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건] 방에서 난 한 발의 총성… 방성자 사건
[그때그사건] 방에서 난 한 발의 총성… 방성자 사건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5-02-23 10:10
  • 승인 2015.02.23 10:10
  • 호수 1086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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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뒤집어쓸 만큼 간절했던 여배우의 사랑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1960년대 최고의 여배우 방성자. 그는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인생은 급전직하했다. 방성자의 집에 침입한 도둑이 총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방성자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총을 쏜 진범은 방성자의 내연남 함모씨였던 것이다. 방성자가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끝내 방성자는 영화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방성자 “그를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교사에서 영화배우 그리고 술집마담까지… 기구한 인생

배우 방성자는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가 1960년 영화 ‘애수에 젖은 토요일’로 데뷔한 엘리트 배우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두 번째 학사 출신 여배우였다.
1960년 영화계에 진출한 방성자는 1971년 영화 ‘서방님 따라서’까지 모두 51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관능적인 여배우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내리막으로 곤두박질한다.

인생 180도 바꾼
도둑과 45구경 권총

1972년 1월14일 오전 2시 서울 마포구 하수동 방성자의 집에 몰래 숨어든 도둑이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도둑은 복부에 관통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방성자는 즉시 과실치상 및 총포화약류 단속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이 사건은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미모의 여배우가 권총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방 씨 사건은 연일 일간지 사회면에 올랐고 기자들은 방 씨의 집 앞에 살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라 기자들은 방 씨의 집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그에게 사건동기를 캐묻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방 씨의 진술이 신빙성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경찰에서 자신이 45구경 권총 한 발을 쐈다고 진술했다. 방성자는 “1965년 영화 ‘전쟁과 다리’를 촬영할 때 영화 소도구 대여업자로부터 미제 45구경 권총을 빌린 뒤 반납하지 않은 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권총을 머리맡 문에 뒀다가 인기척에 놀라 엉겁결에 도둑에게 발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방 씨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소품으로 사용된 권총은 반납됐고 실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권총은 새것이었고 실탄도 5발이 들어 있었다.

검찰 또한 그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방 씨는 재판장에서 “내가 출연한 액션 영화에서 총 쏘는 기술을 배운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사는 방 씨에게 총을 쏴보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방 씨는 총을 다룰 줄 몰랐다.
결국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범인은 바로 방 씨의 연인 함기준이었다.

재벌2세 공군 사병
연인 위해 비밀 지켰다

함 씨는 D산업 아들로 재벌2세이자 당시 공군 사병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유부남이었다.
두 사람은 우연히 파티장에서 만나 연인 사이가 됐고 동거를 시작했다. 사건 당일 함 씨는 휴가 중이었다. 그러나 당시 함 씨가 현역군인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퇴근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경찰에 따르면 함 씨는 예비역 장교인 형이 제대하면서 가져온 권총을 방 씨의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 당일 방에 침입한 도둑에게 그 총을 발사한 것이다.
방 씨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그의 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이 저지른 범죄라면서 함 씨가 총을 쏜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매니저가 법정에서 “권총의 주인은 함 씨”라며 “함 씨가 총을 쐈다. 그리고 도둑이 죽자 방 씨와 입을 맞추고 급히 사라진 것”이라고 폭로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결국 함 씨도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모든 것이 드러나자 방 씨는 “그를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총을 쐈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에서 방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함 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방 씨는 선고 이후 자신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이 사건을 아름답게 봐 주느냐, 추하게 봐 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자 여러분들의 양심에 달렸다”고 말했다. 자신이 실형을 각오하면서까지 연인을 감싸고자 했던 사랑을 아름답게 봐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불륜을 사랑으로 포장한 그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아름답게 봐주세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술집 마담으로 일하다
결핵으로 사망

이 사건 이후 다시는 방 씨를 영화계에서 볼 수 없었다. 또 방 씨의 행적을 둘러싼 무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1989년 방 씨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밝혀진 바 없다.

방 씨의 또 다른 근황은 재판 이후 부산에서 술집 마담으로 일하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직접 부산 술집에서 방 씨를 목격했다는 사람들과, 구체적인 술집 이름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방 씨는 결핵에 걸렸고 결국 1983년 부산의 어느 수녀원에 딸린 무료요양소에서 향년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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