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 테러 미스터리 미궁에 빠진 사건 장기화 조짐
독극물 테러 미스터리 미궁에 빠진 사건 장기화 조짐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9-07-21 13:42
  • 승인 2009.07.21 13:42
  • 호수 795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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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웃’ 청산가리 막걸리 범인은마을 내부인

시골 마을에서 끔찍한 독극물 테러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건은 지난 6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 천변에서 발생했다. 이날 희망근로에 참가한 할머니 4명이 청산가리가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고 쓰러져 2명이 숨지고 나머지 2명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누군가 고의로 막걸리에 독극물을 투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2004년 9월경 대구에서 발생한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을 모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의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범인은 여전히 안개에 가려져 있다. 범행 동기도 불투명하고 범인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범인을 밝힐만한 증거가 마땅치 않다. 따라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도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건 당일, 기분 좋게 막걸리를 나눠 마신 최모(56·여)씨와 장모(74), 정모(75), 이모(75)할머니 등 4명이 갑자기 구토와 함께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119에 신고했다.

이씨는 막걸리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고 막걸리를 재빨리 내뱉은 덕분에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희망근로 참여자들인 이들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천변 일대에서 잡초를 뽑는 등 환경정화활동을 하던 중 막걸리를 마시고 변을 당했다.

문제의 막걸리는 최씨가 가져온 것이었다. 최씨는 집에 있던 2병과 슈퍼마켓에서 산 3병 등 모두 5병의 막걸리를 근무지로 가져와 집에 있던 막걸리 1병을 열어 동료들과 나눠 마셨다.

막걸리를 마신 4명이 쓰러진 직후 주변인들이 막걸리를 살펴보니 막걸리가 청색을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문제의 막걸리가 어떤 경로로 최씨의 집에 있게 된 것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되고 있다”며 “누군가 최씨의 집 마당에 놓아 둔 막걸리를 보관해 오던 최씨가 이를 사건 당일 가지고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의 남편이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집에 막걸리를 놓아둔 이가 누군지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이들은 남편 주변인들이다. 남편은 이웃의 농사일을 잘 도와줘 평소 마을 주민들이 감사의 표시로 막걸리 등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절한 이웃의 두 얼굴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막걸리 병에서는 주삿바늘 자국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뚜껑을 열고 다량의 청산가리를 넣은 것이다. 청산가리는 소량으로도 수십 명을 사망케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약물이다. 이를 막걸리에 다량 투여한 점으로 미뤄 범인이 최씨 부부를 해치기 위해 계획적으로 ‘죽음의 막걸리’를 선물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또 경찰은 문제의 막걸리 병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 분석을 의뢰했으며 병에 묻은 지문 분석과 탐문 등을 통해 막걸리를 가져다 놓은 사람을 찾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이 석 달 전 충남 보령에서 발생한 ‘독극물 테러’와 흡사한 점이 많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건은 모두 청산가리가 사용됐고 피해자들은 노인들이다. 또 피해자들의 생활습관을 잘 아는 마을 내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도 유사점이다.

보령 청소면 성골마을 주민 3명은 지난 4월 29일 독극물이 든 음식을 먹고 차례로 숨졌다. 피해자들은 모두 70~80대 노인들로 다른 주민 50여명과 단체관광을 가서 설렁탕 등을 함께 먹고 귀가했으나 밤에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차례로 숨졌다. 이들의 사인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 숨진 이들의 부검을 의뢰한 경찰은 그 결과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자 모두 위 속에서 청산가리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지자 마을 주민들은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었다.

사건의 후폭풍은 거셌다. 경찰은 마을 주민 중 범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폈다. 내부인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자 마을 주민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의심과 경계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아무개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인정 넘치던 시골마을이 순식간에 ‘정 떨어지는 마을’로 돌변했다.


미스터리 사건 미궁 속으로

순천의 사정도 보령과 다르지 않다. 보령 마을 주민들은 현재 이웃 간에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누구에게 먹을 것을 주려면 독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할 판이다.

이 마을의 한 주민은 “불안한 마음이 앞서다보니 현재 마을 주민들은 동네 가게에서 시원한 음료수도 속 편히 사 마실 수 없다”며 “범인이 잡히면 다행이겠지만 잡히지 않으면 누가 약을 탔는지 모르니까 죽기 전에는 서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할 것 같다. 이 평화로운 마을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범인이 잡히길 바라는 마을 주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경찰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경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단서는 최씨 부부가 마당에 막걸리를 놓아두면 별 의심 없이 마신다는 사실을 아는 마을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것뿐이다. 순천경찰서는 7개팀 35명을 투입해 마을 117가구 280여명에 대해 집중 조사를 펴는 한편 문제의 막걸리가 최씨 집 마당에 놓아진 당일 새벽 시간 최씨 집 주변을 배회한 사람을 찾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문제의 막걸리가 마을에서 판매되는 게 아니라 마을에서 승용차로 30~40분 거리가 떨어져 있는 순천시내와 시 외곽 2개 면 지역에만 판매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에 따라 사건 발생 직전 이곳에서 막걸리를 구입한 이들을 추려내고 있다. 모방범죄나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반드시 범인을 검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제의 막걸리는 사건 발생 1주일 전 막걸리를 구입한 뒤 이틀 전 청산가리를 투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4일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문제의 막걸리는 모 회사에서 지난 2일께 제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순천 시내 막걸리 판매점 160곳과 청산가리 판매점 3곳 등에 대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자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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