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쌍용차 사태 ‘마지막 반전 남았다’
막 내린 쌍용차 사태 ‘마지막 반전 남았다’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8-11 14:39
  • 승인 2009.08.11 14:39
  • 호수 798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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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내전’77일 최악 참사는 막았지만…

2개월 그리고 보름여. 숨 막히는 폭염 속에서 전개된 내전은 100여명의 사상자와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을 남긴 채 끝났다. 지난 6일 쌍용자동차 노조가 평택공장 점거농성을 시작한 지 만 76일 만에 사측과 극적으로 협상에 합의했다. 나흘간의 밤샘 ‘마라톤협상’이 결렬된 지 사흘, 경찰 특공대가 공장 진입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노조 측이 백기 투항한 셈이다.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회사 측은 용역직원을 동원했고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직원들까지 농성 현장에 투입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한 식구로 지내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욕설과 오물을 퍼붓는 촌극이 수십일 이상 이어졌다. ‘함께 살자’라는 노조 측 구호가 무색해진 건 물론이다. 여기에 지난 4일 경찰 특공대까지 진압에 나서면서 자칫 ‘제2의 용산참사’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당초 2405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계획했던 쌍용차는 희망퇴직 신청 기간이 끝난 지난 6월 2일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해고대상자 1056명에게 해고통지서를 발송했다. 물과 전기조차 끊긴 공장 안을 전전하며 마지막까지 고용보장을 요구했던 조합원 976명 가운데 과반이 넘는 502명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됐다. 처음 회사 측이 제안했던 40% 구제안 보다는 많은 수의 직원이 살아남았지만 그간 전쟁이나 다름없는 농성 과정을 떠올리면 허탈한 수준이다. 더구나 회사와 노조 모두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벌어진 협상은 ‘또 다른 불씨’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이미 쌍용차의 자체회생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외국 자본과 정부가 경영 과정에 개입할 경우 새로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농후한 까닭이다.


화약고서 배수진 ‘이러다 다 죽는다’

나흘간의 밤샘 협상이 결렬된 지난 3일 노조는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겠다며 ‘결사투쟁’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경찰특공대가 전격 투입돼 노조원들의 본부인 도장2공장을 제외한 공장 전 지역을 접수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경찰 봉쇄가 이뤄진 직후부터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 중 1/3에 해당하는 237명이 제 발로 투항했다. 전기와 식수 공급이 끊긴 뒤 딱딱하게 굳은 주먹밥 한 개로 하루 식사를 대신하던 노조원들이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진 이탈 시 선처’라는 경찰의 당근책은 내부 동요를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지난 6일 아침 노조가 사측에 먼저 전화를 걸어 대화를 요청했고 이날 정오 사측 대표인 박영태 법정관리인과 한상균 노조위원장의 독대가 이뤄졌다. 1시간 20분 동안 공장 내 ‘평화지역’으로 설정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밀실 협상을 벌인 두 사람은 마침내 두 손을 맞잡았다.

화염병과 쇠구슬, 최루액과 전기충격기가 난무하던 평택내전이 마침내 끝을 보인 것이다. 경찰과 쌍용차 측 임직원을 포함해 10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정리해고와 관련, 4명의 쌍용차 직원과 그 가족이 돌연사 또는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1월 경찰 1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악몽은 이미 재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조원들이 공장 내부에 설치한 각종 부비트랩과 20만ℓ에 달하는 인화물질이 작동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됐다는 점이다.

경찰과 언론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문제의 도장2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쌍용차 공장 전체가 형체도 없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공장 인근 아파트 단지까지 치명적인 위험이 빠질 게 자명했다. 자칫 수천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망한 쌍용차, 무엇 때문에 피 흘렸나

모기업인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철수한 뒤 경영난에 빠진 쌍용차는 올해 초 정부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지난 2월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사실상 쌍용차의 기업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의 극단적 대립이 불거졌고 이는 77일 간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 특공대까지 동원된 전쟁의 끝은 허무하기 그지 없다. 이미 사측이 계획한 감축규모의 2/3이상인 1500여명이 자의 또는 타의로 회사를 떠났고 이 가운데 노조가 감싸 안은 직원은 5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여기에 두 달을 넘긴 파업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쌍용차의 회생 가능성은 한 자리수 아래로 뚝 떨어진 상태. 노조와 사측 모두 피 흘리며 전쟁을 치렀지만 정작 손에 쥔 것은 보잘 것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쌍용차 사태가 일단락됨에 따라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인도를 비롯한 해외 기업이 쌍용차 매각에 관심을 보임에 따라 회생절차를 거쳐 쌍용차를 넘기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당장 내년 초까지 2500억원에 달하는 고정비용이 필요한데다 이번 사태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물론, 회사 내 갈등도 새로운 불씨가 될 전망이다.

