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 나라 없는 국민의 슬픔이 어떠한지 나는 어릴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여러 차례 들어 왔다.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날이 갈수록 나의 뇌리에서 어머니의 나라사랑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1919년에 태어나신 어머니는 일본 압제 속에서 모든 역경과 고난을 겪은 산 증인이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은 말들을 떠올려 본다면 “일본정부가 강탈해 간 백주의 군수물자 공출, 위안부 정신대 이야기, 창씨개명으로 이름 없이 지낸 세월들, 보국대란 명목의 징용으로 남편(아버지)없이 지낸 세월들..... 그동안 일제 압박으로 나라없이 지낸 백성들의 슬픈 사연들, 돌이켜 보면 소설로 써도 몇 권 될 분량이다.
나는 금융기관 은퇴 후 대학강단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의 대화 중 대통령에 대하여 불경한 말을 하거나, 나라를 향하여 욕설을 하는 모습들을 볼 땐 국가 장래에 대하여 퍽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세계화 속에서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인데...하고 걱정을 하면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만이라도 나라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애국현장 유적지를 방문하거나 애국심이 충만한 장군이나 교수를 만나 나라사랑에 대한 생생한 사례들을 모으기도 했다. 우리 국민 모두의 단합된 나라사랑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원천이 되는 정신적 지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하며 국민들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를 사랑할 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에도 보니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 배례를 하더라"며 “우리가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분에 해당하지만, 내가 가본 곳을 통해 애국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기해 본다. 먼저 미국서부 사립명문 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는 두드러지게 한국학 연구가 활발한 곳으로 정평이 있는데 이곳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료들을 찾아보았다. 캠퍼스 한 가운데 도산 안창호가 1900년부터 3.1운동 전까지 살았던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한국학 도서관을 독립관으로 따로 마련한 도산의 자료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대목들이다.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고 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 되는 것이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중략).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될 공부를 아니하는 것이오?” 나는 그후 집 가까이에 있는 도산공원을 자주 산책하면서, 도산의 어록을 자주 되새겨 보았다.
다음은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단지동맹(斷指同盟) 기념비를 찾았다. 동양평화의 창시자 안중근은 31살, 목숨과 바꾼 평화의 꿈을 지닌 자로, 1909년 3월 5일 그동안 구국운동에 투신하는 동지 11인과 단지동맹을 결행하고 ‘조국 독립회복과 동양평화 유지’를 위하는 목적으로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했다. 이것이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선혈로 기록되는 ‘단지동맹(斷指同盟)인 바, 손가락 하나씩 끊음은 비록 조그마한 일이나 첫째는 국가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빙거(憑據)요, 둘째는 일심단체하는 표(標)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또한 한국의 명성황후를 죽이고, 한국 황제를 쫓아내고 무고한 한국인을 때려 죽인 이등박문을 살해한 하얼빈 역사와, 하얼빈 외곽에 소재한 20세기초 일본 관동군 제 731부대 일본만행 장면, 생체실험을 보여주는 조각물들을 통하여 일제 침략만행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해의 진도를 찾았다. 진도대교 건너 오른편엔 이 충무공 동상이, 왼편엔 진도대교와 울돌목이 한눈에 들어오는 7층 규모의 진도타워가 있다.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해협은 정유재란(1597년) 때 이순신 장군이 함선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세계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11의 대승리를 기록한 명량해전의 현장이다. 각종 사료(난중일기 1597. 9. 13)들을 통하여 옛날 임진왜란 당시 선조들의 기세와 지혜를 통하여 이순신 장군의 영혼이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임을 느끼게 되었다.
현존 인물 한 사람을 소개한다. 한국군 최초의 인도, 파키스탄 평화유지군(UNPKO)사령관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죽마고우이기도 한 안충준 장군(전 한국교통대 석좌교수)의 ‘국가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핸드폰 벨소리에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애국가, 수업시작 전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4절까지 학생들과 함께 애국가가 흘러 나오는 동영상은 청소년들을 투철한 국가관에 몰입하게 한다. 옷에 태극기 배지를 달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국가관을 강조하며 자녀 결혼식때는 물론 타인의 결혼식 주례를 볼 때에도 국민의례와 애국가 1절을 부르는 모습은 우리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도 국민의례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 데, 재고해 볼 문제이다.
우리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국민의식과 자부심 고양으로 국가관에 더욱 몰입하게 한 긍지를 가진 민족이다. 모든 국민들이 올바른 역사관 및 국가관을 기르는 것이 급선무이어서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이나 투철한 국가관의 확립이 필요하다. 유치원에서 꼭 알아야 할 기본적인 인성교육에서도 국가관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배우게 하고 각종 시험의 면접에서 국가관, 안보관, 역사관을 검증하는 절차를 강화토록 하자. 무엇보다도 지식인들의 솔선수범하는 행동으로부터 창조경제의 원천이 되는 나라사랑을 실천하자.
김의식 교수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