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이광종 전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병마로 쓰러지면서 2016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빨간불이 들어 왔다. 그를 대신해 신태용 감독이 사령탑으로 나섰지만 이 감독을 향한 팬들의 그리움은 간절하다. 더욱이 무명에서 자신의 약속을 지켜가며 세상의 편견과 싸워왔던 이 감독의 투지가 ‘이광종의 아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순간이다. 이제는 기약 없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의 들꽃 같은 축구인생을 만나본다.
외길 축구인생, 인천아시안게임 무실점 우승으로 꽃피워
‘이광종의 아이들’ 킹스컵 우승 선물…팬들 응원편지 쇄도
신태용 신임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가진 취임 기자회견장에 무거운 표정으로 등장했다.
그는 취임사에 앞서 이광종 전 감독을 언급했다. “이광종 감독님은 20년 가까이 유소년 선수를 지도하셨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이 감독님이 맡으셔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며 “병마와 싸우고 계셔 마음이 아프다. 내게는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좋은 성적을 내야만 쾌차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신 감독의 말처럼 이 감독은 2000년부터 15년간 대한축구협회 소속 지도자로 묵묵히 유소년을 지도해왔다. 그를 거쳐간 선수만 해도 1000명이 넘는다. 그의 한결같은 축구사랑으로 이미 2016 리우올림픽 계획서까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감독은 “이 감독님이 이미 계획서를 다 짜놓으셨더라”며 “이걸 토대로 코칭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감독님이 구성해 놓은 선수 리스트를 가지고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선수를 직접 보고 선발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 전 감독의 의지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제 올림픽대표팀의 공은 신 감독에게 넘어갔지만 이 전 감독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라운드의 들꽃
만개까지 14년
이 전 감독은 그라운드의 들꽃으로 회자된다. 들꽃은 질긴 생명력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들꽃에 눈길을 주는 데 인색하다.
이 전 감독은 만개하기까지 무려 14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는 2000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 1기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수석코치로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고 있었다. 통상 코치진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한다. 그도 자신의 신분에 충실하게 외부의 질문에 그저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팀 내에서는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선수들을 따듯하게 품에 안았다.
축구바보의 길을 걸어온 이 전 감독이지만 무명의 선수가 지도자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전 감독은 현역 시절 유공(1987~1995년)과 수원(1996~1997년)에서 266경기에 출전 36골 21도움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성실한 미드필더로 기억된다. 하지만 A급 지도자의 보증수표인 국가대표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는 유소년팀을 맡아온 내내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이 전 감독은 2005년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도 박성화 감독과 함께한 후 2007년 14세 이하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그간 유소년 지도자로 쌓은 노하우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감독은 철저히 성적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전 감독에게 성적은 절실했다.
절박함에도 이 전 감독은 단 한 차례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한우물만 팠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선수들에게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가갔다. 그의 노력은 고정관념을 허물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0년 FIFA U-17 월드컵 8강, 2011년 U-20 월드컵 16강, 2013년 U-20 월드컵 8강 진출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적인 축구계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사령탑을 놓고선 다시 이 전 감독에게 의문부호를 달았다. 결국 절충안으로 2013년 11월 그는 인천아시안게임 지휘봉을 잡았지만 1년 단기 계약이었다. 아시안게임 성적을 지켜본 뒤 계약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이 전 감독은 극적인 반전을 선보이며 자신을 향한 의문에 당당히 맞섰다. 지난해 한국 축구가 추억하는 최고의 명장면은 당연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이었다.
당시 임창우(울산)는 북한과의 120분간의 혈투 끝에 상대 진영 골네트를 흔들며 한국축구 28년 만에 우승컵을 안겼다.
더욱이 이 드라마틱한 연장승부의 주인공은 해외파도, K리그 클래식도 아닌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에서 뛰던 무명의 선수인 임창우였다.
임창우의 뒤에는 이 전 감독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대표팀은 손흥민의 합류 불발과 윤일록, 김신욱의 경기 중 부상 하차까지 겪으며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인천아시안게임 전에는 선수 선발과 답답한 경기력으로 수차례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감독은 외부의 혹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명의 선수들에게 날개를 달아줬고 선수들은 지휘관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조직력은 경기를 할수록 탄탄해졌고 마침내 무실점 우승(7경기 13골 0실점)이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일구며 세간의 의심을 실력으로 씻어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전 감독이 14년 만에 만개하면서 ‘제2의 이광종’을 꿈꾸는 음지의 지도자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또 보수적이었던 축구계의 시각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로써 리우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대해 어떠한 논란도 없이 이 전 감독은 입성했다. 하지만 이 전 감독은 자만하지 않았고 들뜨지도 않았다. 늘 그렇듯 겸손하게 올림픽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쓰러진 명장의 빈자리
우승으로 채워
이 전 감독을 두고 세간에서는 곧 다시 일어서리라는 희망찬 얘기들을 내놓고 있다. 그의 인생이 철저히 고독하게 싸워온 만큼 병마와의 싸움에서 잘 극복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를 향한 팬들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축구협회에는 수많은 팬들의 응원편지와 헌혈증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축구협회도 이 전 감독의 치료비와 현역 복귀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병마와 싸우는 스승에게 킹스컵 우승컵을 선물한 ‘이광종의 이이들’의 응원 열기도 뜨겁다.
개최국 태국과 3차전에서 신들린 선방으로 우승의 일등공신이 된 수문장 이창근은 “선수들이 신경쓸까 봐 이 감독께서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선수들도 뉴스에서 감독님의 병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선수들이 태국전 전반이 끝난 뒤 ‘감독을 위해 뛰자’고 격려했다. 이 감독은 아버지와 같다. 덕분에 나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비수 연제민은 자신 SNS에 ‘감독님 빠른 쾌유 기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게재하면서 “우리가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야 감독께서 쾌차할 것”이라고 전해 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 전 감독은 이제 축구사랑을 계속하기 위해 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의 빈자리는 수많은 팬들, 선수, 축구인들의 응원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만큼 오로지 축구하나만을 향해 달려온 이 전 감독에게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휴식일 뿐이라고 팬들은 믿고 있다.
들꽃은 험난한 풍파에도 꽃을 피우기 위해 꿋꿋이 뿌리를 내린다. 이 전 감독 역시 그간의 들꽃 축구인생처럼 질긴 생명력을 다시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팬들의 염원처럼 곧 건강한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축구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명장으로 다시 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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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