상처뿐인 소모전으로 끝난 쌍용차 파문은 당분간 ‘산 넘어 산’식의 고난을 예고하고 있다.


# 쌍용차 사태 주요사건 일지

▲2009년 1월 9일= 쌍용차,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2월6일= 법원, 쌍용차 회생절차 개시 결정
▲3월 31일= 임금교섭, 손해배상 청구
▲4월 24일= 노조 부분파업 시작
▲5월 6일= 삼일회계법인 쌍용차 조사 보고서 제출
▲5월 8일= 쌍용차, 노동부에 2405명 해고계획 신고서 제출
▲5월 11일= 쌍용차 부분 파업
▲5월 13일= 쌍용차 노조원 3명 굴뚝 농성 시작
▲5월 21일= 쌍용차 노조 총파업 돌입, 쌍용차 노사정 첫 협의회
▲5월 22일= 쌍용차 노조 점거 파업 시작
▲5월 31일= 쌍용차, 직장폐쇄
▲6월 2일= 쌍용차, 정리해고 대상자 1056명에 우편 통보
▲6월 8일= 쌍용차 정리해고 법적 효력 발생
▲6월 8~10일= 쌍용차 정리해고 비대상 임직원 '쌍용차 정상화 촉구 결의대회'
▲6월 15일= 쌍용차 정리해고 비대상 임직원 출근 투쟁, 쌍용차 노조, 법정공동관리인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발
▲6월 16일= 쌍용차 정리해고 비대상자 임직원 투쟁, 자진해산
▲6월 22일= 한상균 지부장 등 190명을 상대로 5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및 노조 금융계좌와 노조 간부 9명의 임금채권 5억원에 대해 가압류 신청
▲6월 23일 = 쌍용차 임직원, 공장 출근 투쟁 시작. 쌍용차 노조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
▲6월 25일 = 출근투쟁하던 쌍용차 임직원 공장 주변 울타리 제거, 진입 시도
▲6월 26일 = 쌍용차 희망퇴직 및 무급휴직 등 담긴 최종 구조조정안 노조에 제시. 임직원 3000여명 공장 진입, 노조와 격렬 충돌
▲6월 27일 = 공장진입 성공한 쌍용차 임직원 3000여명 자진 해산. 임직원, 노조 100여명 부상.
▲6월 28일 = 쌍용차 범대위, 법정공동관리인과 용역업체 경비업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
▲6월 29일 = 쌍용차, 노조 퇴거명령 강제집행 신청
▲7월 1일 = 경찰, 평택경찰서장과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을 공동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 구성. 금속노조 4000여명 평택공장 앞에서 쌍용차 노조 지지 결의대회 개최
▲7월 14~17일= 쌍용차 임직원 400여명 평택시~청와대 도보 릴레이 행진
▲7월 15일= 금속노조 평택공장 진입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 82명 연행. 경찰, 수사본부 구성 이후 금속노조 경기지부장 양모씨 쌍용차 노조원 권모씨 등 총 5명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등 혐의로 구속.
▲7월20일= 쌍용차 노조 퇴거명령 강제집행 실패. 경찰, 본관 및 연구동 등 확보위해 전진 배치. 쌍용차 노조 간부 아내 자살
▲7월 25일= 사측 노사대화 불참 선언 뒤 중재단 설득 끝에 재개키로 결정.
▲7월 29일 = 쌍용자 협동회 채권단 비상대책위 이번달 중 사태 해결 안되면 8월 5일 법원에 파산요구서 제출키로 결정.
▲7월 30일 = 쌍용차 노사 42일만에 직접 대화
▲8월 2일 = 쌍용차 노사 교섭 결렬, 사측 '청산형 회생계획안' 검토 및 도장2공장 전력 중단
▲8월 3일 = 협동회 채권단 조기파산 신청 및 신설 법인 설입안 발표 및 법정관리인 면담
▲8월 4일 = 경찰 강제 진입 시작, 본관ㆍ프레스 공장ㆍTRE건물ㆍ연구동 등 확보
▲8월 5일 = 경찰 2차 강제 진입 시작 및 도장2공장 외 모든 시설 장악, 협동회 채권단 법원 조기파산 신청
▲8월 6일 = 노사 40% 정리해고 구제 안 큰 틀에서 합의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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