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 끝나자 모르쇠 돌변… 수년째 약속 안 지켰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지난 3일, 애경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수원역사에서 한 남성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그가 들고 있던 팻말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애경! 믿을 수 없는 애경! 신뢰받지 못하는 애경!”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요서울]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팻말을 들고 있던 남성은 자신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직원이라고 밝히면서 “애경그룹의 욕심 때문에 애꿎은 코레일 직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체 애경의 어떤 욕심이 그를 거리로 나오게 만든 것일까.
AK타운 조성 때 직원 후생시설 내주며 이전 건립 협의
애경그룹 “코레일측과 계약 진행…직원들 요구는 무리”
그의 첫 번째 주장은 애경그룹이 한국철도시설공단 부지를 임대해 호텔을 짓는 조건으로 체결한 계약 사항을 5년이 넘도록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구두 상으로 계약을 진행한 부분에 대해선 아예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서도 호텔 건립을 위해선 코레일 직원들이 사용하던 주요 체육시설 등을 이전해야만 했는데, 애경그룹이 시설을 없애고 아직도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실제 애경그룹은 지난달 18일 수원역 바로 옆 부지를 활용해 수원지역 첫 특1급호텔인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을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애경그룹은 한국철도시설공단 부지 5만8000여㎡를 30년간 장기 임대하기로 했다.
또 애경그룹은 당초 해당 부지에 조성돼 있던 야구연습장과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등 후생 복지 시설의 이전 건립을 약속했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남성은 해당 내용의 증거라면서 2009년에 작성된 수원역 시설 이전 관련 회의 결과 자료를 내밀었다.
그가 내민 회의 결과 자료에는 참석자 명단과 해당 내용이 표기돼 있다. 참석자는 애경CM본부 관계자들과 코레일 관계자들 다수가 포함돼 있다. 내용은 ‘120㎡규모의 사무실과 지붕이 있는 배드민턴 시설’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당시 애경그룹이 무조건 자신들만 믿으라고 말했다”면서 “특히 배드민턴장은 국제규격에 적합한 규모의 실내 경기장으로 건립하고 동호회 사무실도 마련해줄 것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애경그룹은 현재 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시설로 대체해주겠다고 한다”면서 “바람막이조차 천으로 허술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절대 배드민턴장으로 활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애경그룹의 태도가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시위 남성은 롯데그룹이 수원역 뒤편에 롯데몰을 건립하기 시작하자 애경그룹이 이를 견제하고 싶어서 하루라도 빨리 호텔 부지를 확보해야 했고 그때 날렸던 공수표가 이제 와서 아까워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구두 계약은 무효?
그는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면서 “당시에는 무조건 롯데보다 빨리 건물을 짓고 싶어서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다 지어놓고 나니까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부러 구두 계약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애경그룹이 당초 계약서가 필요없겠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줬고, 호텔 건축 허가를 받을 때 체육시설도 같이 허가 받아서 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면서 “그러나 허가는 고사하고 예산을 줄이려고만 한다. 계약서가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고개를 저었다.
결국 남성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호텔을 세워 롯데그룹을 견제하려 했던 애경그룹이 좋은 조건을 내걸어 코레일 직원들의 공간을 뺏은 뒤, 롯데그룹 견제 계획이 완성되자 나 몰라라 식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애경그룹은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당시 계약내용 대부분이 구두로 진행됐고 정확한 기록조차 없다”면서 “그들의 주장이 오히려 너무 지나친 격”이라고 반박했다.
1인 시위가 벌어지는 것에 대해선 “애경그룹이 코레일과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지 그쪽의 직원을 한 명씩 상대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애경그룹은 코레일이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을 들어주면 된다. 시위를 벌이는 극소수까지 신경 쓸 이유 역시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애경그룹의 수원역사는 그룹을 먹여 살리는 노른자면서 각종 논란의 근원지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롯데그룹이 백화점 등을 AK플라자 뒤편에 위치시키자 애경그룹이 AK몰과 호텔 등으로 맞불을 놓는 형식이다.
경기 남부 최대 상권을 두고 두 공룡그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롯데그룹이 쇼핑몰과 수원역사를 잇는 연결통로를 만들었지만 역사 건물의 점용권을 가진 애경그룹에서 안전을 이유로 불가 입장을 밝혀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더불어 이번 1인 시위 역시 부지를 놓고 일어난 일이라 일부에선 “애경그룹의 텃세 부리기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또 다른 일각은 “애경그룹 입장에선 그룹 내 상당 부분의 매출이 수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앞서 애경그룹은 2003년 AK플라자를 기점으로 수원역을 민자역사로 만들었다. 이후 이곳은 수원 지역 최대 상권이자 수원의 랜드마크로 성장했다. 2013년 연매출은 5000억 원을 상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과연 수원역을 기점으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싸움을 애경그룹이 어떻게 끝맺을 지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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