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골프 발언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의 골프 발언 그 후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02-09 09:57
  • 승인 2015.02.09 09:57
  • 호수 1083
  • 1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프 활성화 방안 만들어 달라”에 곳곳 신경전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위원들과 만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수의 매체는 이 발언 직후 “골프 금지령이 해제됐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골프장을 소유한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가 하면 일부 수도권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올랐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무분별한 농약이 사용되는 곳이 골프장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골프장 건립 재시동…환경파괴 주범 지적 여전
관가 “당장은 눈치 보여”…뇌물·청탁 또 활개칠까


▲ <정대웅 기자>
당장 골프장을 소유한 기업들과 관가의 영향을 받아 주말골프를 자제해온 공기업, 공직자와 접점을 갖고 싶어했던 재계는 이 발언을 훈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관가 사람들과 골프회동을 하지 못했던 대외협력팀 직원들은 소통창구가 다시 하나 생겼다며 기뻐한다.

모 기업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공무원과 골프회동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며 “한동안 눈치가 보여 함께하지 못했는데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눈치 보지 않고 회동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일에 대해선 “관계개선 또는 사업적 공유다”라고 짧게 말했다.
과거 모 로비스트가 “술 접대는 몸과 정신이 힘들지만 골프접대는 많은 시간을 맑은 정신으로 할 수 있어 더 효율적이다”라고 말한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반면 환경단체는 이번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다. 
박 대통령 골프 활성화 발언을 규탄하며 김포공항 골프장 건설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5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골프 활성화 망언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박 대통령의 ‘골프 활성화’ 발언을 비판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발언과 관련해 “환경영향평가 기간 중 정부와 한국공항공사에 힘을 실어준 편파적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이세걸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김포공항 습지는 중국 발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법정보호종 30여종이 서식하는 소중한 우리의 생태계”라며 “골프장이 건설되면 우리의 소중한 생태계를 또 하나 잃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일각에선 “이 판국에 골프 활성화 논하는 뜬금 대통령”이라며 발언 자체를 황당해 하는 분위기도 형성된다.
한 시민은 “복지는 돈이 없다며 줄이고자 하면서 이런 마당에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뜬금없이 골프 활성화를 언급하고, 서민들에게는 증세를 강요하면서 골프 감세를 대놓고 내세우는 것은 배신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며 “부자감세 논란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고 흥분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프레지던츠컵이 뭐기에?

한편 박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배경에는 프레지던츠컵이 있었다.
프레지던츠컵은 유럽을 뺀 세계연합팀과 미국 대표팀이 2년마다 겨루는 골프 대항전이다.
대회당 평균 갤러리 수는 10만 명으로 추산되며 재계 거물들이 총출동하고 글로벌 기업들 간에 보이지 않는 홍보전도 불을 뿜는다.

팀당 12명씩 세계적인 골프스타들만 나오는 경기라 골프팬을 사로잡는 명승부가 나온다. 그런데 이 대회가 올해 10월에 열리고 그 장소가 바로 인천의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이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이기도 하고 박 대통령이 명예회장을 한국 골프의 자존심 최경주 선수가 세계연합팀의 수석 부단장을 맡고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단순히 나은 발언이 아님을 직잠케 한다.

다만 현 정부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골프금지령’을 공식적으로 내린 적은 없다.
하지만 2013년 6월 국무회의에서 이경재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소비 진작을 위해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한 건의에 박 대통령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 달 뒤 박 대통령이 수석들과 만나 자리에서 다른 인사가 “접대 골프가 아니면 휴일엔 골프를 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그런데, 바쁘셔서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이는 곧 공직자들에 대한 ‘골프 금지령’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청와대나 내각 인사들 사이에서 골프는 잊혀져야 할 운동이 돼버렸다.

그런데 1년 6개월이 지난 3일 박 대통령이 “공직자 골프 금지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그것도 박 대통령이 먼저 오는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2015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대통령은 “(골프) 활성화를 위해 좀 더 힘써 달라는 건의를 여러 번 받았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골프 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을 소관 부처인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받아 대화를 이어 나갔고 이 발언들이 알려지면서 골프 활성화 바람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변에선 관가 박대통령 의중 파악이 먼저 되어야 하고, 당장 골프장에 나서기엔 눈치가 보인다는 반응이 많다. 아직은 몸을 사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다. 차후 골프 활성화 발언이 과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알려진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