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M 보유한 북한 이미 부산 까지 전술땅굴 굴착 '주장'

올해 초 국가정보원 소속 정보대학원의 한 교수가 돌출행동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 교수는 몇몇 언론사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보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남침이 임박했으며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경기도 김포 인근까지 장거리 지하터널을 파는 등 남침준비가 임박했고, 경의선 개통도 남침 대비용 지뢰 제거가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국정원과 국방부가 해명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이 교수가 왜 이런 보고서를 언론사에 뿌렸는지에 대해선 아직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이 교수의 보고서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보고서는 교수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의견으로, 국정원의 공식 보고서나 논문이 아니며, 국정원의 입장이나 견해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 교수가 국정원 북한 파트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으며, 대북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보고서 내용은 신뢰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보고서가 공개된 지 4개월만에 이 교수는 또 다시 ‘2차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해 파장이 예상된다. 1차 보고서가 남침 가능성을 주장한 것이라면 이번에 공개된 2차 보고서는 땅굴을 이용한 북한의 남침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번에 입수한 2차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한다.
1차 2차 보고서는 모두 김영환 교수가 작성했다. 김 교수는 어떤 인물일까.
보고서를 작성한 김 교수는 첩보학 전문가로 정보대학원에서 해외 정보분야 교육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차 보고서 공개 당시 국정원은 김 교수가 북한에 대해 모르는 비전문가라고 해명한 바 있다.
국정원의 설명 외에 김 교수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일부에선 국정원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김 교수를 비전문가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김 교수가 왜 느닷없이 보고서를 세상에 공개했는지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 안보가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상황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보고서
2차 보고서에서 김 교수는 국가 안보가 1차 보고서를 공개할 당시보다 더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마침내 남침이 현실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1월 15일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인터넷상에 공개함으로써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한 바 있다”며 “그 직후 북한은 ‘전면대결태세 진입’을 선언(1·17)한데 이어 ‘전군에 대한 전투준비태세 명령’을 하달(3·9)함에 따라 북한의 정규군은 물론 노농 적위대(민방위조직), 교도대(예비군), 붉은 청년근위대(학생군사조직)까지 전투준비에 돌입하는 등 남침준비를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지난번에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할 때 동일한 보고서를 국정원 지휘부에도 제출했었다. 하지만 국정원 지휘부는 나의 보고에 대해 ‘정신 나간 주장’이라는 공식 검토의견을 통보(2·5)한데 이어, ‘임의로 전쟁을 경고했다’는 이유로 나를 강제해직(2·12)시켰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김 교수는 과거 “경제의 기반이 튼튼하다”는 재경원 주장을 믿다가 IMF 위기를 맞은 예를 들면서 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은폐하기에 급급한 정부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대책 강구를 위해 또 다시 보고서를 내놓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북한 로켓 발사를 먼저 언급했다. 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로켓발사는 성동격서(聲東擊西)에 다름 아니다. 북한은 로켓발사를 통해 남침의 최대 위협이 로켓인 것처럼 꾸며 관심을 돌린 뒤 감시가 소홀해진 땅굴을 통해 기습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지금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남침을 감행해도 미국이 섣불리 개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기존의 단거리 땅굴은 전술(戰術)차원의 지하갱도에 불과한 반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전기존의 단거리 땅굴은 고작해야 전술(戰術) 차원의 지하갱도에 불과한 반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전략(戰略)차원의 지하갱도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술땅굴이란 휴전선 일대(한강 이북지역)에서 전개될 개별 전투의 승리를 위한 지하갱도를 말하며, 전략지하터널은 개전과 거의 동시에 우리의 심장부를 점령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지하갱도를 의미한다.
땅굴 남침 땐 남측 승산 제로
김 교수는 “김정일을 대표하는 정치적 구호가 ‘속도전’(전격전의 북한식 표현)인데다, 그가 굴착한 장거리 지하터널 역시 ‘작전교리상의 기습’(전술 땅굴⇒전략지하터널)을 노린 것인데도 우리 군은 이를 연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교수는 “우리 군은 지난 1992년 국방장관 명의로 기자회견 한 것을 계기로,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공식입장을 고수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방부는 더 이상 ‘북한군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장거리 지하터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월남전의 예도 들었다. 김 교수는 “월남전의 경우 공산군이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정글이 아닌,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월남의 땅굴 중 대표적인 쿠치 땅굴의 경우, 캄보디아 국경에서 사이공(현 호치민시) 외곽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0km의 장거리 땅굴로서, 내부에 무기고 및 탄약고는 물론 식당, 병원, 극장(정치교육용)까지 갖춘 일종의 지하 소도시 역할까지 담당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도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250km이상은 남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월남공산군이 수작업(手作業)으로 250km의 장거리 땅굴을 팠다면, 첨단 장비(TBM)를 보유한 북한군이 그 정도를 굴착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문제가 없다고 한다”고 보고서에 밝혔다.
