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전쟁’은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지만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지도부를 뽑은 2·8 전당대회는 ‘가족 드라마’로 시작했지만 끝에는 ‘막장 드라마’로 치닫다가 막을 내렸다.
언론의 반응도 싸늘했다. 보수지, 진보지를 가리지 않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 새정치연합을 비판했다.
“文·朴(문재인·박지원) 룰 싸움 격화…野 ‘이러다 分黨’”<조선일보> “계파 패권주의·막말싸움…국민 짜증 돋우는 새정치 ‘그들만의 전대’”<경향신문> “초교 반장 선거보다 못한 새정치연합 경선”<중앙일보> “민심 걷어차는 야당의 ‘저질 전당대회’”<한겨레> “안 볼 사람처럼…文-朴 ‘막말 전대’”<동아일보>
도대체 새정치연합 지도부 경선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일단 2·8 전당대회는 ‘3무(無) 경선’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경선에 나선 인물이 참신하지 못하고, 뚜렷한 이슈가 없었으며, 경선 구도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흥행에 참패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당 대표나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후보 가운데 국민들이 새로운 기대를 걸 만한 인물이 없었다. 문재인 후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내고 2012년 대선 때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후보였다. 박지원 후보 역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고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세대교체를 주창했던 이인영 후보는 존재감이 약했다.
정가에서는 김부겸 전 의원 정도가 출전했어야 흥행이 일어났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김 전 의원은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총선, 시장 선거에 잇달아 출마해 40%대의 높은 득표를 올리며 의미 있는 패배를 기록했었다. 그의 출마를 바라는 당내 여론이 높았지만 “대구에 올인 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지도부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을 긴장시킬 ‘메기’가 없어져 버렸다. 안철수 의원이 출마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슈도 밋밋했다. ‘친노’ 대 ‘비노’ 프레임에 갇혀 경선 기간 동안 진영논리 대결만 펼쳤다. 경선 초반에 일어난 당명 개정 논란이 대표적이다. 박지원 후보는 호남의 ‘김대중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민주당’으로의 당명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자 안철수 의원 세력을 의식한 문재인 후보가 반대해 분란만 일으켰다.
박지원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제기한 ‘대선 패배 책임론’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2년 전에 끝난 대선을 놓고 아직도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경선 도중에 나온 문재인 후보의 ‘호남 총리론’은 호남에서 인기가 높은 박지원 후보를 의식한 발언이었지만 새정치연합을 ‘호남 정당’으로 각인시키는 빌미를 주면서 안팎의 비난을 받았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고향인 충청 민심이 돌아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경선 구도 역시 일찌감치 문재인·박지원 ‘빅2’ 구도가 굳어지는 바람에 흥미를 반감시켰다. 막판에 ‘문재인 대세론’과 ‘박지원 대안론’이 충돌하긴 했으나 그 때는 이미 청와대 발(發) 대형 정치 이슈에 묻혀 버렸다.
특히 막판에 불거진 경선 룰 파동은 새정치연합이 과연 ‘안정성’이 있는 정당인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 없음’으로 응답한 결과를 유효표로 할지 무효표로 할지를 놓고 문재인-박지원 후보 진영은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전대준비위의 경선 룰 유권해석은 무효라는 가처분신청까지 제기되는 등 계파 갈등이 송사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결국 상처뿐이 남지 않은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는 끝났지만 후유증이 심각할 조짐이다. 벌써부터 정가에선 ‘야권 발(發) 정계개편’ 괴담이 나돌고 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참여한 진보신당 추진체 ‘국민 모임’이 야권 재편의 핵이 될 것이란 시나리오도 있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인영 후보는 “당이 혁신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당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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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