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 국정감사 정보 사정기관 I.O보다 빨라
당시 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삼성전자 사장의 증인출석을 요구했을 때였다.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휴대폰 단말기 가격문제 등을 따지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자료분석을 통해 단말기의 국내와 해외 출고가 차이, 부품원가와 폭리여부 등을 제기해 놓은 상태였다. 드러난 수치만으로도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트릴 만 했다. 단말기 제조사 사장을 국회에 출석시켜 경위를 듣는 게 필요했다. 출석한 증인에게 휴대폰 가격실태와 유통구조 등을 따지고 개선책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상임위에서도 국정감사 계획서가 거의 채택되었다.
삼성전자 사장 증인출석하자 휴대폰 벨이
하지만 난데없이 삼성그룹 A임원으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뜻밖이었다. 삼성전자 임원도 아니었다. 삼성그룹의 타계열사 소속의 임원이었다. 미래전략실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증인신청을 한 사유와 경위 등을 캐 물어왔다. 삼성그룹의 정보파악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증인을 신청하자마자 귀신같이 파악한 것이다. 나름 정보수집 루트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임원은 황당했다. 친분도 거의 없는 사이라서 못마땅했다. 의례적인 전화려니 생각했으나 꼬치꼬치 물으며 국회 동향을 파악하려 했다. 어이가 없었다. 곧장 버럭 화를 내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왜 이런 전화를 하느냐고 따졌고, 매너가 아니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물러설 삼성그룹이 아니었다. 곧바로 몇 군데서 전화가 더 걸려왔다. 삼성그룹은 집요했다.
그렇다고 양해할 필자가 아니었다. 의원실에서는 결코 봐 줄수 없다고 버텼지만, 결국은 증인요청 명단이 변경되었다. 의원실 설득이 안되니까 여·야를 설득했는지 최종적으로 국정감사 증인이 부사장급으로 낮춰졌다. 허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삼성그룹의 대관업무에선 이런 정도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최초에 전화를 걸어온 그 임원과는 아주 오래전에 안면 정도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삼성그룹이 국회를 도대체 어떻게 보는지 화가 났다. 전화를 걸어온 그 임원과의 인연은 십수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가 재정경제위원회 의정활동을 보좌했을 당시 삼성 계열사 소속의 30대 중반의 과장급으로 국회를 드나들던 실무자였다. 그 시절 간간히 의원실로 찾아오곤 했던 인사였다. 이후 구조조정본부 소속으로 파견된 것으로 기억된다.
십수년된 임원이 연락 인맥관리 뛰어나
당시 삼성생명 소속 B과장도 의원회관을 수시로 돌아다녔다. 지금은 A씨와 B씨 모두 임원으로 승진했다. 삼성그룹에서도 주요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 쌓은 인맥과 터득한 정보수집과 대관업무의 노하우 때문일 듯하다. 당시 필자가 정책질의서를 쓰고 있으면 심컴퓨터 모니터 화면까지도 보려고 까지 했다. 삼성그룹과 관련해 질의서를 쓰는지, 내용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다닐 정도였다.
십수년전에 여의도 주변에서 대관업무를 하던 그들이 삼성그룹의 임원이 된 것이다. 지금도 전략기획, 경영지원, 대관업무 등을 하는지 간혹 눈에 띈다. 하위직으로 정보맨 역할하더니 임원에 오른 것이다. ‘별’을 단다고 표현할 정도로 어렵다는 삼성그룹 임원까지 오른 것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삼성그룹의 대관업무는 변하지 않는다. 더 치밀하게 변했다. 인원도 늘어난 것 같다.
삼성그룹은 계열사와 관련된 사안이 생기면 연줄도 동원하는 듯하다. 개인인맥까지도 파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에도 삼성그룹 계열사의 과장급 직원들이 의원회관을 들락거리며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모아진 정보들은 구조조정본부에 수시로 보고했다. 실무선에서 대응이 안되면 막강하던 삼성 비서실 소속이나 해당 부서의 임원, 구조본 임원들이 나섰다. 그들이 나서면 통하지 않는 게 없을 정도였다. 보좌진이 작성한 정책질의서는 휴지통 신세가 되었다.
비공개 회의내용도 파악
삼성그룹의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대관업무자들도 여러명이 나눠서 한다. 전체적으로 몇 명이나 대관업무를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삼성그룹은 사회적인 이슈들도 많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휴대폰 단말기 폭리, 근로자 백혈병 발생,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로는 하도급업체 문제, 노조설립 여부, 이건희 회장의 지분과 자녀들에 대한 증여, 공정거래법 위반 등 그룹의 미래전략실이나 계열사 대관업무자들이 챙길 현안이 많다.
삼성그룹 대관담당부서의 실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보좌진도 거의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 대관담당자는 과거보다 늘어난 것 같다. 십수년전에는 홍보실이 대관업무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삼성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역할에 따라 국회 주변을 돌아다니며 입법동향과 정책질의서 내용 등을 파악한다. 다양한 정보채널이 있는 듯하다. 각 정당의 주요 일정과 원내전략 등도 파악한다. 심지어 비공개 의원총회 내용이나 당의장실, 원내대표실 동향도 빠르게 파악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에도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삼성그룹의 치밀함을 생생히 경험했다. 당시는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 일대 싱크홀 발생과 인근 지하철 공사의 부실시공 등으로 인해 시공사인 삼성물산의 책임소재가 부각돼 있었다. 당연히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공사의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건설부문)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곧바로 삼성그룹 대관담당자 C가 전화를 걸어왔다.
의원실의 증인신청 사실을 이미 파악한 것이다. 외부에서는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인데 참 빠르다고 느꼈다. 증인명단에서 아예 빼거나 삼성건설 증인신청을 임원급으로 낮춰달라는 요청이었다. 어이없는 요청이었다. 당연히 의원실에서는 거절했다. 하지만 그 뒤로 국회 주변에서 삼성그룹 임직원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발빠르게 대응한 것 같다. 의원실에서는 증인변경 요청을 거절했지만 결국 위원회를 설득하고, 읍소했는지는 몰라도 의도대로 임원급으로 증인이 낮춰졌다. 삼성그룹의 대관업무팀의 영향력이 여의도 주변에서도 큰다는 것을 실감했다. (계속)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