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자살사건 경찰 재수사 배경 의문증폭
故 장자연씨 자살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지목돼온 전 소속사 매니저 김모(40)씨가 마침내 경찰조사를 받게 됐다. 경기지방경찰청은 6월 24일 일본에 도피 중인 장씨 소속사 전 대표 김모씨가 오후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고 이날 밝혔다. 그동안 김씨는 경찰의 입국 종용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도피행각을 벌여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오후 5시30분께 일본 도쿄 도심 미나토(港)구의 한 호텔에서 지인을 만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해 있던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를 검거한 도쿄경시청 조직범죄대책2과는 조사를 마친 뒤 오후 6시40분께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불법체류)로 체포해 유치했다. 김씨는 여권이 무효화된 지 42일만에,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 83일만에 검거됐다. 이로써 사실상 종결됐던 장씨 수사가 재점화 국면을 맞게 됐다. 경찰은 김씨를 통해 장씨 자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의문점들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벌써부터 경찰 수사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 장씨가 고인이 됐기 때문에 김씨와 성접대 관련자들을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또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의 이번 수사는 분위기 전환용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따라서 경찰은 이번에도 수사 시늉만 하다 용두사미형으로 마무리 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장씨 사건을 수사 중인 분당경찰서는 4월 24일 일본에 잠적해 있던 김씨를 강요, 협박, 폭행, 횡령 등 혐의로 기소중지했다. 경찰은 당시 김씨에 대한 신병 확보가 늦어지자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리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일본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6월 26일 현재 경찰은 김씨가 체포됨에 따라 신병을 인도받기 위한 절차를 법무부를 통해 일본 당국과 협의 중이다.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신병을 넘겨받을 경우 길게는 두 달까지 걸려 강제추방 형식으로 김씨를 송환받는 쪽으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방이 아니라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으면 일본 법원이 김씨가 구속된 날로부터 2개월 이내에 인도심사에 관해 결정하고 인도명령을 내리면 다시 30일 안에 한국으로 송환된다.
강제추방 절차를 밟을 경우 질병이나 채권·채무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일주일이면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다. 김씨의 여권이 말소된 상태가 아니라면 김씨는 추방에 대한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김씨는 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없기 때문에 추방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 검거 배경에 의문증폭
김씨는 지난해 12월 2일 90일짜리 무비자 여권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태국에서 체류 기간을 연장해 3월 4일 일본으로 재입국했다. 그러나 경찰은 5월 14일 김씨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김씨는 이때부터 불법 체류자가 됐다. 여권이 무효화되지 않았다면 6월 1일이 김씨의 무비자 체류 기간 만료일이다.
김씨가 뒤늦게 검거되자 이를 놓고 여러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중 경찰이 김씨를 의도적으로 검거하지 않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잡아들여 이른바 ‘기획입국’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귀를 솔깃하게 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의 외국인 관리 시스템이다. 일본은 자국에 출입하는 모든 외국인들에 대해 지문날인을 한다. 이는 외국인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또 일본은 범죄자 검거율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만큼 외국인 범죄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일본 경찰이 외국인 범죄자 검거에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을 넘기는 일은 드물다.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여론에 따라 경찰의 수사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김씨가 검거되기에 앞서 6월 15일~ 20일 사이 TV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장씨 사건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했다. 장씨 자살 사건과 경찰 수사에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또 공교롭게도 6월 23일 故노무현 전 대통령 대한문 앞 분향소 강제철거 다음날 김씨가 검거됐다. 이에 일부에선 현 정권이 장씨 사건을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는 시국전환용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보기엔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억지”라는 입장이다. 노 전 대통령 분향소 철거와 김씨 검거를 연결하는 것은 ‘오버센스’라고 경찰은 강조했다.
그러나 일요서울은 김씨가 검거되기 이틀 전인 6월 23일 경찰이 김씨의 검거를 계획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은 국면전환을 위해 김씨의 입국을 추진하고 있으며,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김씨를 검거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경찰은 이미 오래전부터 김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씨의 입국 의사까지도 타진했다는 내용도 입수된 정보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 정보가 단순 분석에 의한 것인지 정확한 사실적 근거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 도피행각 누가 도왔나
김씨가 어떻게 일본에 장기 체류 할 수 있었나하는 점도 의문투성이다. 김씨는 일본에 특별한 연고가 없어 장기간 도피행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씨는 도피행각을 위해 일본에서도 한국의 지인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체류를 위해 한국의 지인으로부터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김씨를 도운 지인들은 누구였을까. 여기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김씨의 친인척과 친분이 두터운 주변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또 김씨가 제 3국도 아니고 일본에 장기체류한 점을 두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왜 체류비용이 비싸고 검거될 위험도 높은 일본에 고집스럽게 머물렀는가하는 점을 놓고 배후지원세력 존재설이 돌고 있다. 누군가 집중적으로 김씨를 돕지 않으면 김씨의 일본 도피행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엔화의 환율이 초강세인데다 김씨가 도피당시 현금을 충분하게 갖고 나가지 않았다는 점 등은 배후지원세력 존재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구나 김씨는 인터폴의 추적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 거래나 신용카드사용도 일체 불가능한 상태였다. 오직 인편으로 돈을 전달하는 것만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현재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있는 인사들 중 일부가 김씨의 도피를 도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도 나온다. 대형 기획사 관계자 K씨와 A방송사 관계자 L씨, B은행 관계자 등이 유력하게 꼽히는 인물이다. 일요서울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김씨는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지인의 도움도 받았다고 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강남의 R유흥주점 관계자가 일본에 연고가 있어 김씨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R룸살롱의 침묵으로 사실 확인은 할 수 없었다.
