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보인 경찰 ‘살인범 활개 친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면 경찰은 기자들 입부터 막는다?
서울 관악경찰서가 지난 11일 발생한 서울 봉천동 다세대주택 살인사건과 관련, 모든 언론사 취재에 지나친 ‘입단속’으로 일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언론사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은 사건과 관련된 기자의 취재요청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가하면 기자를 향해 ‘짜증난다’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라’는 등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혹여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갈까 극도로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담당 수사팀의 팀장마저 공개수배 된 용의자에 대한 추적 상황을 묻자 “잘 모른다” “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은 문제로 지적될 소지가 크다. 자칫 경찰이 수사에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살인범이 공개수배 중이라는 전단지만 나붙었을 뿐 범인을 검거했다는 소식도, 수사 진행 상황도 알 길이 없어 답답하고 불안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이 아예 사무실에 눌러앉아 제보전화에만 목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거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서울 관악구 봉천4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방에서 집주인 구모(61·여)씨가 가슴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구씨의 아들은 경찰에서 “어머니가 ‘지하방 변기가 막혔다’는 세입자의 전화를 받고 나간 뒤 봉변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하방 세입자인 이용수(38)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실적 경쟁에 속 타는 관악경찰
또 다른 관할지역인 남현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사흘 만에 해결한 직후였는지라 경찰의 자신감은 높았을 터였다. 그런데 모습을 감춘 이씨는 경찰의 수사망에 좀처럼 걸려들지 않았다.
최근 서울경찰청이 경찰서별 실적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검거 인원수를 점수로 환산, ‘경찰서 줄 세우기’에 나선 만큼 관악경찰의 마음은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관악경찰의 관할 지역 내에서 불과 사흘 동안 벌어진 3건의 살인사건은 마치 경찰의 실적경쟁을 비웃는 듯했다.
결국 관악경찰은 사건발생 엿새만인 지난 17일 용의자 이씨를 공개 수배했다. 그러나 이씨의 신상이 전국에 나붙은 현재까지 살인 용의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공개수배 나흘 만인 지난 21일 기자는 사건 전담팀인 관악경찰서 강력계 사무실을 찾았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스트레스로 사무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전담수사팀 관계자 전원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기자의 취재 요청을 완강히 거절했다.
일부 형사들은 기자의 질문을 피해 밖으로 나가버리는가 하면 혼잣말인 척 짜증 섞인 볼멘소리를 읊조리는 형사도 있었다.
외근을 나가 기자를 만날 수 없다던 A팀장은 ‘꿋꿋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건 경위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질문에도 “말할 수 없다” “모른다”며 대답을 회피하기 바빴다.
A팀장은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 사건에 대해 듣고 싶으면 형사과장을 통해 취재협조 공문을 받아오라”고 버텼다. 용의자 검거가 늦어지는 마당에 언론에 섣불리 입을 열었다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살인자 활보하는데 경찰 대체 뭐하나”
최근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를 비롯한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살인 등 강력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지난 2006년 검거된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저지른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의 2막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극도로 퍼진 상태다.
더구나 공개수배까지 내려진 살인 용의자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경찰을 향한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봉천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강모(56)씨는 “여기저기 나붙은 수배자 사진만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은 들리는데 범인 잡았다는 소리가 안 들리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냐”며 “요즘 같아서는 경찰이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경찰이 용의자 검거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여론이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을 피하기 위해 입막음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수사팀의 태도는 분명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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