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지고 위로 받을 일은 분명히…‘땅콩 회항’ 교훈 되새겨야
책임 지고 위로 받을 일은 분명히…‘땅콩 회항’ 교훈 되새겨야
  • 서승만 편집위원
  • 입력 2015-02-09 14:43
  • 승인 2015.02.09 14:43
  • 호수 1084
  • 6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위원이 뛴다]

[일요서울 | 서승만 편집위원] 조양호 회장의 ‘땅콩 회항’ 사건의 증인 채택은 아주 ‘의외’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을 1심에서 낮은 형량으로 풀어주려는 명분쌓기용 아니겠느냐 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물론 법의 해석과 엄정한 판결에 따르는 것이지만 조 회장이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도 없고 대기업 총수를 재판의 ‘증인’으로 부르는 일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 ‘땅콩회항사건’의 ‘2차 공판’에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재판부의 증인으로 채택돼 지난달 30일 서부지법에 출석했다. 조 회장은 재판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에게 “대한항공을 아끼는 모든 분들께 사과한다”며 “법원에서 성실히 답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측에서는 박창진 사무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2차 공판에는 나오지 않고 지난 2일 3차 공판에서야 자진 출석했다. 특히 조 회장의 출석이 왜 지금의 시점에서 이뤄졌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 됐다.

조 전 부사장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 오성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열린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조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한다고 밝힌 바 있었다.

또 “유죄나 무죄는 검사나 변호인 측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할 부분이지만 조현아 피고인은 언제든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창진 사무장의 경우에는 과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도 재판부 초미의 관심사”라며 “조 회장을 조 전 부사장의 양형 관련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증인채택 배경을 설명했다.

조 회장은 증인석에서 “피해자(박창진 사무장)에게 불이익 없게 하겠다”고 말하면서 “이유야 어떻든 직원을 하기시킨 것은 잘못이다. 대표이사로서 직원(박창진 사무장 등)이 열심히 근무할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박 사무장 고용 여부
재판결과 반영

박 사무장에 대한 대한항공의 지속적 고용여부가 2차공판의 주요 관건이었는데 대한항공의 입장에서 보면 박 사무장이 껄끄러운 상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조 전 부사장의 횡포를 언론에 공개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계속 고용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도의적으로는 박 사무장을 해고하면 안된다는 것이 여론의 입장이다. 박 사무장을 계속 고용할 것인지에 대한 조 회장의 답변에 따라 양형 기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재판부도 여론의 추이를 살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재판부가 박 사무장의 고용지속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법적요건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여론에 의해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기 때문에 도의적으로는 대한항공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재판부는 강조하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은 총 5가지 죄목으로 기소가 됐다. 그중 항공기의 항로변경죄가 가장 크다. 이 부분에서 검찰 측과 변호사 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죄가 인정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항로변경죄에 대해서 무죄가 나올 경우, 집행유예 내지는 벌금형도 가능하다.

재경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항공보안법을 제외하면 중형이 선고될 혐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해 검찰은 3차 결심공판에서 3년을 구형했다. 재판결과는 이르면 설날 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대한항공 측은 비행기가 뜨지 않았으니까 운항이 아니다. 항로는 항공로와 같은 개념으로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중의 길을 말하는데 지상 200m 이상의 높이를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공기가 출발했다가 다시 되돌아간 것은 항로변경이 아니라 출발지연이라는 것.

항로변경 논란,
여론무마 병행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한항공 측이 항공보안법 상 항로변경 혐의를 두고 항로냐 아니냐를 다투면서도 사회적인 여론을 감안해 조 회장이 사과하고 박 사무장에 대해서는 계속 근무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조 전 부사장을 집행유예나 벌금 등으로 석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이 대한항공에 대해 고용여부에 관련해 양형기준을 정할 수 있는지와 고용관계 부분까지도 법이 간섭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지만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도 재판부의 고민일 것이다.

또 대한항공 조 회장 입장에서도 자신의 딸이 비교적 가벼운 처벌로 매듭지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과연 이 사건이 강한 비판여론에 힘입어 무리한 구속수사가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사법부가 법의 기준에서 철저히 규명해 법적으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제는 서로가 상처받은 부분에 대해서 책임질 사람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그 상처를 치유해줘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박 사무장은 대한항공에 계속 근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회사를 다니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재판부가 조 회장에게 박 사무장의 향후 거취에 대한 그룹 차원의 입장을 묻기로 결정한 만큼 이날 조 회장의 발언은 조 전 부사장의 양형에도 일부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3차 공판에 출석한 박 사무장은 ‘조현아에 대한 심경을 말해 달라’는 검사의 말에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은 경영방식으로 제가 다른 승무원과 당한 사건과 같은 행위를 한 것에 대해 본인(조현아)이 진실성 있게 반성해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나야 한 조직의 단순한 노동자로서 언제든 소모품 같은 존재가 되겠지만 조 전 부사장 및 오너 일가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 19년간 회사를 사랑했던 그 마음, 또 동료들이 생각하는 그 마음을 헤아려서 더 큰 경영자가 되는 발판으로 삼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solar21c@ilyoseoul.co.kr

서승만 편집위원 solar21c@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