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486’ 날개가 없다
추락하는 ‘486’ 날개가 없다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5-02-23 10:22
  • 승인 2015.02.23 10:22
  • 호수 1086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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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개혁 → 486 하청 → 586 온정정치로 흘러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1996년 화려하게 등장한 세력이 있다. 1992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김민석 신화’로 회자됐던 386(30대, 80년대 운동권, 60년대생)세대다. 국민들은 ‘젊음’과 ‘개혁’으로 상징되는 386에게 환호했고 무한한 지지를 보냈다. 386은 96년 15대총선, 97년 대선, 다시 2000년 16대총선과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운도 좋았고 언변도 유창했다. 80년대 학생운동 경력으로 독재와 기득권에 도전한 개혁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386’세대와 손잡고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정점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정권이 보수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386은 과거 추억만 먹고 사는 486으로 바뀌었다. ’하청정치‘, ’운동권정치‘, ’계파 정치‘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급기야 2.8전당대회를 거치면서 586세대가 된 486이 쇠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 김대중-노무현 ‘권력 단물’에 취해 ‘정체성’ 상실
- 486 마지막 생존전략, ‘제2의 정풍운동’ 부상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지난 2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이변’은 없었다. 당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의 ‘대역전극’과 이인영 의원이 의미있는 2위를 할 수 있느냐가 흥미로운 점이었다. 또한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김근태-김부겸 등 운동권 ‘대부’와 ‘맏형’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기초단체장인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의 최고위원 당선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486 운동권’ 세대의 리더로 불리는 이 의원은 12.92%를 받아 문, 박 의원과는 30%p 가까이 차이가 나면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사실상 대의원·당원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로부터 486은 공식적으로 ‘역할’이 끝났음을 선고받은 셈이었다. 같은 486 주자인 오영식 의원은 그나마 4위에 올라 체면치레는 했지만 2위를 한 정청래 의원과 비교할 때 아플 수밖에 없다.

486 몰락 ‘김민석 신화’의 붕괴와 닮아

정 의원 역시 486세대로 분류되지만 친노 강경파로 486 세대를 대변하기보다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그동안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구시대의 전형’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한테도 같은 486세대가 ‘거리를 두던 정 의원한테도 밀리는 액세서리 정치인으로 전락한 486. 그들이 화려하게 등장한 1996년 총선 이후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486의 몰락’은 김민석 전 의원의 몰락과 유사한 점이 많다. 1964년생인 김 전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5년도에 서울대총학생회장과 전학련(전국학생연합회) 의장을 지냈다. 대표적인 486세대로 1992년 14대 총선에서 27세 약관의 나이에 경제부총리 출신에 3선 중진 거대여당 민자당 나웅배 전 의원과 일전을 겨뤄 259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로 인해 ‘김민석 신화’를 만들었고 386세대의 대표적인 주자로 우뚝 섰다.

결국 15대 총선에서 당당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단 김 전 의원은 ‘차세대 리더’로 자리잡았고 대변인, DJ 비서실장을 거쳐 2000년 16대 총선에도 당선돼 승승장구했다. 잘 나가던 김 전 의원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것은 2002년 대선. 486 운동권 선후배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던 시절 그는 ‘후보 단일화’를 위해 정몽준 국민통합21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면서 ‘배신자’ 소리를 듣게됐다.

이후 조급해진 김 전 의원은 2002년 서울시장 후보에 나섰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고배를 마시면서 잊히기 시작해 급기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 됐다. 대다수의 486 세대 역시 비슷한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DJ-노무현 정권 10년 기간은 486이 권력의 단맛에 취했던 시절이다. 16대, 17대 총선에서 ‘486 운동권’이라는 타이틀은 금배지를 다는 ‘직행티켓’이었다.

3김정치의 대명사인 DJ와 ‘권위주의 탈피’를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486은 ‘젊은 피’이자 ‘개혁’과 ‘쇄신’을 위한 훌륭한 장식품이었다. 한마디로 ‘액세서리 정치인’으로서 청와대, 정부, 그리고 당에서 권력의 무소불위를 온몸으로 느끼던 때다.

권력단물 10년 현재 486 ‘민낯’ 드러내

하지만 10년 동안 집권 여당으로 지내면서 486의 창끝은 무뎌졌고 투쟁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또한 정치 경륜이 일천하고 전문 지식이 없다보니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조롱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 중반부터는 DJ와 노무현이 사라지면서 486 정치는 당내 이해찬, 김근태, 정세균, 신계륜, 김부겸 등 운동권 선후배에 치여 ‘하청정치’, ‘계파정치’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486으로 상징되던 ‘투쟁’과 ‘개혁’ 그리고 ‘현장’에 대한 열정은 두 번의 집권을 거치면서 사라졌고‘계파주의’만 횡행하게 됐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에서 486이라는 타이틀로 금배지를 단 인사 계파 분류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새정치연합은 현재 문재인계, 정세균계, 김한길계, 손학규계 고 김근태계로 나눌 수 있다. 문재인계에서 활동하는 486 인사로는 김태년, 김현, 노영민, 서영교, 이학영, 정청래 의원이 정세균계로는 강기정, 오영식, 최재성, 김한길계로는 노웅래, 이종걸, 정성호, 손학규계로는 조정식, 고 김근태계는 우원식, 유은혜, 이인영 의원 등이 포진해 있다.

같은 486이라는 공통된 스펙트럼과 강력한 대중적 기반을 가진 단일 세력이지만 정파별로 나뉘어 총선, 전당대회, 비대위원장 선출에서 각기 정파 이익에 따라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우상호, 김현미 의원은 같은 486세대로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제3지대’에 머물면서 관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486 세대의 정파 이익에 따라 좌충우돌 정치는 당을 결집시키기보다는 분열의 핵으로 작용한다. 지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물러난 이후 박영선 비대위원장을 옹립한 세력이 486이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투쟁’보다는 ‘타협’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 할 때 가장 먼저 판을 흔든 세력도 486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번 2.8전당대회에서 박지원, 문재인, 정세균 ‘빅3’ 불출마 연판장을 돌린 중추 세력 역시 486세대였다. 대표적으로 노웅래, 정성호, 이종걸, 우상호, 오영식 의원이 앞장섰다. 앞 3인방은 김한길계로 알려진 인사고 우 의원은 ‘제3지대’에 오 의원은 정세균계지만 본인이 최고위원 선거에 나섰다는 점에서 신념과 철학보다는 정파에 매몰돼 연판장을 돌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당연히 ‘빅3’중 정세균 의원을 제외한 유력한 문재인, 박지원 두 의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대착오적 운동경력에 취해있다

야당의 운동권 출신 한 인사는 “투쟁의 상징인 486이 10년 단꿈에 젖어 있다보니 이제는 썩은 무도 벨수 없는 무딘 칼이 됐다”면서 “과거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은 정풍운동으로 구민주계를 2선후퇴하게 만들었지만 486은 운동권 온정주의에 빠져 이마저도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운동권 경력에만 취해 있다”고 쓴소리를 보냈다.

486이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은 1987년 전대협 창립이후 27년간 친소관계를 통해 운동권 선후배와 관계를 유지했다. 투쟁을 무기로 권력에 항거했던 이들은 막상 내부의 운동권 선후배들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스스로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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