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를 긍정으로 바꾸는 힘 슈틸리케 마법 진면목
우려를 긍정으로 바꾸는 힘 슈틸리케 마법 진면목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5-02-02 13:05
  • 승인 2015.02.02 13:05
  • 호수 1083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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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유독 아시안컵에 인연이 없는 한국이지만 유독 2015 호주 아시안컵의 축구대표팀에 대해 축구계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부임한 지 5개월도 채 안 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우세했다. 더욱이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이후 축구대표팀은 기량 면에서도 후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묘수를 총동원하며 한국을 결승전까지 올리는 성과를 이뤄냈다. 더욱이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면서 좋은 경기보다는 우승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선수발탁과 동기부여, 소통 이끌어낸 묘수로 대표팀 훈풍
아시안컵 결승진출로 감독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 해소


한국대표팀은 지난 26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4강전에서 이라크를 2-0으로 통쾌하게 무찌르고 결승전에 먼저 안착했다. 31일 같은 경기장에서 호주를 상대로 결승전을 치른 가운데 슈틸리케 호는 결승전 결과에 상관없이 ‘성공’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특히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한 지 4개월 만에 자신의 축구철학에 따라 대표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실천했으며 브라질 월드컵 후유증으로 중심을 잃었던 축구대표팀을 하나의 팀으로 다시 묶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아시안컵의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슈틸리케 감독의 파격행보는 도박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고 결과는 대성공에 이르면서 그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말끔히 씻어냈다.

슈틸리케 감독의 묘수는 곳곳에서 등장한다. 우선 선수발탁에서 탁월한 면모를 갖췄다. 최종엔트리를 놓고 박주영카드를 과감히 버리며 뽑은 이정협(상주 상무)은 이번 대회의 대표주자로 변모했다.

이정협은 이번 발탁이 있기 전까지는 국가대표 후보군으로도 거론되지 않았던 무명의 선수다. 또 연령별 대표에 단 한 번도 발탁되지 못했을 정도로 그간 감독들에게 관심 밖의 선수였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K리그 속에서 숨은 진주를 발견해 축구대표팀의 대들보로 변신시켰다.

슈틸리케 감독의 안목만큼이나 이정협의 활약은 대단했다. 사우디와의 평가전을 필두로 아시안컵에서 4강전까지 모두 2골을 넣으며 A매치 무대를 호령했다.

선수 발탁 능력
히딩크 중첩

이는 발탁 당시 거론됐던 거품이 아닌 준비된 황태자임을 입증한 셈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박지성을 거론하며 슈틸리케 감독을 거스 히딩크 감독에 비교하기도 한다. 한국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박지성은 스무 살 때만 하더라도 프로지명도 받지 못하는 철저한 무명에 불과했다. 이후 그는 올림픽팀 연습경기에서 당시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에 승선했고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거듭나 인생역전을 이뤄냈다.

박지성과 이정협의 공통점은 인생역전의 주인공이기에 앞서 음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무명선수 출신으로 묵묵히 자신을 갈고 닦아온 준비된 선수라는 점이다. 이들의 노력은 결국 명장들을 만나면서 진면목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가치를 알아본 감독들의 선구안은 축구대표팀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을 통해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특히 강조했다. 일명 슈틸리케의 법칙이라고 거론될 정도로 기자회견이나 훈련장에 함께 나온 선수들이 해당경기에서 맹활약하는 이변을 낳았다.

또 그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높여주면서도 질책이 필요할 땐 따끔한 말도 아끼지 않았다. 조별예선 쿠웨이트전 출전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은 우승 후보가 아니다”고 말해 선수들을 자극했다. 이후 이라크와의 4강전 이후에도 “우승해도 한국 축구는 더 노력해야 한다”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 같은 따끔한 질책뿐만 아니라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과 적극적인 소통과 대화를 통해 선수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대응하며 적절한 때에 투입하는 묘수를 선보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오만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최대 격전지로 꼽히던 최전방과 골키퍼로 각각 조영철(카타르 SC)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을 선택해 큰 효과를 봤다. 또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서는 남태희(레크위야 SC) 카드를 사용해 헤딩 결승골을 이끌어 냈으며 호주와의 조 1위 결정전에는 이정협으로 신의 한 수를 뒀다.

토너먼트 이후에도 슈틸리케 감독의 묘수는 이어졌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는 선발이 아닌 교체 카드로 승부수를 띄웠다. 조커로 투입된 차두리(FC서울)는 상대의 측면을 허물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는 한교원(전북 현대)을 깜짝 선발로 내세워 상대의 측면을 괴롭혔다. 또 다시 선발 기회를 얻은 이정협도 이날 결승골을 터뜨리며 상대팀의 허를 찔렀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전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함께 나누면서 동기부여와 동시에 친밀감을 극대화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와 소통을 이루자 자연스레 축구대표팀은 아시안컵 초반의 불안감이 끈끈한 유대감으로 바뀌면서 아시안컵 이후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형 늪축구
무실점 원동력

더욱이 이번 아시안컵에서 선보인 한국형 늪축구는 무실점 행진의 원동력으로 평가 받는다.

늪축구란 상대팀을 한국 플레이의 영향을 받게 해 같이 늪으로 빠지게 한다는 의미를 말한다.

실제 조별리그에서 호주는 한국의 늪축구에 된통 당했다. 호주는 조별리그부터 폭발적인 득점을 기록하며 조 1위를 노리고 있었다. 쿠웨이트를 상대로 4골을, 오만전에서도 4골을 쏟아 부으며 득점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한국과의 조별리그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아시안컵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구상한 로드맵에 따라 대표팀과 한국 축구의 변모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그간의 불안한 모습들 떨쳐내면서 긍정으로 바꿔가는 여정은 축구팬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 이 같은 훈풍은 오랜만에 축구대표팀에 불면서 앞으로의 상승세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이 펼쳐낼 마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을 통해 다양한 별명을 얻었다. 축구팬들은 예선 3경기에서 3골로 3승을 따내자 ‘다산’ 슈틸리케 감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의 호를 딴 것으로 아슬아슬한 숭부지만 승리를 따내 실속을 챙기는 축구를 실학에 연결시켰다. 이후 ‘다산왕’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정협, 김진현 등 대표팀에 새로운 선수들을 등용해 성공시킨 절묘한 인재 발굴을 이른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결승직전까지 5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오면서 상대팀을 허우적대게 만드는 ‘늪축구’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대표팀 수장으로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낸 슈틸리케 감독의 위대함에 ‘갓틸리케(신과 같은 슈틸리케)’라는 말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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