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시아버지 기분도 못 맞춰줘!”
광주광역시 소속 현직 부구청장(3급 부이사관)이 며느리를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알려져 구설수에 휘말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배기열 부장판사)은 주모(57)씨에게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치료강의 40시간을 선고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주씨는 ‘억울하다’며 지난 1일 곧장 고등법원에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당초 문제의 공무원이 ‘아는 여성을 성추행해 처벌을 받았다’고만 밝혔다가 피해 여성이 가해자의 며느리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는 최근 소속 공무원들이 금품수수와 불법향응 제공 혐의로 줄줄이 문제를 일으키는 터라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아버님 왜 이러세요!”
주씨는 지난 2007년 세 차례에 걸쳐 노래방과 공원 벤치 등에서 며느리 A씨(24)를 성추행했다. 피해자 A씨의 진술에 따르면 주씨의 못된 ‘손버릇’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7년 5월. 서울 동소문동의 한 노래방에서 갓 결혼한 아들 부부와 함께 어울린 주씨는 술에 취한 채 며느리를 끌어안고 속칭 ‘부비부비’(서로의 몸을 밀착한 채 문지르는 행동)를 시도했다.
화들짝 놀란 A씨는 ‘그만 하시라’며 몸을 뺐지만 주씨는 오히려 “분위기도 좋은데 며느리가 돼서 시아버지 기분하나 못 맞춰주느냐”며 역정을 냈다는 것. A씨는 “내가 그런 일을 당하는 동안 남편은 말리지도 않았다”며 억울해했다는 후문이다.
2개월 뒤인 2007년 7월, A씨는 주씨와 공원 산책을 나갔다가 또 다시 봉변을 당했다. A씨에 따르면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주씨가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고 “뽀뽀나 하자”며 달려들었다는 것. A씨는 또 “(시아버지가)입맞춤만 시도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몸을 더듬기도 했다”며 주씨를 맹공격했다.
같은 해 9월에도 A씨는 시아버지의 ‘지저분한 술버릇’에 치를 떨었다. 전남 여수의 한 노래방에서 또 다시 ‘노래방 도우미’와 같은 취급을 당한 것이다. A씨는 이날도 시아버지가 자신을 강제로 끌어안는 등 신체접촉을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이 자리에는 A씨의 남편과 친구들까지 합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법정에서 “인상을 쓰고 몸을 빼면서 ‘이러지 마시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건방지다’는 식의 호통뿐이었다”며 “나를 마치 노래방 도우미로 생각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주장했다.
며느리 A씨 터무니없는 위자료 요구?
A씨가 정식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힌 건 지난해 4월. 무려 1년 가까이 A씨는 시아버지의 만행에 이렇다할 맞대응을 하지 않았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굴욕을 당했음에도 피해자 A씨는 어째서 지금껏 참았던 걸까.
문제는 결국 돈이었다. 둘 다 학생 신분으로 경제적 능력이 없는 A씨 부부는 시부모의 경제적 원조 없이는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었던 것. 여기에 A씨는 시아버지 주씨로부터 ‘조마간 너희 부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A씨는 법원에서 “시부모님이 경제권을 모두 가진 상태여서 당시에는 쉽사리 문제 삼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지난 4월 남편과 혼수 문제로 크게 다툰 A씨는 짐을 싸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고 결국 이혼을 결심하면서 주씨의 만행이 드러난 것이다.
‘부실한 혼수’ 운운하는 남편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져버린 A씨는 시아버지 주씨가 저지른 성추행 사실을 언급하며 이혼을 요구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전적 부분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A씨의 남편은 합의이혼 대신 소송을 제기했고 A씨는 시아버지 주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주씨는 재판 내내 “며느리가 돈을 노리고 나를 모함했다. 성추행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주씨의 해명보다 A씨의 딱한 사정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관된 진술을 해 온 A씨가 정말 주씨를 모함하는 것이라면 남편과 친구들까지 함께 있었던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A씨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보는 것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뇌물에 불법향응, 성추행까지…’ 답답한 광주시
한편 광주시가 주씨 사건과 관련, 피해자 A씨 신원을 ‘주씨가 평소 알던 여성’이라고만 밝힌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광주시가 최근 소속 공무원들의 잇단 일탈행위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주씨 외에도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된 광주시 소속 공무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광주지방 검찰청 특수부는 지난 8일 용역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7급 공무원 김모(39)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대표로부터 시청 홈페이지 유지보수사업권 수주와 관련해 모두 8차례에 걸쳐 700여만원 상당의 뇌물과 향응을 받는 등 관련 업체로부터 총 2500여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1일에는 광주소방학교 공무원 고모(36·8급소방교)씨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위탁교육비 1억4300만원을 횡령하고 3100만원을 유용한 사실이 밝혀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또 지난해 2월과 11월에는 복지법인 인허가 대가로 부적절한 향응을 받은 광주시 노인복지과 5급 직원 2명이 연달아 검찰에 적발되는 등 불미스런 사건이 줄줄이 터져 광주시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