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vs 대한상의] 재계 대표성 놓고 ‘신경전’
[전경련 vs 대한상의] 재계 대표성 놓고 ‘신경전’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03-02 10:34
  • 승인 2015.03.02 10:34
  • 호수 1087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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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박용만 지는 허창수…권력추 이동하나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 간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재계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이하 전경련)는 회장직을 수행할 사람이 없어 전임 회장이 억지로 연임하는가 하면,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이하 대한상의)는 사람이 넘쳐난다.


부회장단 추가 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전경련이 아닌 대한상의’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와의 소통은 물론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모두 대한상의가 도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 경 련    회장 대신 회의 참석한 과장들…위상 추락 어디까지
대한상의   야당 대표의 첫 행보부터 부회장단 추가 영입까지

몇 년 전까지 대한상의는 전경련보다 한 단계 아래로 치부됐었다.
올해 창립 54주년을 맞은 전경련이 과거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등 창업세대 기업인들이 주축을 이뤘던 시절, 전경련은 경제성장은 물론 88올림픽 유치와 같은 국가적인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한상의의 위상이 전경련을 역전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여당 대표의 첫 행보도 전경련이 아닌 대한상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의구심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는 첫 경제단체 방문지로 대한상의를 찾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경제계 간담회(1월26일), 대통령 초청 경제계 신년 인사회(1월6일)까지 대한상의가 도맡았다.

앞서 왕양 중국 부총리의 기업인들 연쇄 회동 때도 왕 부총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가장 먼저 만났고, 이후 대한상의를 방문했다. 다음날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회장과 회동을 하고 난 후에야 전경련이 주재하는 오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내부 결속력에서도 대한상의가 한 수 위임을 증명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상의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만득 삼천리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등 3인을 서울상의 부회장으로 추가 선임했다. 서울상의는 기존 20명인 회장단을 23명으로 확대·개편됐다.

이 과정에는 박용만 회장의 적극적인 행보가 돋보였다. 추가 선임된 정용진 부회장은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박 회장과 교류하며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박 회장은 최근 정 부회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상의 부회장직을 제안했고, 정 부회장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은 회장단으로 합류한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과도 ‘55년생 양띠’ 동갑내기로 평소 친분을 쌓아왔다.

박 회장은 이날 서울상의 부회장에 선임된 정용진 부회장, 정몽윤 회장, 이만득 회장에 대해 “혁신적인 생각이 많으시고 젊은 분들이라서 훌륭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이 2013년 8월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후 부회장단 영입은 꾸준히 이뤄졌다. 2013년 11월 첫 여성 경제인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합류했고, 작년 11월에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회장단에 가세했다.

상의 관계자는 “새로 선임된 부회장들이 유통·에너지·금융 등 다양한 업종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상의의 역할과 위상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전경련은 지난달 10일 총회에서 부회장단에는 종근당 이장한 회장을 신규 선임하는데 그쳤다. 그룹 해체로 전경련 부회장직에서 사퇴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2명의 공석이 생겼지만 부회장 1명을 충원했다. 이로써 전경련 회장단은 기존 21명에서 20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도 전경련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의 영입을 타진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돌파구 못 찾나

지난 10일 열린 전경련 정기총회는 전경련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전경련 측은 “회장단이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행사"라고 해명했지만 ‘정기총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사라고 보긴 어려웠다. 전경련의 진성회원인 오너 회장 대신 기업의 대외업무 담당 직원들이 나와 자리를 메웠다. 이들 중에는 초임 과장이나 대리급 직원도 눈에 띄었다.

재계에서는 이런 흐름의 원인을 두 단체의 근본적인 성격 차이는 물론 수장의 리더십 차이에서까지 찾고 있다.
전경련은 사실상 재벌 총수들의 모임이지만, 대한상의는 전국 상공인을 대표하는 모임으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회원사로 두고 있는 법정 경제단체다. 전경련이 그들만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동안, 대한상의는 대중소 상공인을 아우르는 정책 대응을 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경제민주화나 법인세 문제 등 대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재벌 이익을 위한 이익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라며 “요즘처럼 재벌 갑질논란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총수들의 기피현상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경련이 힘을 잃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의 한 원로는 참석자들의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회원사 절반 이상이 불미스러운 일에 이름을 올려 회의 참석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장기입원중이고 최태원 SK 회장은 수감중이며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집행유예 상태다.
김준기 동부 회장은 회사가 경영위기에 휩싸였고 강덕수 STX, 현재현 동양 회장은 이미 전직 회장이 돼버렸다. 한때 회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조양호 한진 회장은 평창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박용만 두산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을 맡아 회의 참석불가다.

구본무 LG회장은 아예 전경련에 발길을 끊은 듯하고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학업에 뜻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보다 중소기업을 아우를 수 있는 대한상의가 재계 대표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이와는 결이 다른 반응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모두 포함해 정부 관계자들이 대면하기에 부담이 없다”며 “그러나 재계의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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