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강간·약탈… 가족이 날 노린다

2002년 6월 9일 늦은 새벽, 서울 모 대학 휴학생 이모(당시 22세)군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그는 스키 폴대 끝에 날카로운 칼날 두개를 청테이프로 단단히 묶어 만든 무기를 아버지(당시 48세)의 목에 그대로 박아 넣었다. 첫 번째 일격이 약했는지 아버지는 잠에서 깨 몸부림쳤고 부자(父子) 사이엔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갓 군대를 제대한 20대 초반의 청년을 이기는 것은 무리. 이씨는 아버지의 이마와 무릎, 옆구리를 닥치는 대로 찔렀고 결국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공부도 못하는 게 왜 이리 늦게 다녀!” 몇 시간 전 아버지로부터 들은 꾸지람이 이씨의 범행동기였다.
단란한 가정이 살인과 폭행, 강간으로 얼룩지고 있다. 끔찍한 강력범죄가 피를 나눈 가족 사이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특히 부모나 조부모 등을 살해한 범죄자들은 연평균 40여명에 이른다. 폭행과 강간 등 패륜범죄 역시 1997년 IMF 구제금융조치 이후 연평균 30%씩 증가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 판치는 패륜에 무너지는 ‘가족해체 잔혹사’를 들여다봤다.
친아버지를 살해한 이군의 잔혹한 패륜행각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친부모 죽이고 시신까지 능욕
이씨는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 할머니(당시 72세)마저 직접 만든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목격자를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유학중인 두 동생과 뒷바라지를 위해 출국한 어머니는 가까스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씨는 곧장 집 근처 주유소 3군데를 돌며 휘발유 3리터를 사 모았다. 그는 사들인 휘발유를 아버지와 할머니의 시신에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시신을 보며 완전범죄를 꿈꾼 것이다.
시신을 온전히 불태운 이씨는 그나마 양심적인 편이다.
지난 2000년 5월 경기도 과천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친부모를 상대로 한 끔찍한 도륙이 벌어졌다. 공군을 제대한 김모(당시 23세)씨는 쇠망치로 어머니(당시 45세)의 머리를 때려 살해했다. 명문대 출신인 어머니의 멸시에 진저리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방법으로 아버지마저 살해한 김씨는 집 욕실에서 부모의 시신을 토막 냈다. 어머니는 10등분, 아버지는 11등분으로 부순 김씨는 공원과 건물 쓰레기장, 전철역, 배수지 등을 돌며 조각난 시신을 버렸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사례 가운데서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사진작가가 환각상태에서 친 어머니를 카메라 삼각대로 때려 살해한 뒤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하다 발각되는 사건도 있었다.
특별한 범행동기 없이 친족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금전적인 이유, 즉 유산이나 채무관계가 가족을 망치는 사례가 폐륜범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1994년 5월 100억대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칼로 수십 차례 도륙한 뒤 불을 지른 ‘희대의 패륜아’ 박한상(당시 23세)이 대표적인 예다.
자신의 회사가 부도나자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던 한 30대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아버지를 살해했다.
또 신용카드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와 누나에게 흉기를 휘두른 20대, 유산을 노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하고 강도의 소행처럼 꾸민 택배회사 직원 역시 끔찍한 패륜범죄의 일면을 장식했다.
존속 살해와 더불어 용서할 수 없는 패륜범죄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가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다.
“야동보다 흥분해서 그만…”
친족성폭행 사례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친족성폭행을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 절반은 친아버지인 것으로 조사돼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해 8월 경찰에 붙잡힌 정모(40)씨는 무려 5년 동안 친딸(14)을 겁탈한 사실이 드러나 파렴치한 아버지의 전형으로 낙인찍혔다. 경찰에 붙잡힌 그는 “밤에 야한 동영상을 보다가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진술해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씨의 위험한 일탈은 200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불과 7살이던 큰딸에게 ‘성교육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한 정씨는 그날 밤 딸의 순결을 빼앗았다.
