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선거캠프 사람들 측근 영입
‘오세훈 정책’ 폐기 발표하고 슬그머니 살리기도
지난 연말 박 시장의 리더십에 흠집을 준 일이 발생했다. 박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성(性) 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둘러싼 갈등으로 좌초된 일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이 인권헌장 선포를 무산시키자 “차기 대권 행보를 위한 정략적 판단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일은 기독계를 비롯한 보수층의 반발을 감안한 측면이 있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비상식적인’ 일들은 박 시장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시정을 보살피는 데 주력하지 않고,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최근 사례는 박 시장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서울시향의 평양공연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지난 연말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와 정명훈 예술감독이 충돌했을 때 박 시장은 정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사직하면서 “평양공연과 문화계의 표가 필요한 박 시장은 해명 기회나 사실 확인 절차 없이 나보고 11월까지 나가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파문이 일어났음에도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 감독과 1년 재계약을 끝냈다. 여기에 ‘박원순 대권플랜’의 일단이 숨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시장이 서울시향의 평양공연을 어떻게든 성사시켜 대권가도에서 ‘문화 대통령’ ‘통일 대통령’ 이미지를 확보하려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정 감독은 지난 2011년 9월 평양을 방문해 남북 합동 교향악단의 연주를 정례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박 시장은 2012년 신년사를 통해 서울시향의 평양공연을 경평(서울과 평양 간) 축구의 부활과 함께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시는 2013년 8월 북한에 평양공연 제안서를 보내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평양공연은 전반적인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정 감독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 감독은 이밖에도 막내아들 피아노 교사의 서울시향 특혜 채용 의혹, 아들과 며느리의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 사용 등이 문제가 됐지만 적절한 조치를 받지 않고 있다.
박 시장 주변에선 다른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서울시에 시민사회단체 출신이나 선거 캠프 사람들을 대거 포진시켜 ‘코드 인사’ ‘보은 인사’라는 논란을 일으키던 차에 그런 인사 행태가 감사원의 지적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박 시장의 측근인 김원이 서울시 정무수석이 5급 별정직 신분임에도 고위공무원인 1급에 준하는 특별대우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박원순 저격 특위’ 가동
보다 못한 새누리당에서 박 시장의 인사 전횡을 파헤치겠다며 당내에 ‘박원순 인사검증 특위’를 설치했다. 정가에선 이를 ‘박원순 저격 특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위는 서울시에 오래 근무했고, 지금은 ‘박원순 저격수’를 자임하는 이노근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이노근 의원은 “박 시장은 인사농단, 예산농단, 정책농단을 일삼고 있다”며 “모든 농단의 지향점엔 대권 플랜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사문제에 대해 이 의원은 “서울시 인사는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의 종합판”이라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인사전횡의 대표적인 사례론 18곳의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기관장 중 7곳의 기관장 및 본부장이 박 시장 당선에 기여한 보은 인사라는 점을 꼽았다.
박 시장이 전임자인 오세훈 시장 시절의 정책을 모두 폐기하는 듯 발표해 놓고 실제로 좋은 사업은 제목만 바꿔 자신의 정책으로 바꿔놓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이노근 의원이 말한 ‘정책농단’이 되는 셈이다.
오 전 시장 측에 따르면 원지동 추모공원의 경우 오 시장 시절 주민을 설득해 착공한 것을 박 시장이 취임 이후 마치 민주당이 한 것처럼 재포장 했다고 한다. 또 ‘서울대표도서관’을 ‘서울도서관’으로 작명만 살짝 바꾼 사례도 있고, 경전철 사업의 경우 취임 후 폐기했다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살려냈다.
장기전세주택은 일부 콘텐츠만 바꿔 장기안심주택이란 자신의 브랜드화로 만들었고, 한강 르네상스 사업도 똑같은 개념인데 재탕했으며, 세빛섬은 세금낭비 사례로 비난했으나 명소로 부각되니 재개장했다. 서울성곽 복원 사업, 서울둘레길 사업도 마찬가지라는 게 오 전 시장 측 주장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경우 박 시장 취임 직후인 2012년 DDP 예산 1천300억원 전액을 삭감했다가 2014년 3월엔 “DDP는 오세훈 전 시장과 나의 합작품”이라고 했다.
서울시 감사관 부인 구설
박 시장은 현재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과 1, 2위를 다투고 있다. 하지만 박 시장의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아 보였다. 특히 서울시정을 사유화하거나 대권가도의 도구로 삼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다. 한 취재원은 “서울시의 모든 사업, 예산이 시장의 대권 보급부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그동안 제기됐던 문제들도 적지 않다.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 등의 서울시립대 교수 임용으로 불거진 ‘시립대 사유화’ 논란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감사관의 부인이 서울시의 친환경급식 사업에 관여한다는 의혹도 나왔다. 무상급식·무상보육 논쟁에 불이 붙은 지금도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원순 시장에 대해 “시장 공관을 북촌으로 옮기는 건 대권 행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황 평론가의 말이다.
“박원순 시장은 참 영리한 사람이다. 본인의 입으로 대권을 말한 적이 없다. 그가 대권에 대한 언급을 피할수록 세간은 그의 대권행보를 기정사실화한다. 때로는 얄밉게 느껴진다. 시장 공관을 북촌마을로 옮기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초 2억8000만 원을 28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려 이사하는 것 자체가 주목거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논현동 사저를 두고 굳이 북촌마을에 잠저(潛邸-임금이 등극하기 전 머물던 사저)를 정했다. 박 시장도 그런 전후 사정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북촌으로 간다. 결국 그는 행동으로 대권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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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