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MB 회고록 출간 파문 확산
[밀착취재]MB 회고록 출간 파문 확산
  • 김재현 프리랜서
  • 입력 2015-02-02 10:57
  • 승인 2015.02.02 10:57
  • 호수 1083
  • 1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와대 당혹, 왜 하필 이 시점에
“하필 이 시점에 왜?…지지율 회복 찬물”
북한-러 심상치 않은 움직임 ‘밀월의 시작’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펴내면서 남북관계를 비롯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남북 간 비밀접촉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면서 향후 남북관계 및 주변국 외교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또 재임 중 다뤘던 각종 현안에 대해 비화를 공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함께 남북정상이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면서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내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오는 5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확인됐다”고 러시아 대통령궁 공보실을 인용해 지난 24일 전했다. VOA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궁 공보실은 전날 이 방송에 보낸 이메일에서 “김 위원장의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이 확인됐다”며 “김 위원장의 참석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지금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한 것을 두고 “모종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분석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를 보내왔다”고 밝혀 김 제1비서의 방러 여부를 두고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 주변에서는 남북정상의 대면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남북정상이 러시아에서 정상회담을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당장 러시아 승전기념행사 참석여부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상황을 좀 더 주시한 뒤 결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행이 확정되면서 청와대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아울러 정부와 북한의 물밑접촉설과 남북한이 극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말이 청와대 주변에서 무성하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남북한과 러시아가 경협프로젝트를 놓고 3국 정상회담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 같은 추측은 우리 측의 강온 양면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단절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사안을 놓고 긴밀하게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정부의 움직임에서 잘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 29일 7년 만에 남북 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위)를 ‘대면 회의’ 형식으로 통일부에서 개최했다.

통일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남북 경제협력 등 교류협력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총괄기구인 교추위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지난 2008년 5월15일 제203차 회의 이후 67차례의 회의를 서면으로만 개최해왔다.

투트랙 대북정책 득과 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당시 대면 회의 이후 통일장관 이하 교추위 위원들이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 같은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교류·협력의 상당수가 중단됐던 남북관계도 한몫했다.
정부가 7년 만에 교추위를 대면 개최하기로 한 것은 분단 70년 및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 간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통일부는 지난 19일 ‘통일준비’를 주제로 진행된 외교부·통일부·국방부·보훈처 합동 업무보고에서 광복 70주년과 관련한 남북 합동행사를 위한 ‘공동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남북이 연초 남북대화의 확대를 언급하며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을 감안할 때 남북합동행사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합동행사가 열릴 경우 남북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제270차 교추위에서는 올해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운영경비 등에 대한 지원안이 심의·의결될 예정이다. 또 유엔인구기금(UNFPA)의 북한 인구조사, 개성공단지원재단 운영경비에 대한 지원안도 심의·의결된다.

교추위 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부처 차관 13명이 참석하고 이밖에 5명의 민간위원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남북이 광복 70주년 관련 행사로 민족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도 긴밀하게 추진돼 주목을 끌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올해부터 수도 모스크바와 평양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러시아의소리 방송이 지난 28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일리야 쿠즈민 및 국제관계 부국장과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강성호 공사참사는 최근 만나 모스크바와 평양 간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두 도시는 올해 하반기 문화, 과학, 스포츠 분야 협력을 위한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북한은 또 오는 8월15일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에 모스크바시 대표를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29일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 21일자를 인용해 러시아 극동 지역 전력업체 ‘라오 에스 보스토크’가 북한 나선특구에 대한 전력 공급 사업의 기술·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보스토크’는 타당성 조사를 수행할 업체를 다음 달 초 선정하고 조사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면 바로 송전시설 건설에 들어가 이르면 내년부터 북한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사업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서 북한 나선시를 잇는 송전 선로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연해주 지역 발전소의 잉여 전력을 북한에 보내는 방식이다.

남-북-러 사업 MB 찬물?

