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넉살’은 핵심 덕목…치킨·피자·음료수 ‘공수’도

최근 임시국회를 준비하면서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솔직히 시달렸다고 하는 게 맞다. 그 이유는 공공기관들의 국회업무 담당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직무특성상 의원실에서 준비하는 정책질의서 내용을 사전에 입수하려는 집요함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질의서가 언제쯤 되느냐, 내용은 어떤 것이냐 채근한다. 심지어 빨리 달라고 아우성친다. 이들의 업무나 의원회관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매우 의아해 할 수 있는 진풍경이다. 마치 맡겨놓은 듯 질의서를 버젓이 달라는 표정이다. 국회담당자들의 직무특성을 아는 보좌진들은 그냥 넉살좋게 되받아친다.
얼마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전체회의가 있었다. 국토교통부와 청단위 기관, 여기에다 14개 산하 공공기관들까지도 한꺼번에 올해 업무보고를 받았다. 보좌진들은 이틀에 걸쳐 진행된 회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공공기관 국회담당자들도 밤늦은 시간까지 의원실을 들락거렸다. 정책질의서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속한 기관에 질문을 할 것인지 부터 묻는다. 준비하고 있다는 답변을 듣는 순간부터 질의서 방향은 뭐냐, 내용을 알 수 없느냐 꼬치꼬치 캐묻는다.
강원도 아들 군면회 마치고 ‘국회’ 방문
공공기관의 업무보고가 있기 전날 의원실이 북적거렸다. 국정감사 이후 몇 개월만이다. 대전, 부산, 전주, 김천 등 지방으로 본사가 이전한 공공기관들의 국회담당자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사무실과 문앞에서 줄창 기다렸다. 일부는 외부손님 접견실에서 마냥 기다린다. 주변에 장사진(長蛇陣)을 친 채 기다리던 국회담당자들은 친소(親疏)에 따라서 채근하기도 한다. 넉살좋게 질의서가 언제쯤 될 것 같으냐, 빨리 달라고 요구하는 국회담당자들은 경험이 많고 노련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퇴근 직전에 대전에 있는 모 공공기관 사람이 찾아왔다. 정식 국회담당자도 아니었다. 연가를 내고 군대간 아들 면회를 갔다가 밤 9시가 넘어서 방문한 것이다. 불과 몇시간 전에 당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깜짝 놀랬다. 헐레벌떡 방문한 것을 보면 급했나보다. 강원도에서 부랴부랴 달려 왔다고 한다.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시간까지 해당기관이 질의내용을 입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직장인의 애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결국 오후 10시가 넘어 함께 나왔다.
그 직원은 한 두차례 의원실을 찾아왔던 것을 보면 아마도 의원실 담당부서 직원 같았다. 모든 공공기관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공공기관들은 비공식적으로 개별의원실 담당하는 부서를 내부적으로 정한 곳도 있다. 국회담당자 혼자서 전체 의원실을 커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로 큰 기관들이 그렇게 한다. 이들의 잦은 방문이 성가실 정도다.
경험많고 노련한 국회담당자들은 질의서를 일찍 입수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 평상시에 친밀도를 높이지 않은 국회담당자는 밤늦게까지도 얻지 못한다. 골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최소한 제목이라도 알려달라고 읍소하고, 사정한다. 집요할만큼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들은 질의서 내용파악이 1차 목표다.
공공기관 국회담당자들의 질의서 사전입수는 매우 중요하다. 마치 이들의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내부척도와도 같다. 수시로 국회를 출입하면서도 질의내용을 사전에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면 자칫 내부평판은 썩 좋지 않을 듯 싶다. 그래서 질의서 사전입수는 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업무이자 목표다. 질의서를 못구한다면 최소한 아이템이나 준비한 질의꼭지라도 얻으려 한다. 제목이라도 얻으면 답변준비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간식들고 불쑥 불쑥 찾아와
공공기관 국회 담당자들은 간혹 간식거리를 들고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아마도 서먹함을 털어내려는 자신만의 묘책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공공기관 담당자들이 묻이 닫힌 의원실을 오는게 쉽지는 않다는 반응들이다. 약간의 경직된 분위기도 그렇지만 피감기관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게 느껴질 듯 싶다. 그러다 보니 간혹 음료수와 빵, 피자, 치킨을 들고 불쑥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주로 처음으로 의원실을 방문하거나 서먹함이 있는 기관사람들이다. 그렇게 찾아와서는 사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서먹함을 없애고 관계를 트려는 시도다. 그들의 애환을 느낄 수 없다.
한편 공공기관이란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요건에 해당해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의미한다. 법률에 지난해 기준으로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은 모두 302개에 이른다.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87개, 기타 공공기관이 185개다. 이들 공공기관의 유형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공기업이란 직원 정원이 50인 이상이고, 자체수입액이 총수입액의 2분의 1이상인 공공기관중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말한다.
공기업은 시장형과 준시장형으로 분류된다. 시장형 공기업은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이고, 총 수입액 중 자체수입액이 85% 이상인 공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14개에 이른다. 준시장형 공기업은 시장형 공기업이 아닌 공기업을 말한다. 철도공사, 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등 16개에 이른다.
준정부기관은 직원 정원이 50인 이상이고, 공기업이 아닌 공공기관 중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말한다. 준정부 기관은 기금관리형과 위탁집행형으로 분류된다. 기관관리형 준정부기관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기금을 관리하거나, 기금의 관리를 위탁받은 준정부기관을 말한다. 공무원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17개에 이른다.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은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 아닌 준정부기관을 말한다. 교통안전공단, 대한지적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농어촌공사 등 70개에 이른다. 또한 공기업, 준정부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을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한다. 강원랜드, 한국건설관리공사, 중소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서울대학교병원 등 185개에 이른다.
이들 공공기관에는 국회담당자들이 있다. 일부 공공기관들의 경우 내부업무도 병행한다. 자산규모나 조직,인력이 큰 대형 공기업일수록 국회업무만을 전담하고 있다. 거의 매일 국회로 출근하다시피하는 국회담당자들도 있다. 규모가 큰 공공기관일수록 적어도 1주일에 2-3번씩은 의원회관을 돌아다닌다. 보좌진들을 수시로 소통한다. 이들은 업무특성상 넉살도 좋아야 한다. <계속>
<김현목 보좌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