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중국 왕양 부총리의 방한으로 재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제부총리에 해당하는 실세의 방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 총수들이 앞 다퉈 만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왕양 부총리가 만난 재계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이다. 이들은 한중경제협력을 협의하고 구체적인 투자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만남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일요서울]이 왕양 부총리와 재계 총수들의 만남을 되짚어 봤다.
한·중 경제협력 협의…구체적 투자 계획 나와
왕양 부총리는 지난달 22일 ‘2015 중국 관광의 해’ 개막식을 주재하기 위해 사흘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왕양 부총리는 중국의 대외 경제와 무역·관광 농업 등 업무를 총괄담당하며 시진핑 국가주석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제부총리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또 왕양 부총리는 2017년 차기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중국 내 실세 지도자로 손꼽힌다.
이 같은 중국 핵심인사의 방문은 재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앞 다퉈 왕양 부총리를 만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보다 비공개 회동으로 이뤄진 만남은 눈길을 끌었다. 공교롭게도 왕 부총리가 개별적으로 만난 순서가 국내 재계 서열 순위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별도로 독대하다시피 만난 총수들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이다.
왕양 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3일 만남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상훈 사장 등도 동석했다. 이들은 삼성의 중국 사업 추진 현황을 소개하고, 중장기적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또 시안 반도체공장 등 연구개발(R&D) 분야 투자협력과 호텔·관광 등 중국 내수시장 투자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기업 중 삼성이 중국에 대한 투자규모가 가장 많은 만큼 이 부회장과 왕양 부총리의 첫 공식일정은 중국정부와 삼성전자의 각별한 관계를 입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은 “한중 양국 간 인적 교류가 증가하면서 신라호텔과 용인 에버랜드 테마파크를 찾는 중국 고객들이 늘었다”며 “중국 지방 정부나 기업과도 협력을 확대해 한중 교류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만남은 이튿날인 24일 오전에 이뤄졌다. 이들은 현대자동차의 중국 내 사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몽구 회장은 이날 “현대자동차가 허베이성 창저우시와 충칭시에 추진하고 있는 신공장 건설이 예정대로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왕양 부총리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자동차산업 현지화와 공업화에 기여한 것에 감사한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서 왕양 부총리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단독 회동을 했다. LG그룹의 경우 왕 부총리가 광둥성 서기일 때 광둥에 4조 원 규모의 LCD 공장 투자를 한 인연이 있어 깊은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자리에는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화학 사장, 하현회 ㈜LG 사장 등 그룹 고위 임원진들이 함께했다. LG그룹 측은 “LG화학이 지난해 말 시작한 중국 난징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등 중국 정부와 LG그룹의 현안에 대해 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아쉬움 남긴 SK
왕양 부총리는 이번 방한 기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 최경환 부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국내 재계 총수들과의 만남에 할애했다.
비공개 회동 외에도 왕양 부총리는 23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을 만났다. 이튿날인 24일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우선 23일 대한상의에서 만남이 이뤄진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서울상의 회장단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사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과는 10여분간 얘기를 나눈 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자리에서 박용만 회장은 “우리는 중국에 공장도 많고 거의 시민이나 마찬가지”라고 친근함을 표현했다. 이에 왕 부총리는 “환대에 감사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 부총리는 비즈니스포럼 축사를 통해 “제조업에서 금융, 전자통신(IT), 의료 등 서비스분야로 양국 무역의 새로운 협력모델을 찾아야한다”며 한중FTA의 수준 높은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또 이튿날 만난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는 포스코의 ‘중국 충칭 파이넥스 일관제철소 건립’과 관련해 승인 약속이 오갔다. 권 회장은 왕양 부총리 초청 오찬 직후 “중국 정부가 충칭 프로젝트에 대해 신속하게 결정하기로 했다”며 “시점은 1개월 이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중국 국영기업인 충칭강철과 연산 300만t 규모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내용의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이 밖에도 한중우호협회장을 맡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왕양 부총리에게 한·중 경제교류 활성화, 금호타이어 난징공장 확장 이전 등에 대한 지원 요청을 전달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대북사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오간 왕양 부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중국 현지 투자와 한·중 기업 간 제휴 협력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한편, SK그룹은 재계 5위권 내에서 유일하게 왕양 부총리의 눈도장을 찍지 못했다. 옥중에 있는 최태원 회장 공백의 단면이 드러난 셈이다. 한때 SK는 중국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고, 실제로 중국 현지 사업은 최고위층 간의 네트워크로 풀어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