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출신으로 외환위기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73·사진)이 신임 무역협회장으로 돌아왔다. 업계는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쓰며 시장경제 전도사인 김 신임 회장의 행보에 기대와 함께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신임회장은 “무역업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글로벌 기업가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할 때”라며 “세계 일류의 기업형 국가로 가는 것이 한국의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장경제 전도사, 정부 정책마련 우선…시장 참여 바람직하지 않다
외환위기 초래 오명불구 금융실명제 주도 등 경제 관료로서 한 획
한국무역협회는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지난 17일 회장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된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을 제 29대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회장은 무협 정기총회 직후 취임사를 통해 “과거 어느 때보다 통상환경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시기”라며 “무역업계나 정부가 모두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는 기업인들이 잘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어려움을 해소해줘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시장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도 바꿔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신임 회장은 또 정부의 불필요한 간섭에 대해 “우리나라가 발전 단계에 걸맞는 시장경제 수준을 갖췄는지에 회의감을 갖고 있다”며 “정부는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야지, 시장에 참여해 불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그는 “중소·중견기업의 해외진출 촉진 및 글로벌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 FTA 경제영토 확장, 글로벌 생산 유통구조 변화 등 무역 구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전자상거래, 중계·가공무역 등 새로운 무역 방식을 활용한 수출확대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와 더불어 “창조경제의 원천인 우리의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이 문화콘텐츠, 의료, 교육, 금융 등 서비스 분야와 융합해 해외진출과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산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제시, 규제 개선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신임 회장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 환경처 차관, 철도청장, 초대 공정거래위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중소기업연구원, 시장경제연구권 등 민간 싱크탱크를 이끈 경제전문가다.
김 신임 회장의 취임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발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등 다자간 통상 협상 등에 따른 한국 무역과 산업구조의 대대적인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중소·중견기업의 해외진출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무역업계 안팎의 뜻이 모아진 결과다.
특히 정부와 민간에서 경제·통상·경쟁·소비자·중소기업 등 다양한 정책을 다뤘던 경륜은 현재 무역업계에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인호 회장은 누구?
29대 무역협회장에 취임한 김인호 회장은 194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대 행정학 석사와 경제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행정고시(4회)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최장수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대회경제조정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환경처 차관을 거쳐 김영삼 정부에서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을 역임했고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1996년엔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1997년 2월부터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면서 금융개혁법안을 조율하는 역할 등을 담당하며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실상 경질됐다.
검찰은 당시 김 신임 회장에 대해 “외환위기의 실상을 축소보고해 환란을 초래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구속 기소했다. 이후 검찰은 김 신임 회장에게 징역 3년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두 사람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처럼 외환위기에 책임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만 금융실명제를 주도하는 등 경제 관료로 환 획을 그은 인물이라는 상반된 평가도 있다.
낙하산 논란은 여전
김 신임 회장이 경제관료 출신의 경제전문가지만 국내 7만여 개의 무역업체를 대변해야 하는 무엽협회가 공무원 출신 관료 위주로 구성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간 무역협회 회장을 지낸 인사는 김 신임 회장을 포함해 총 17명으로 그중 기업인 출신 회장은 단 3명에 불과 하다. 대부분 장관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한덕수 전 회장도 행정고시 8회 합격자로 김 신임 회장과는 경제기획원 선후배 사이다.
이 때문에 무역협회가 민간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무역업체를 대변하기보다는 정부를 대변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돼왔다.
더욱이 무역협회가 경제 5단체 중 자산과 경제력이 가장 풍부함에도 무역업계에 대한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신임 회장을 놓고 친정부 인사라는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우선 김 신임 회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끈끈한 인연이 김 신임 회장 내정에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최 부총리는 1997년 6월 경제수석실 보좌관이 돼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던 김 신임 회장을 보좌했다.
최 부총리는 또 김 신임 회장이 구속된 후에 구명운동을 벌일 정도로 밀접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김 신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다시 공직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중장기전략위원회에서 민간위원장을 맡으면서 친정부 인사로 떠올랐다.
다만 지난해부터 박근혜 정부의 중장기 전략 수립에 깊이 참여한 만큼 정부와의 교감을 통해 정책 방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낙하산 인사 논란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김 신임 회장이 낙하산인사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는 정부의 목소리가 아닌 무역업계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무역협회는 지난달 27일 전형위원회를 개최하고 김정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상근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김 상근부회장은 제24회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1982년 공직에 입문한 후 약 30년 동안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 자원, 산업, 무역 분야에 근무했다. 2011년 지식경제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2012년 1월부터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와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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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