이 아낀다”고 말했었다.

조씨의 아내 이은경씨는 최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혼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05년 신내림을 받고 서울 서초동에서 법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이혼사유에 대해 “그이와의 만남도, 헤어짐도 모두 운명이었다”는 말로 짧게 언급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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