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한나라당 K의원이 동료들 고발했다”
“현 한나라당 K의원이 동료들 고발했다”
  • 홍성철 
  • 입력 2004-10-01 09:00
  • 승인 2004.10.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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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문제가 정치권 핫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전국민족민주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 당시 내부에 밀고자가 있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러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옥고를 치른 바 있는 이 교수는 지난해 11월초 발간된 ‘실록 민청학련’ 기고문에서 내부밀고자가 있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이후 각 언론사 기자들은 그 밀고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민청학련 핵심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는 등 분주한 취재 경쟁을 펼쳤다.<일요서울>도 밀고자를 추적한 결과 한나라당 K의원이 그 당사자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다만 당시 K의원은 공인(국회의원)이 아니었던 관계로 지면에 크게 반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K의원이 17대 총선에서 당선돼 공인으로 거듭났고, 과거사 문제가 정치권 화두로 부상한 만큼 그 실체적 진실규명 차원에서 이 사건을 다시 밀착 취재했다.취재결과 민청학련 핵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K의원을 밀고자로 지목했다. 구체적인 물증만 없다 뿐이지 K의원이 내부밀고자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30여년이 지난 사건이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이유로 K의원을 실명으로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담스러워 했다.내부밀고자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K의원이 그 당사자임을 재차 확인시켜 줬다.

이 교수는 “K씨는 당시 학생회 핵심간부로 학생들을 보호하지는 못할 망정 멀쩡한 선후배들을 궁지에 빠뜨렸다”며 “그런 K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제1 야당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K씨 보다 역할이 적었던 학생들도 수 없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는데 그는 기소전에 유유히 풀려 났다”며 “K씨는 지금이라도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와 왜, 어떻게 연결됐는지, 또 수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교수는 특히 “당시 이해찬(국무총리)씨의 내란선동죄 추가와 강창일(열린우리당 의원)씨의 유죄 판결에 K씨의 허위증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차원에서라도 K씨는 당시 상황을 해명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철(민청학련계승사업회 공동대표) 전의원도 지난해 11월 말 기자에게 K의원이 내부밀고자임을 암시한 바 있다. 이 전의원은 당시 실명을 게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당시 이 전의원이 기자에게 털어 놓은 내용이다.밀고자는 다름아닌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했던 74년 당시 서울대 학생회 핵심간부였던 K씨다. K씨는 5년 후배다. 당시 동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K씨를 지지해 그가 학생회 핵심 자리에 앉는 것을 적극 도왔다. 그가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K씨는 우리 동지들의 비밀회의에도 참석했는데 그가 참석했던 회의 내용은 중앙정보부가 모두 알고 있었다. 그와 만나기로 한 동지들은 항상 현장에서 검거됐다. 중정에 들어간 학생회 간부들 대부분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핵심 간부였던 그는 유유히 풀려났다.

또 많은 동료들이 그의 법정 허위 증언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75년 나와 동료들이 석방됐을 때 그는 정부 유관기관에 취업해 있었다. K씨가 프락치 역할을 한 정황들이다. 나와 관련자 대부분은 그가 프락치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이처럼 K의원이 밀고자임을 확신하고 있는 이 전의원은 “K씨를 개인적으로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를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역사를 바로잡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K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해명하고 양심고백을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74년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로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문국주 전 민주재단 사무총장의 주장은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다음은 9월 22일 해외 출국 직전 공항에서 문 전총장이 기자에게 밝힌 내용이다.

“긴급조치 4호 선포(74년 4월3일) 전날 나는 당시 총학생회 핵심간부였던 강구철(작고) 선배와 서울 시내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K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같이 만나자고 했다. 강 선배는 갑작스런 일 때문에 약속 장소에 못 나왔고, 나만 나갔는데 그곳에는 동대문경찰서 정보과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K씨가 강 선배와 나의 약속을 정보기관에 알려줬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현장에 나와 같이 연행되는 형식을 취했던 것 같다. 중간 간부였던 나는 심한 고문과 함께 옥고를 치른 반면 핵심 간부였던 K씨는 기소전 유유히 풀려났다는 사실에서 그가 중정 프락치 역할을 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이처럼 K의원 때문에 직접 피해를 본 당사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문 전총장은 “K씨를 개인적으로는 용서를 하겠지만 수많은 동료 선후배를 궁지에 빠뜨린 장본인이 정치인으로 거듭난 현실이 씁쓸하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K의원의 증언이 자신의 유죄판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은 9월 22일 기자에게 ‘K의원이 밀고자’라는 관계자들의 주장에 대해 암묵적 동의를 표했다. 강 의원은 “K의원이 동료 의원이자 동문인 만큼 노코멘트 하겠다”고 전제한 뒤 민청학련 밀고자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인 증언을 해 줄 사람들을 기자에게 소개해 주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한편 내부밀고자로 지목받고 있는 K의원은 22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함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K의원은 “당시 일부 경솔했던 행동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 경솔한 행동을 반성하며 자숙하는 차원에서 그동안 조용히 지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관련 당사자(중정 등 정보기관 관계자 추정)들의 실명을 거론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아직은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해명할 시기도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이처럼 민청학련 관계자들의 주장과 K의원의 입장을 종합해 볼 때 K의원이 밀고자라는 의혹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30여년이 지난 사건이고 관계자들도 심증만 있을뿐 구체적인 물증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실체적 진실 규명은 K의원의 진실된 고백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다만 K의원이 정치인으로 거듭난 만큼 이런 의혹이 증폭되고 실명이 거론될 경우 그는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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