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 놓고 여권내부 물밑 경쟁
벼랑 끝 몰린 친박계, 모종의 플랜 준비說 나돌아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청와대 인적 쇄신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와 새누리당의 비박계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비박계 내부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으로 청와대가 적지 않은 홍역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선실세의 그림자가 완전히 걷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돌고 있다. 청와대가 개편을 놓고 단호한 내부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사실상 회전문인사에 불과한 개편을 단행한 탓으로 보인다. 이에 일각에서 “청와대 비선에 누군가의 힘이 아직 작용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당 내부 주도권을 비박에 내준 청와대가 개편을 미루고 모종의 플랜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관측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투톱’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친박-비박 간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당을 장악한 비박계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는 현 정부 정책기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청와대의 인적쇄신 요구와 더불어 당청관계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어 여권 내 계파 간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는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 이정현 최고위원이 불참, 여권 내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의 깊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이날 회의는 유 원내대표가 선출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당의 공식회의였지만 친박 중진 의원들의 불참으로 친박 측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친박 측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에 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것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박계와의 마찰은 다각도로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어 친박계는 해법 마련에 절치부심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당은 오히려 증세와 복지 논쟁을 키워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차질을 야기하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도 당 지도부의 대통령 흔들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존 어려운 공생관계
친박계가 여당 내 비박계에 불편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있지만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당장 당 지도부를 향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 전당대회, 원내 지도부 선거 등 당내에서 진행된 선거에서 모두 비박계에 패배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여권 일부에서는 당 지도부 회의에 친박계 의원들이 불참하는 것을 두고 “당 주도권을 쥐고 있는 친이계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기 때문에 친박계 의원들이 함께 자리하기 불편한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당 지도부 회의에서 친이계 등 비박계 의원들이 자리를 메워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내는 일이 잦다.
김태호 최고위원, 이군현 사무총장,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 이재오 이병석 정병국 심재철 정미경 의원을 비롯해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 등 친이계와 비주류 인사들이 청와대에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 친박계 인사들의 합석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원내대표였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비박계 지도부의 행보를 살피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당권을 완전히 장악한 비박계와 청와대가 정면충돌로 치닫게 될 경우 친박계에 적지 않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비박계 지도부의 행보를 우선 관망하자는 친박 의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대화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과 비박계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갈등을 증폭시킬 뇌관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함께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공세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박계 지도부가 현 정부의 세금 복지 정책 기조의 수정과 당정청회의 정례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청와대를 압박하고, 박 대통령이 반대 입장을 보인 개헌 논의의 필요성도 거듭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비박계와 친박계 간의 갈등을 노출시켰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장 임명 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또 총선을 앞두고 벼랑 끝에 몰린 친박계가 사활을 건 반격에 나서거나 일부 친박 핵심 인사들을 제외한 일부 친박 의원들이 이탈하는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친이계 전반에 깔려 있는 가장 큰 불만은 당 내 소수파인 친박계가 정권 핵심 요직에 포진해 거대 여당을 움직이려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박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비박계를 외면한 것은 친박계라는 것이다.
전면전 또는 회유 놓고 고민
친박계는 지난 대선 당시 친이계를 비롯한 비박계에 협력을 요청하면서 공생을 약속했다. 하지만 친박계는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비박계의 시각이다. 당내 절대 소수가 절대 다수의 뜻을 외면하고 지배자로 군림하게 그냥 둘 수 없다는 게 비박계 내부에 깔린 분위기다.
비박계가 청와대에 인적쇄신과 개혁 그리고 개헌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권은 친박계가 잡았지만 당권은 친이계가 잡은 만큼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친이계의 본심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비박과 친박의 신경전은 이를 잘 드러낸다. 친이계 의원들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 청와대 인적쇄신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다. 필요하다면 특검도 수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드러내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집권 3년차는 여러가지 손발 맞춰서 일해야 되는 시기인데 청와대를 흔들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친박계의 성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친박계에 대한 비박계의 예리한 공격은 계속되는 분위기다.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 “아직 비선실세가 건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비박계의 한 인사는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정씨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규명된 게 없다. 정씨는 비선실세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규명되지는 않았다”며 “또 정씨가 아니라면 다른 비선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만약 진실로 비선실세가 없는 상황에 그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대통령이 난감해하며 이리저리 피할 궁리를 할 게 아니라 대노해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정상적인 모습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박계의 의혹 제기를 의식한 듯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11일 “청와대가 인사를 다하고 총리를 형식적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의 질문에 “총리를 그만 두겠다.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후보자는 청와대 인적쇄신에 대한 이 후보자의 견해를 묻는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의 질문에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며 “비서의 문제는 쓰는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게 적절치 않다. 죄송하다”고 슬쩍 피해갔기 때문이다.
한편 내년 공천권을 둘러싼 수위를 더해가고 있는 계파갈등의 뿌리라는 관측도 있다. 친박계와 갈등설에 휩싸인 김 대표가 내년 총선을 두고 여론조사 공천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이에 청와대를 비롯한 친박계 전반이 공천 관여에 위협을 느끼면, 추후 정면충돌 양상까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강조하는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도)에 대해 서 최고위원이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양상이라면 친박과 비박 간 명운이 걸린 총선을 놓고 올해 중·후반기로 갈수록 다툼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더해진다.
친박계 사정기관 카드 내미나
새누리당 친이계 내부에서 “청와대가 당내 특정 계파를 겨냥해 숨겨뒀던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는 민정라인을 통째로 교체하고 검찰인사까지 단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 조직개편을 둘러싼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청와대가 친이계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청와대가 사정라인을 대폭 개편 보강해 MB정부의 핵심들을 상대로 한 비리 의혹을 추가로 수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황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검찰 등 사정기관 소식통들에 따르면 검찰 경찰이 MB정부 때 제기된 비리 의혹 중 여권 관계자가 연루된 사건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사건의 경우 이미 관련 정황증거를 상당부분 확보했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 정리된 직후부터 개편을 부분적으로 단행하고 있다. 청와대가 가장 개편에 신경 쓰는 곳은 민정실이다. 표면적으로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파동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경질성 인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한 청와대 소식통은 “항명파문은 민정라인 완전 개편을 위해 부각시킨 일종의 쇼라고 볼 수 있다”며 “유출된 문건 내용의 일부가 민정실에서 생산된 것임을 확인한 청와대가 이러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 ‘항명파문’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민정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의 우려대로 이 전 대통령의 여러 비리 의혹이 국정조사와 특검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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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