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식칼 품은 변태성욕자와 육탄전 불사 “간담 서늘한 경험”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 순경 시절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시체를 처음 보았다. 그 참혹한 핏빛과 지독한 악취는 33년 수사관의 인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일상이 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일명 ‘사직동팀’)에서 17년을 보내며 최고위 공무원의 부정을 캐는 ‘비리 사냥꾼’으로 변신한 뒤에도 젊은 시절 보았던 피해자들의 비참한 사연과 말로는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람의 몸을, 마음을 상처 내는 범죄자들의 파렴치한 수작을 저지하고 밝혀내는 데 쾌감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 고운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돌아오신 듯한” 통쾌함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사직동팀 터줏대감’ 이기풍(69) 전 경감. <일요서울>이 만난 네 번째 ‘대한민국 수사반장’ 주인공이다.
찌는 듯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 서울 양천경찰서 경우회 사무실에서 이 전 경감을 만났다. “은퇴한지 11년 됐는데 여전히 경찰서가 내 집 같다”는 이 전 경감. 1975년 말단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그는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특수수사과·일명 사직동팀), 경찰청 감찰과를 거쳐 서울시경 강력계장 등을 지낸 전문 수사통이다.
경감 직위를 끝으로 1998년 정년퇴직한 직후 삼성화재에 스카우트 돼 보험범죄조사 부문 자문역을 담당했다. 2006년 퇴사한 뒤에는 서울 양천경찰서 재향 향우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원로 수사관으로서 지역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피 끓는 순경시절, 살인현장에서…”
33년 동안 경찰에 헌신한 이 전 경감의 이력 가운데 가장 길고 눈에 띄는 것은 ‘사직동팀’이라 불리는 경찰청 특수수사과 요원 시절이다. 주로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나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첩보를 수집하는 요직을 무려 17년 동안 경험한 이 전 경감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권 고위층과 치열한 막후 싸움을 수도 없이 벌였을 그가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며 기자에게 소개한 것은 초임 순경시절 처음 맞닥뜨린 살인사건이었다.
“경남 함양경찰서에서 처음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피 끓는 초짜 순경이 겁조차 상실했을 때였지.”
의욕 넘치는 ‘청년 이기풍’을 눈여겨본 간부는 입사 3개월 만에 그를 형사계 신참 형사로 발탁했다. 범죄에 맞서는 수사관 인생의 시작이었다.
1978년 쌀쌀한 칼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 날,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한 공터에서 벌거벗은 여인의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자는 마을에 사는 이혼녀로 정신지체를 앓고 있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이 전 경감은 마을 의사를 검시관삼아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온통 피. 피바다였습니다. 의사를 도와 시신을 수습하고 혼자 부검과정을 도왔는데 사흘 동안은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 만큼 끔찍했죠.”
피해여성은 성기를 중심으로 내장이 상당부분 끄집어내진 상태였다. 허리 아래 부분은 날카로운 흉기로 난도질당한 듯 상처투성이였다. 동행한 의사는 피해여성이 유산을 했거나 강제로 중절수술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손과 손톱 끝에도 핏덩어리가 말라 붙어 있었다.
“피해자가 알몸이었고 유독 성기 손상이 심해 누군가에게 강간당했을 것이란 추측을 했습니다. 성기가 열려 있는 것으로 봐서 출산을 한 뒤 누군가 아이는 빼돌리고 여인을 살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러나 부검대 위에 시신을 올려놓았을 때 이 전 경감은 뭔가 잘못 짚었다는 걸 깨달았다. 뒤집어놓은 시신의 항문에도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던 것. 불길한 예감에 이 전 경감은 의사를 채근해 시신의 배를 갈라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기절할 뻔 했죠. 피해자 배를 쭉 갈랐는데 아랫배쯤에서 허연 물건이 나오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고무신이었어요.”
피해자의 뱃속에서 나온 것은 여성용 고무신 한 켤레였다. 한 짝은 여인의 성기로, 나머지 한 짝은 항문을 통해 범인이 쑤셔 넣은 게 분명했다. 실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었다.
변태살인마의 또 다른 범행 막다
조용한 시골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곧 수사본부가 설치됐고 변태 살인마를 잡기 위해 경찰서 인력이 총동원됐다. 피해자가 사망한 당일 마을주민 모두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곧 마을 젊은이 몇 명이 사건 당일 범행 현장 근처에 모여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범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문제의 마을 청년들을 경찰서에 불러 모았다. 그런데 유독 김모(당시 31세)씨만이 홀연히 자취를 감춘 것. 김씨는 20대 초 마을을 떠나 강원도 횡성에서 정육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잠시 고향에 머물고 있던 김씨가 말도 없이 사라지자 수사팀은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자 뒷조사를 하는데 느낌이 오더군요. 김씨 역시 이혼한 전력이 있었는데 전 부인과의 이혼 사유도 변태적인 성욕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김씨의 고향집을 덮쳤죠.”
물론 김씨는 이미 고향집에서 종적을 감춘 뒤였다. 형사들은 집에 혼자 남아있던 김씨의 남동생(당시 중학생)을 상대로 용의자의 행적을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이 전 경감은 마당 한구석에 수북이 쌓인 퇴비더미에서 무언가 불쑥 삐져나온 것을 발견했다.