짐승만도 못한 정씨의 범행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정씨는 검거되기 직전까지도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을 틈타 큰딸과 작은딸(6)이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가 욕정을 풀었다. 정씨의 잘못된 욕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갓 유치원에 들어간 둘째 딸이 보는 앞에서 큰딸과 관계를 갖는가하면 목욕을 시켜준다는 핑계로 욕실에서 딸을 겁탈하기까지 했다. 견디다 못한 큰딸은 결국 가출을 하는 것으로 짐승 같은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예 친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 사촌형제들이 한 소녀를 윤간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충북의 한 조용한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음란한 폭력행위는 사건이 처음 발생한지 무려 2년 만인 지난해 5월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해 온 A양(17)은 할아버지(87)와 함께 산 2년 동안 매일같이 조부의 잠자리 상대를 해야 했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A양을 짓밟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사촌형제 등 무려 6명의 친족이 수시로 A양의 몸을 탐했던 것.
‘남보다 못한 가족’ 계속 늘어
이 가운데 사촌오빠 두 명은 A양을 범할 때 미리 콘돔까지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A양의 부모는 물론 이들 가족 모두가 A양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수사팀을 아연실색케 했다.
문제는 이 같은 폐륜범죄가 ‘세상의 이런 일이’라는 탄식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부모나 조부모 등을 살해하는 존속살인은 199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모두 624명에 달했다. 매년 평균 40여명의 패륜아가 법정에 서는 셈이다.
패륜범죄의 급증은 경찰청 통계자료에도 드러난다. 직계가족을 살해하거나 폭행한 패륜범죄는 지난 1997년까지 소폭 감소하다 IMF 구제금융 직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8년 1160건의 패륜범죄가 발생했고 다음해인 1999년에는 1379건을 기록한 이래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다른 패륜범죄에 비해 크게 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성폭행 사건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 360건(15.5%)에 달했던 친족성폭행은 2007년 273건(14%)이 보고 됐고 지난해엔 전체 상담건수 1209건 가운데 204건(14.3%)을 차지했다. 피해자의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파괴하는 성폭력 가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패륜아들은 어떤 심리로 끔찍한 범죄에 발을 들이는 걸까.
전문가들은 패륜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박탈감과 가족 해체에 따른 유대감 결여 등을 꼽는다.
경제 불황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순간적인 충동이나 금전적 이유를 이기지 못해 가족을 희생양을 삼는다는 것이다.
법학전문가 구영모 박사는 “최근 사회에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돈을 구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며 “돈이 된다면 가족의 재산을 빨리 가로채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패륜범죄는 가족의 해체가 그 출발점이다. 전통사회에서는 가족간의 연대의식이 매우 강했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가족 간의 대화단절, 세대차이 등으로 연대의식 자체가 상당히 희미해졌다”고 말했다.
스스로 가족구성원이라는 의식이 흐려져 가족을 상대로 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정의 달 5월을 무색케 하는 이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희대의 패륜아’ 박한상 지금 뭐하나
대구교도소 수감 중, 98·2002년 동료 죄수와 주먹다짐
15년 전 100억대의 유산을 노리고 친부모를 살해한 희대의 패륜아 박한상(38). 대법원에서 1995년 8월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그는 현재 미결수 신분으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15년 째 사형수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박한상은 지난 1998년과 2002년 동료 수감자와 주먹다짐을 벌여 독방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교도소 관계자는 “(박씨가)다른 수감자 2~3명과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특별히 면회를 오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의 사형수들이 종교 활동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과 달리 박한상은 어떤 종교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한때 박한상의 교화를 담당했던 종교위원 양순자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5년 동안 수많은 사형수를 만났지만 박씨처럼 죄책감이나 뉘우침 같은 동요가 전혀 없는 경우는 처음이다”고 밝혔었다.
1994년 당시 23세였던 박한상은 미국 유학 중 도박에 빠져 빚만 늘어가는 생활이 지속되자 친부의 반 강제적 호출을 받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 일로 아버지에게 심한 반감을 갖게 된 그는 같은 해 5월 빚을 청산하고 100억 원대 유산을 하루라도 빨리 상속받기 위해 친부모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경찰은 한 집에 있었음에도 유독 박한상만 이렇다 할 상처가 없는 점과 머리에 묻은 핏자국을 근거로 추궁한 끝에 그의 자백을 받아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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