남한의 한물간 대응법
우리 군의 땅굴 남침 대응전술은 이미 무용지물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북한은 이를 염두에 두고 땅굴을 굴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 참고)
김 교수는 “우리가 ‘북한군이 땅속에서 기어 올라올 것’으로 지레짐작하는데 이는 오산”이라며 “과거 월남군이, 쿠치 땅굴 구조를 ‘교묘하게’ 굴착함으로써 미군의 독가스 및 물(水) 주입공격을 무력화시킨 전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전례를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이라면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가스 공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북한군은 이외에 땅굴 폭격이나 폭파 등에 대한 대비도 했을 것이다. 때문에 북한군의 땅굴 출구는 발밑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 위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출구는 해당 지역 내에 위치한 높이 100m 이상 되는 산 중에서 주요도로와 접해있는(신속한 기동을 위해) 산속에 개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곳(산기슭)에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의 각급 군부대가 주둔해 있을 뿐만 아니라 산 정상엔 레이더 및 통신기지, 미사일 기지도 배치돼 있어 더욱 그렇다고 김 교수는 확신했다.
김 교수는 “우리 군은, 미군 전쟁 지휘소가 있는 청계산과 미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소요산,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관악산 등에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가 개척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아울러 청와대의 뒷산격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는데, 김정일 입장에서 볼 때 청와대만큼 최우선적인 타격목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서에 지적했다.
또 김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이처럼 청와대 및 국방부, 그리고 각급부대와 공군기지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해, 북한군 특수부대(총18만 명)와 기갑부대 등이 국군복장을 한 상태에서, 우리 군이 잠들어 있는 틈에 ‘기습상륙’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2월 16일 김정일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며 자신감을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과, 북한의 언론 매체(3월 15일자 노동신문)도 다음과 같이 승리를 호언장담한 사실 등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김정일의 호언장담 속뜻
노동신문은 이때 “우리 군대의 대응조치에는 한계가 없고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으며… 우리 혁명무력은 수십 년 세월 다져온 모든 군사력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천백 배 무자비한 섬멸적 보복타격을 가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것이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국방부가 지하터널의 존재를 은폐 또는 묵인하는데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방부가 장거리 지하터널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랫동안 고수해온 공식입장을 하루아침에 번복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그럴 경우 국방부의 권위 실추는 물론 그 동안 민간인들의 신고 내용을 고의로 묵살 내지는 은폐해 온 국방부내 몇몇 군인들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제기될 것이기 때문”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지김 사건에 비유했다. 안기부도 지난 1987년 ‘황급히’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수지김)을 ‘북한 여간첩’이라고 발표하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직후 안기부 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은 수사과정에서 그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수지김은 간첩’이라고 공식발표한 뒤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수지 김=간첩’이라는 공식입장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고수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안기부 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제적으로나 북한에게 망신당할 우려가 있다”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사건의 진실을 대외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대내적으로도 숨겨왔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수지김 사건의 진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는데, ‘수지김 사건’에서 보듯이,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 역시 국방부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구조”라며 “지금이라도 국민이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허무맹랑한 궤변이라고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땅굴은 유사시 시추공하나만 뚫어서 화생방공격하거나 시추공으로 포탄만 터뜨려도 갱도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얘기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땅굴에 대한 김 교수의 주장은 허점투성이다. 우리나라같이 험준한 산악지형의 땅에서 산 중턱에 땅굴의 입구를 낸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최첨단 시대이기 때문에 지하 100M의 땅굴은 위성추적이 가능하다. 게다가 땅굴은 발각될 경우 침투병력 전원이 몰살할 수 있다. 북한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땅굴 남침을 감행할지 미지수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현재로선 김 교수의 보고서를 검토할 뜻이 없다”고 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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