경찰 내부에 김씨 인맥 존재
이와 함께 경찰이 김씨에 대한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을 두고 김씨의 인맥이 경찰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김씨는 평소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면서 경찰 고위 인사가 자신과 친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에게서 이런 말을 직접 들었다는 모 기획사 관계자는 “김씨가 각계각층에 자신의 인맥이 퍼져있다는 것을 주변에 자랑하곤 했다”며 “경찰의 몇몇 고위인사가 자신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의 고위 인사들도 자신과 친분이 있다고 자랑했는데, 실제로 그는 발이 넓었기 때문에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 김씨가 실제로 그렇다면 김씨 관련 경찰수사에 고위인사의 압력이 개입됐을 수도 있다. 경찰은 장씨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성의 없는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선 경찰이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사건을 고의로 은폐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며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태도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일관됐다. 이 때문에 심지어 ‘경찰 김씨 못 잡는 것인가 안 잡는 것인가’라며 비꼬는 언론도 있었다. 경찰이 장씨 관련 수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을 때는 ‘경찰이 김씨의 비호세력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김씨에 대한 검거가 고의로 미뤄진 것이라면, 또 그것이 김씨 인맥의 막강한 파위 때문이라면 장씨 자살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현재 사건 관련 입건자 9명과 내사중지자 4명 등 13명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미 내사종결됐거나 불기소 처분한 수사 대상자들도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혐의점이 드러나면 조사 대상에 다시 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경찰은 4월 24일 수사결과를 중간 정리하면서 수사 대상자 20명 중 연예기획사 관계자 3명, 감독 2명, 금융인 3명, 기업인 1명 등 9명을 접대 강요,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나 경찰이 발표한 13명 외에 실제 수사 대상자는 30명이 넘을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중 상당수가 회사 운영자금을 지원한 투자자이거나 기업 방송 관계자라고 한다. 김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유명 병원의사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요서울이 확인한 결과 경찰은 이 의사에 대해서는 따로 수사를 하지 않고 얼버무린 것으로 밝혀졌다. 왜 해당 의사를 자세히 조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경찰은 속 시원한 답을 하지 않았다.
검찰 사건에 한발 물러서
한편 검찰은 장씨 자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결론내리고 경찰의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김씨의 자백을 통해 사건의 새로운 내용이 추가돼 다수의 고위인사로 확대되면 경우에 따라 검찰이 사건을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장씨 사건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장씨 사건에 대해 “검찰은 이 사건 자체를 비중 있게 보지 않고 있다.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라며 “형사법상 처벌을 위한 가해조건이 성립되려면 피해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자와 죄목이 딱히 없는 그런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처벌이 된다면 김씨 개인의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과 성 매수자들에 대한 처벌정도가 있겠지만 성 매수자들의 경우 사법적 처벌은 미미하고 사회적 비난이 오히려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의 말을 비추어보면 장씨에 대한 경찰 조사는 떠들썩하기만 할 뿐 숱한 의문만을 남긴 채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관련자들의 처벌도 형식적인 선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작심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는 이상 장씨 자살 사건은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전망이다.
#경찰 브리핑 주요 일문일답
경찰이 고 장자연 전 소속사 대표 김모(40)씨 검거와 관련, 향후 수사방향을 밝혔다.
분당경찰서는 6월 25일 오전 브리핑을 갖고 "객관적 진술및 기초수사자료 통해 김 대표 범죄 혐의 입증, 내사중지, 내사종결자 등에 대해 수사를 재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이날 브리핑에서 중요 질문에 대해 직답을 회피하는 것으로 일관, 짜증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음은 한풍현 분당경찰서장 총경과의 일문일답 중 일부다.
- 내사 중지자들도 다시 수사대상이 되나?
▲내사종결자기 때문에 수사를 하지 않는게 아니라 김씨의 진술을 통해 그 사람도 범죄행위가 있다면 수사 대상이 되고 수사가 진행된다.
- '장자연리스트' 아닌 '김○○리스트'로 확대수사 여부는?
▲그 부분도 일단 수사 계획은 있다. 현재 경찰이 알고 있는 단계에선 이미 발표되고 조사된 상황이다. 그러나 어떤 것도 수사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
- 김씨 체포당시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확인되지 않고 있다.
- 김씨가 그간 어떤 사람들과 접촉을 해 왔나.
▲여러 자료를 토대로 확인해야한다.
- 김씨의 진술 여하에 따라 삼자대면, 양자대면 가능한가.
▲내사 중지자의 경우 범죄혐의는 있지만 입증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김씨 소환에 따라 수사 재개 방침이다.
- 김씨를 더 빨리 체포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 잡은건 국면 전환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경찰은 수사만 할 뿐이다.
- 일본에서의 김씨 행적을 확인할 수 있나
▲아직까진 확인이 안됐다. 일본전담반과 우리 쪽이 서로 필요한 정보를 첩보하고 공유하는데 외교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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