“파보니 남자용 점퍼 조각이었습니다. 다 타고 여며진 지퍼부분만 남아있더군요. 군데군데 핏자국으로 보이는 얼룩이 있는 걸로 봐서 틀림없이 범행 당시 용의자가 입고 있던 옷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물증을 흔들며 달래자 김씨의 남동생은 형의 범행 사실을 낱낱이 실토할 수밖에 없었던 것. 김씨는 급히 마을을 떠나기 위해 돈이 필요했지만 남동생 혼자 있는 집에 도망자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남동생 말이 김씨가 돈 대신 쌀 두 바가지만 들고 집을 나갔다더군요. 그때까지 수사팀이 파악한 김씨의 연고지가 31군데였는데 돈도 없고 차도 없는 용의자가 멀리 가지 못했을 거란 추리를 했습니다.”
고향집을 제외하고 김씨가 갈 만한 가장 가까운 연고지는 남원에 있는 외갓집이었다. 그러나 수사팀이 남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한발 늦은 상황. 김씨는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허탈함에 동료들이 철수를 결정했을 때 김씨의 친척이 무심결에 한 한마디가 이 전 경감의 뇌리를 스쳤다.
“외갓집을 떠나기 전 용의자가 ‘과수원 같은 곳에서 조용히 생각 좀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혹시나 싶어 ‘근처에 과수원이 있냐’고 물어보니 과연 있다더군요.”
당장 쫓아야 한다는 이 전 경감의 말에 동료들은 코웃음을 쳤다. 결국 그는 지나가는 트럭을 ‘히치하이킹’해가며 문제의 과수원으로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직감 하나만 믿고 던진 승부수였다.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막 트럭에서 내리는데 저 멀리 김씨가 50대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섣불리 접근하면 놓치기 십상이라는 생각에 김씨 맞은편에 있는 중년남자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습니다.”
일부러 범인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동네 주민인 척 다가간 이 전 경감은 범인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 곧장 몸을 날렸다. 수갑과 무기도 챙기지 못한 상황에서 이 전 경감은 유도 기술로 김씨를 제압하고 그의 허리띠를 풀어 두 손을 꽁꽁 묶었다.
살인범을 잡았지만 돌아갈 차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전 경감은 또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범인을 경찰서까지 압송했다. 경찰서에 도착한 뒤 몸수색을 하자 김씨의 품안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칼 세 자루가 나왔다.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땐 그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잡아야겠다는 승부욕 밖에는 없었어요.”
‘성공한 수사관’이란 자부심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또 다른 범행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던 과수원 관리인을 살해하려 했다는 것. 이 전 경감은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50대 남성의 생명도 살린 셈이었다.
“나는 스스로 성공한 수사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해결할 때만큼은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맹세합니다.”
배당받은 사건은 후회 없이 해결했고 그때마다 통쾌함을 느꼈다며 과거를 회상한 이 전 경감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33년 동안 범죄와 치열하게 싸운 노병은 여전히 현역의 감각을 뽐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연구관 신분인 이 전 경감은 요즘도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사고 데이터를 모으며 ‘수사관 공부’에 한창이다.
“경험이 오래 쌓이다보면 사건을 보는 눈이 생겨요. 타고난 직감이라고도 하고 영감이라고도 하는데 요즘 젊은 후배들에겐 이런 감각이 조금 아쉽습니다.”
#리얼스토리 talk box
이기풍 전 경감
아내와 세 딸을 둔 이기풍 전 경감은 시종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서른을 훌쩍 넘긴 둘째 딸이 처녀로 남아있는 게 유일한 고민거리라는 이 전 경감은 팍팍한 수사관 생활을 접고 가정으로 돌아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 경찰 생활을 하며 가장 가족들에게 미안한 때가 언제였는지.
▶ 75년에 아내가 막내딸을 임신해 산달을 맞았는데 하필이면 내가 당직근무를 할 때 진통이 왔다. 결국 아내 혼자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나중에 관할 파출소(지구대)를 통해 연락이 왔는데 형사 신분에 당직을 그만두고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동네 아주머니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다. 다음날 점심께 헐레벌떡 뛰어갔는데 날 보자마자 펑펑 우는 아내를 보고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더라.
- 지방에서 형사생활을 하다 서울로 발탁된 케이스다. 범죄 스타일도 지방색이 드러나는가.
▶ 물론 지역마다 범죄 수법이나 용의자 성향이 다르다. 서울은 사건의 양도 많지만 수법 자체가 악랄한 경우가 많다. 특히 돈을 노린 강도·살인 사건이 빈번하다. 반면 중소도시나 시골 마을에서는 절도범이 강도로 돌변하는 경우가 적다. 또 서울은 묻지마 살인이 잦지만 지방에서는 면식범에 의한 범행이 많다.
- 용의자들과 몸싸움을 벌인 경력이 화려하다. 개인적으로 익힌 무술이 있는지.
▶ 격투기는 유도를 전공했고 3단이다. 경찰에 투신하기 전 학창시절 내내 복싱을 했다. 아마추어 선수급 수준은 된다.
- 후배 수사관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다면.
▶ 절대 과학수사를 맹신하지 마라. 수사관은 직감과 영감으로 첫 번째 승부를 걸어야 한다. 또 수사를 완성하는 결정적 노하우는 다름 아닌 부지런함이다. 형사에게 있어 철저한 탐문수사만큼 믿음직스러운 무기는 없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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