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합인사 조직 쥐락펴락, 정치인 맞먹는 막강 파워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선거와 조합장선거는 대한민국 4대 선거
6당 5락 후보 매수 등 비리 얼룩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전국 곳곳에서 때 아닌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오는 3월 11일, 사상 처음으로 실시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를 앞두고서다. 동시조합장선거는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대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실시되며, 전체가 1326명이고 구체적으로는 농·축협 1115곳 산림조합 129곳 수협 82곳 한꺼번에 선출한다.
조합장선거는 그동안 개별 조합별로 선거를 치러 온 탓에 잡음이 끊이지 않아 '돈 선거', '경운기 선거'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그동안은 국민적 관심과 이해도 낮았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선거가 다가오면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3월11일 실시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금품과 로비로 혼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이와 같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될 전국 단위농협과 수협, 산림조합 대표 선거로, 이번 선거는 사상 최초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 하에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농협중앙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번에 새로 탄생하는 조합장은 1326명에 이르고 마감결과 3522명이 등록했다. 조합별로는 농협 3036명, 축협 205명, 살림조합 281명이고 2.7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조합장 동시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2월 26일부터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전국 각지에서는 불법 선거운동 관련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농어촌 지역에서 조합장 자리가 워낙에 ‘노른자위’로 꼽히기 때문이다.
조합장의 임기는 4년으로 당선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조합 규모에 따라 5000만에서 많게는 2억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직원 인사권을 갖는다. 식사비와 차량유지비 등 각종 업무추진비를 별도로 쓸 수 있다.
지역 농산물 판매와 하나로 마트 등 사업 운영에도 직접관여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런 ‘수면 위의 혜택’은 ‘수면 아래의 권한’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이 조합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합에 따라 수억~수십억 원에 달하는 교육지원사업비다. 조합원 및 지역민 자녀 장학금 지원이 대표적인 항목으로 이는 지역사회에서 조합장의 입지를 막강하게 다져주는 ‘종자돈’ 역할을 한다. 이러니 요즘 현장에서는 6당 5락 ‘6억원 쓰면 당선되고 5억 쓰면 떨어진다’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조합장은 조합의 운영권과 조합 임직원 인사권, 금리와 대출 한도를 정할 수 있는 권리도 조합장에게 있다. 일부 인사는 조합장 선거를 발판 삼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로 진출을 모색할 정도다.
농협 관계자는 “조합장이 주무를 수 있는 자금 규모가 매우 크다보니 읍면 단위의 작은 지역에서는 조합장의 영향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며 “조합장 선거가 치열한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연스레 조합장 선출을 둘러싼 각종 비리나 불법 등이 예전부터 줄곧 문제가 돼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494곳에서 조합장 선거를 진행한 2010년의 경우 불법 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872명이 입건됐고 26명이 구속됐다. 20곳이 선거를 치른 지난해에는 76명이 입건됐다.
이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2011년 3월 농협 법을 개정하면서 2015년부터 중앙선관위의 관리 하에 조합장 선거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동시 선거로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정선거를 집중 단속하겠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조합장 선거는 올해도 조기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1월 충남 논산시에서는 한 조합장 출마 예정자가 조합원과 그 가족들에게 1인당 20만~1000만 원의 금품을 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전남 광양시 에서도 1월 한 농협 조합장 선거 출마 예정자의 사촌동생이 모텔에서 나오는 같은 농협 현 조합장의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 에선 농협 조합장 출마예정자들(7명)과 조합원들 사이에 돈 봉투를 놓고 이상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조합원은 “어떤 조합원이 누굴 지지한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후보자들이 그에게는 돈 봉투를 돌리지 않는 게 선거판의 불문율”이라며 “그래서 상당수 조합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더 많은 봉투를 받아 챙기려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은 5년 전 조합장 선거 때 조합원 전원이 후보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아 돈 선거 파문을 일으킨 곳이다.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섬을 ‘금품살포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감시를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속수무책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돈 봉투가 뿌려지고 있다는 심증은 확실하지만 제보나 뚜렷한 물증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인근 팔금도와 암태도, 자은도, 안좌도 등도 사정이 비슷했다. 한 주민은 “조합장 후보들이 브로커를 내세워
조합원 성향을 파악한 뒤 돈 봉투 가격을 책정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실제로 자기편은 10만원, 부부조합원은 50만원, 표심이 유동적인 조합원은 20만~30만원씩으로 돈 봉투의 ‘공정가격’이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대구 달성군에선 조합원들에게 5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돌린 사실을 알게 된 지인에게 “선거운동을 같이 하자”며 입막음 명목으로 500만원을 건넨 농협조합장 출마예정자 이(61)씨가 검찰에 고발됐다. 이씨의 금품 살포를 신고한 제보자 조합원에게는 1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돈을 받은 조합원들의 자수행렬이 이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돈을 준 사람뿐 아니라 돈을 받은 조합원도 최고 50배의 과태료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 칠곡에선 농협조합장 출마예정자 김모씨가 “선거운동을 도와주면 조합장에 재임하는 동안 매달 100만원씩 주겠다”는 각서를 지인에게 써줬다가 검찰에 수사 의뢰됐다. 조합장 출마예정자들의 돈 봉투 살포 대상에는 구분도 없어졌다. 경남 고성에서는 기초의원 출신의 조합장 출마예정자가 현 조합장에게 선거 출마포기를 대가로 현금 5000만 원을 건넸다가 검찰에 구속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 선거 단속을 해야 할 선관위 직원이 되레 출마 예정자들의 등을 쳐 돈을 챙기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실제 충남 천안시에선 2013~14년 조합장 선거 출마예정자 등 10명으로부터 단속업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1억1,400여만원을 받아 챙긴 윤모(54) 전 선관위 직원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현재 중앙선관위는 금품을 유포한 후보 등을 고발하면 최대 1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중대 선거사범은 당선을 무효로 하는 등 엄중 조치할 방침이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문제가 되는 사안은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선거문화 개선을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고성과 전북의 한 조합에서는 불출마를 대가로 억대의 돈을 약속하고 각각 현금 수천만 원을 줬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충남 논산에서는 조합장이 6000만원을 뿌렸고, 경북 김천에서는 임원들의 부부동반 해외여행비 3000만원을 자체예산으로 충당한 조합장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돈을 받았던 한마을 주민 대부분이 과태료 50배를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조합선거와 관련해 입건된 선거사범은 약 2300명.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이번부터 동시선거로 통합관리하기로 했지만 단속인력 부족 등으로 수법은 더욱 치밀화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합별로 제각각 치르던 선거를 올해부터 선관위의 집중적인 관리 감독하에 동시에 치르게 된 이유도 조합장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불법. 탈법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불법 선거운동이 판을 치면서 동시 선거운동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직선제 폐지와 업종별 통폐합 그리고 전문경영인 도입 등을 통해 자질을 높여 나가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때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다.
조합장은 FTA(자유무역협정)등으로 갈수록 위축되는 농·수·축산업을 지키는 최후 보루이기도 하다. 정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해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정책선거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세계적 농업선진국은 대부분 협동조합이 주도하고 있다. 물론 잘 하는 조합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부작용이 더 크고, 개선될 조짐이 없다면 개혁의 대상이 돼야한다. 평화롭던 농어촌 마을이 어설픈 권력놀음으로 더 이상 놀아나선 안 된다.
chanho227@ilyoseoul.co.kr
박찬호 기자 chanho2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