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허벅지, 가슴골 사이 ‘커닝페이퍼’가

‘지성의 전당’ 대학가가 부정행위를 양산하는 비양심 집합소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 약대생들이 기말고사 전공시험에서 속칭 ‘커닝(부정행위)’을 조직적으로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명문대, 비명문대를 막론하고 커닝이 일종의 관례로 굳어지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대학에서 커닝하는 법’ ‘들키지 않는 커닝 비법’이 공공연히 퍼져나가는가 하면 일부 사이트에는 친절하게도 예시 사진까지 보여주며 부정행위를 독려(?)하고 있다. 지식의 전당인 대학 강의실이 얕은 속임수로 얼룩진 이유는 뭘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나친 ‘경쟁’을 원인으로 꼽았다. 서울 소재 D대학 3학년 박모(24)씨는 “일명 ‘취업스펙’을 갖추려면 4점대 학점(만점 4.5)은 필수다”며 “영어공부에 인턴 경력 쌓는 것만으로도 바쁜 학생들이 암묵적으로 ‘부정행위’를 통해 쉽게 학점을 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실력보다 편법으로 성공하려는 세태를 젊은 학생들이 일찍부터 배운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무너졌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생회는 지난달 24일 “약대 2학년생 80여 명이 전공과목인 ‘물리약학’ 기말고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커닝이 의심되는 10명 정도의 학생을 조사한 결과 6∼7명이 부정행위를 했음을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전공, 교양 가리지 않는 ‘커닝 머신’
학생회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커닝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된 학생들은 서울대 자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라며 “실제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이 추가적으로 더 있는지 조사 중이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한 학생이 고발글을 쓴 것으로 시작됐다. 이 재학생은 “약대 학생들이 대놓고 커닝을 했다. 커닝한 것도 나쁜데 한술 더 떠 ‘좀 하면 어떠냐’는 반응을 보여 어이가 없다”고 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순식간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고 사태가 커지자 약대 측은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 학생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정행위는 이번 기말고사 전공과목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이들의 부정행위 수법은 ‘초딩(초등학생)’ 수준에 가까울 만큼 유치했다. 학생들은 답안작성에 필요한 내용들을 손바닥과 책상 등에 깨알 같이 적어두고 이를 시험시간에 몰래 훔쳐봤다.
이 정도 커닝은 그야말로 ‘귀여운 수준’이라는 게 대학생들의 반응이다.
지난달 기말고사를 치른 I대 2학년 최모(21·여)씨는 “책상이나 손바닥에 커닝페이퍼를 만드는 건 기본이다”며 “아예 투명 필름(OHP 필름)에 커닝페이퍼를 인쇄해 책상에 붙이거나 여학생들은 허벅지, 가슴 등에 커닝 쪽지를 넣어두고 훔쳐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안전한 커닝비법 공유해요”
인터넷 공간에는 대놓고 ‘안전한 커닝비법’을 공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포탈사이트에 관련 검색어만 입력하면 기상천외한 부정행위 수법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례로 ‘커닝페이퍼를 따로 준비하지 말고 온 몸을 노트로 이용하라’ ‘소매가 긴 헐렁한 옷을 입고 손바닥에 커닝페이퍼를 쓴 뒤 옷으로 감춰라’ ‘담뱃갑 위에 답안 내용을 적은 뒤 셔츠 앞주머니에 넣으면 감쪽같다’는 등의 비법(?)들이 공공연히 돌아다니고 있다.
또 다른 개인블로그에는 아예 예시사진까지 준비해놓고 학생들의 커닝을 부추기고 있다. 이 블로거는 커닝 준비부터 실행, 마무리까지 단계별로 진행 상황을 사진촬영까지 해 제공했다.
이에 따르면 커닝을 하기 전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먼저 0.3mm 굵기에 얇은 펜을 준비하고 작은 글씨로 커닝페이퍼를 만든다. 이렇게 작성한 커닝쪽지를 손바닥 크기로 잘라 두 장의 뒷면끼리 붙인 뒤 훔쳐본다.
커닝페이퍼를 보는 방법에도 주의사항이 있다. 손바닥에 감추었다가 필요할 때 은근 슬쩍 보기. 티셔츠 아랫단 안쪽에 숨겨두고 감독관이 방심할 때 참고하기. 의자 위에 붙여 놓고 앉은 자세에서 훔쳐보기 등을 권하고 있다.
특히 여학생일 경우 치마나 반바지 안단, 혹은 가슴 속에 커닝페이퍼 숨기면 감독관이 적발하기 어렵다는 팁도 빼놓지 않았다.
아예 휴대전화나 초소형 이어폰, 이어마이크(핸즈프리)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예도 있다. 먼저 시험을 보고 나간 학생이 남아있는 학생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답을 전송하는 것이다.
또 초소형 이어폰을 미리 끼고 시험장에 들어간 뒤 미리 시험을 마치고 나간 사람이 전화를 걸어 말로 설명하는 수법도 종종 사용된다. 단 조용한 강의실에 통화음이 울리지 않게 음량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한편 커닝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서울대 약대 해당과목 담당 김모(66)교수는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등에 목을 매는 일부 서울대 학생들의 피해의식이 이 같은 비극을 불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학기 이 과목을 수강한 한 여학생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커 우울증까지 호소해 결국 휴학하는 일도 있었다”며 “애들이 나빠서 부정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놈의 점수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