이 신문은 전력 공급이 러시아가 주도하는 나진항 개발사업뿐 아니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북한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루스기드로’가 러시아와 남북한을 잇는 송전선 건설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00년대 중반에도 극동 지역의 잉여 전력을 북한을 통해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송전선 건설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으나 이후 북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 정세 악화와 경제성 부족 등의 이유로 중단했다.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북한 기업들이 자원 채굴, 농업, 인프라 현대화 등의 분야와 관련한 북한 내 사업들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러시아 철도공사(RZD)는 나진-하산 물류·운송 프로젝트에 한국, 중국, 몽골 등의 파트너들을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 컨소시엄사가 참여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 프로젝트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을 위한 시범사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 남북러 3각협력 사업의 진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르굴로프는 “남북러 3각협력 사업은 참가국 모두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뿐 아니라 남북한 간 신뢰와 상호 이해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본 궤도에 오른 남북한과 러시아의 3각 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주목을 끈다. 이 구간은 향후 부산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북한 내 첫 사업 구간이어서 이 프로젝트도 향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 컨소시엄 관계자들은 나진항 3부두와 나진~하산 철도의 운송 효율성이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와 남북한 물류망을 잇는 이 프로젝트는 남북 경협은 물론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극동부터 아시아, 유럽을 잇는 초국경 경협 프로젝트 구상이다.

이미 철도시설공단은 오는 2018년 말까지 예정으로 포항~삼척간 철도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2019년부터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릉까지 열차 운행이 가능해진다. 향후 북한 내 나진〜청진〜함흥〜고원〜원산〜고성 구간까지 연결되면 TSR의 한반도 축이 완성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로 행보

박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박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경제협력을 위한 남-북-러 정상이 한 자리에 모여 논의하는 자리가 됨과 동시에 러시아의 중재로 남북 정상이 정상회담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이 기회를 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러시아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 등장한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청와대 입장에서 볼 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 회고록을 두고 정치권 일부에서 “이 전 대통령 측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회고록을 출간했을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펴낼 경우 어떤 파장이 일지 예측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 회고록을 공개한 것은 정치적 노림수가 있기 때문 아니냐”고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PDF 파일 형태로 배포한 회고록에서 북한이 다양한 채널로 먼저 우리 측에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그 대가로 대규모 경제지원 등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구체적 시점과 인물, 대화 내용을 담아 소개했다.

겉으로 남한에 대해 적대정책을 쓰면서도 물밑으로는 정상회담을 조건으로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는 북한의 이중적 행태를 까발려 정부의 남북협력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동시에 이는 정부 또는 정권 간 비밀접촉은 상당한 기간 비밀로 한다는 외교적 관례를 깬 것이어서 북측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불과 4, 5년 전의 물밑접촉 내용까지 그대로 공개된 만큼 현 정부가 남북대화를 모색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우려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북한은 대선 직후인 2007년 12월 이 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해왔고,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조문단으로 방남했던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통해서는 “북·남 수뇌들이 만난다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이 밖에도 2009년 10월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회동, 2009년 11월 통일부와 통전부 간 2차례 실무회담, 2010년 12월 북측 국가안전보위부 고위 인사의 비밀 방남, 2011년 중국 베이징 접촉 등이 기술돼 있다.

이 시도들은 실제 남북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 배경에 대해 북한이 항상 과도한 ‘대가’를 요구해왔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북한은 2009년 11월 통일부.통전부 실무회담에서 △옥수수 10만t △쌀 40만t △비료 30만t △아스팔트용 피치 1억달러 상당 △북한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등을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요구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서도 “동족으로서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정도로만 언급하겠다고 버텼고, 우리 정부가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자 그 대가로 쌀 50만t 지원을 제시했다.

이번 회고록 내용은 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북한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 중인 정부는 “북한에 ‘퍼주기 식’으로 대화를 구걸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추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지율이 20%대로 내려앉은 박 대통령 입장에서 남북대화는 회심의 카드가 될 전망이었으나 이 부분에서 의심어린 여론이 형성되면 지지율 회복에 상당한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ilyo@ilyoseoul.co.kr

 

김재현 프리랜서 webmaster@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