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조폭 심상치 않은 움직임 조폭천하 부활 신호
영남권 조폭 심상치 않은 움직임 조폭천하 부활 신호
  • 윤지환 기자
  • 입력 2009-06-16 09:31
  • 승인 2009.06.16 09:31
  • 호수 790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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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 조폭 김모씨 “검찰 내 조폭 장학생 이렇게 만들어진다”

조폭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영남지역 조폭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초대형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조폭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오라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 폭력조직의 불법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표면적으로 볼 땐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 합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국책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지금의 조폭은 예전과 달리 힘과 무기를 앞세운 ‘일자무식(一字無識)’이 아니란 얘기다. 따라서 이들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해선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조폭 단속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권력과의 결탁 때문이다. 한때 정치권과 다소 소원해졌던 조폭들이지만 국민의 정부 때부터 다시 정치권에 줄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과거 검찰 내 삼성그룹을 비호하는 세력인 이른바 삼성장학생처럼 조폭 장학생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전국구’를 표방하며 세력을 키워온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폭력배들은 건물 철거분쟁에 개입, 돈을 뜯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형사과는 지난 7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폭력조직 ‘이태원파’ 부두목 김모씨(32) 등 13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손모씨(24)등 7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태원 일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두 패로 나뉘어 활동해오다 지난해 1월 중순께 오모씨(52·미검)를 두목으로 하는 통합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 조직은 2∼4년간의 조폭 교육을 통과한 사람만 정식 조직원으로 받아들였다. 또 조직 가입 조건은 ‘각종 격투기와 운동으로 다져진 신체와 175cm 이상의 키, 잘 생긴 외모’ 등이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 학력까지 곁들여진다면 조직 입성은 더욱 쉬워진다. 이는 조폭들의 달라진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조폭지도가 변하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참여정부 때까지 호남조폭이 수도권지역을 비롯해 충청호남권을 장악했다.

영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대부분이 호남조폭의 활동무대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말기부터 호남조폭의 영향력은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경기침체와 오락실 단속으로 자금이 묶인 조폭들은 닥치는 대로 여러 사업의 이권에 개입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결국 꼬리가 밟힌 조폭들은 줄줄이 구속됐고 조직은 와해됐다. 참여정부 당시 구속된 조폭들을 보면 노태우 정부 당시 ‘범죄와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때 인터넷에는 경찰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조폭 지도가 유포돼 세간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잠 깬 거인 영남권 조폭

호남 조폭들의 세력이 약해진 반면 영남조폭들의 세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산지방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영남권 조폭은 최근 들어 세력이 강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국내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호남 조폭은 수도권으로 상경해 업소위주의 사업을 한 반면 영남지역 조폭은 중국·일본의 조직과 연계해 꾸준히 사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영남지역 조폭들이 벌이는 국제사업의 대표적인 예가 항만 창고와 수산업이다.

영남지역 항만의 물류사업은 조폭의 영역이다. 부산지역 일부 항만노조가 조폭과 연결돼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일본 등과 거래되는 수산업도 이 지역 조폭의 대표적 사업이다.

영남지역은 대도시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 각종 수익사업만 해도 그 이권이 상상을 초월한다.

진해 일대의 오락실 사업을 담당하는 중간 보스급 인사가 수백억 원대 재산가로 알려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의 상부에 앉아있는 원로들은 어느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울 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영남 조폭에 대해 “그들은 그동안 서울로 진출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진출하지 않은 것”이라며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선 영남지역이 사업하기에 훨씬 쉬울 뿐 아니라 시장도 크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영남 조폭들 입장에선 별로 매력 없는 지역이다”고 말했다. 서울로 올라오더라도 기껏해야 술집 관리나 재개발지역 정리가 이권사업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영남권 중에서도 부산지역 조폭들의 움직임이 제일 활발하다.

부산에는 폭력조직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 조직다운 조직의 수는 적다.

가장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조직은 칠성파다. 부산뿐 아니라 영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직의 대부분이 칠성파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칠성파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말하자면 영남조폭의 핵이다.

일부에선 칠성파가 이미 와해된 조직이며 지금의 칠성파는 과거 칠성파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칠성파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 증거가 조폭의 살아있는 전설로 알려진 이강환(67)씨다.

2007년 4월 14일 오후 5시 부산 부산진구 롯데호텔에서 이씨의 아들 A(37)씨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날 결혼식장 주변은 대규모 집회현장을 방불케 했다.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조폭 하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기에 경찰까지 가세해 혼잡을 더했다.

부산경찰청은 당일 광역수사대와 관할 부산진경찰서 11개팀 등 형사 100여명을 행사장 곳곳에 배치했고, 지원병력 2개 중대를 호텔 주변에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주요 언론은 이 일을 대서특필하며 칠성파의 건재함을 암시했다.


서울 심장부 영남 조폭이 점령

현재 조폭계는 칠성파가 전국구를 통합하고 있는 분위기다.

영남조폭의 동향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구정권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던 영남조폭이 서서히 국내 이권사업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며 “서울지역의 경제는 사실 영남 조폭이 접수한지 오래다. 유흥업소 등의 작은 이권은 호남에 양보하고 큰 사업은 대부분 영남이 챙겨왔다. 사채시장의 자금도 상당부분이 영남조폭의 돈”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일본자본과 중국자본이 투입된 부동산 사업은 십중팔구 영남 조폭들이 개입된 사업이라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또 다양한 국책사업에도 관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폭들은 전문 경영인까지 영입해 합법적인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위법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면서도 카지노 사업에 대해 입을 열었다.

소식통은 “부산지역 카지노 사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운을 땐 뒤 “○○카지노에 일본 야쿠자와 중국 삼합회 그리고 부산 조폭들이 ○○카지노 운영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카지노 민간 위탁운영계획을 놓고 거액의 로비자금이 오갔으며 카지노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조직 간에 이해관계가 뒤엉켜 부산조폭과 일본 야쿠자의 신뢰관계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사건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위탁운영계획을 발표한 정부 기관에선 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은 위탁운영계획자체를 철회하려했지만 부산조직이 이미 사용된 로비자금 등을 문제 삼고 있어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카지노에 확인해 봤다. 카지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현재로선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며 “외부에 위탁운영을 하는 것 자체가 많은 모순점이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조폭이 사업에 개입하려는 정황에 대해선 “전혀 사실 무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카지노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국가에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조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력층에 빨대 꽃은 조폭

그러나 카지노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카지노측의 이런 설명에 코웃음 쳤다.

G카지노의 한 관계자는 “내가 알기로 그쪽(○○카지노)에 사업권을 둘러싸고 마찰이 있는 게 맞다”며 “이 업계에서 지금 결과가 어떻게 될지 주목하고 있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 땐다면 웃음만 나올 일이다”라고 말했다.

B카지노의 관계자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카지노 문제로 야쿠자들이 우리쪽(부산조폭)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초 이 사업자체가 일본 쪽과 같이 하기로 돼 있었는데 우리 쪽에서 중국 삼합회와 손잡는 바람에 문제가 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조폭의 이런 움직임을 검찰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조폭의 움직임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주시해오고 있었으나 눈에 띄는 갈취, 사기 등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잔당들 외에 상부층은 형사처벌이 쉽지 않아 궁리만 하고 있는 입장”이라며 “오락실 자금과 사채 자금 등으로 경제력을 갖춘 조직들은 정치권 등 권력층과 밀월관계를 갖기 때문에 단속이 사실상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칠성파 같은 거대 조직의 경우 검찰 내에도 비호세력이 있는 것으로 안다. 말하자면 조폭장학생인데, 부산지역 역시 조폭에 포섭된 검찰 경찰이 있다고 들었다. 물론 극소수라고 믿고 싶지만 그 실체를 누가 알겠나. 서울에도 조폭보스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판·검사들이 있다”고 씁쓸해 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고향, 출신학교, 지인소개 등을 통해 법조인과 정치인들에 접근한 뒤 후원금 명목으로 매달 150만원~ 400만원씩 수년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권력층을 포섭한다.

또 검찰이나 판사의 경우 퇴직을 책임진다. 예컨대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주거나 조직이 운영하는 회사의 변호사로 고용한다. 생활비 지원에 퇴직 후까지 챙겨주니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유혹이다.

한편 조폭들은 사업형태 뿐 아니라 조직원들에 대한 변화도 모색하고 있다.

지난 7일 경찰에 적발된 이태원파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 조직의 가입 조건은 ‘각종 격투기와 운동으로 다져진 신체와 175cm 이상의 키, 잘 생긴 외모’ 등이 적용됐다.

얼굴에 흉기 상처가 있거나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생김새일 경우 일단 불합격 대상이었다. 예전과 비교해 사정이 180도 바뀐 것이다.

또 학력 높고 잘 생긴 것 뿐 아니라 신입사원이 인턴기간을 거치듯 ‘숙소 대기’ 명목으로 2~4년 정도의 수습기간을 지내게 했다.

이 밖에 행동강령에는 ‘동네에서 술 먹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일반인과 시비가 붙으면 품위가 손상된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조폭도 이제 품위를 중요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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