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킬러들의 수다’청부살인의 세계
잔혹한 ‘킬러들의 수다’청부살인의 세계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5-12 14:05
  • 승인 2009.05.12 14:05
  • 호수 108
  • 4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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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딱 감고큰 거 한 장이면 못할 것 없지!”

바야흐로 죽음을 권하는 시대다. 함께 목숨을 끊을 동료를 모으는 자살 커뮤니티가 유행처럼 번지는가 하면 자살을 원하는 이들에게 독약을 팔아넘기며 사실상 죽음을 부채질하는 장사꾼도 활개를 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거래하는 진짜 사냥꾼은 따로 있다. ‘살인청부업자’로 불리는 이들은 살인을 꿈꾸지만 직접 나서지 못하는 이들로부터 활동비와 사례금을 받고 기꺼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다. 개인적인 분노와 뭉칫돈에 눈이 먼 고객들은 인터넷과 생활정보지를 통해 ‘자객’을 물색하고 일부는 실제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1970년대부터 언론에 오르내린 ‘청부살인’이란 용어는 더 이상 낯선 키워드가 아니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불법 심부름센터와 조직폭력배 등 베테랑들이 ‘해결사’ 노릇을 한 반면, 최근에는 돈이 궁한 철부지들이 ‘초보킬러’로 분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흥신소라고 살인 밥 먹듯 하는 건 아냐”

심부름센터 등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부업자들이 직접 흉기를 휘둘러 대담한 살인극을 벌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부 불법 심부름업체가 벌이는 청부살인 수법은 교통사고나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

하지만 위험부담이 큰 만큼 실제 살인청부를 받아들이는 업체는 많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심부름센터를 운영했던 A씨는 “업자들도 계속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에 발을 담그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유사업체들이 난립하면서 궁지에 몰린 일부 업체들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A씨에 따르면 일명 ‘흥신소’로 불리는 불법 심부름센터들은 위치추적, 도청 등 ‘비교적 가벼운’ 불법을 행하는 대가로 건 당 300만원 정도를 챙기며 이것이 대표적인 생계 수단이다. 문제는 돈이 궁한 일부 업체들이 닥치는 대로 일감을 끌어오기 위해 의뢰인의 ‘무리한’ 요구에도 손을 대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병신 만드는데 900, 살인은 1천만원?

현재 국세청에 등록된 심부름센터는 약 500여개. 그러나 무허가 업체를 합하면 4000여개 이상의 심부름센터가 암암리에 영업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해 장사에 나서는 ‘개인사업자’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업계의 출혈 경쟁은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A씨는 “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유령업체들은 보통 벼룩시장, 가로수 등 생활정보지를 통해 쪽광고를 내고 손님들을 끌어들인다”며 “이를 통해 업체와 접촉한 고객들 상당수는 살인이나 폭행 등 무리한 의뢰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대로 된 업체라면 당연히 무시할 요구지만 처음 업계에 뛰어들었거나 조직폭력배등과 돈독한 연줄이 있는 업체들은 거액의 사례금을 요구하며 직접 나서는 일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불법 업체들이 챙기는 각종 청부사례의 수당은 어느 정도일까. A씨는 “의뢰인의 사정에 따라 수당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살인의 경우 1000만~1500만원 사이에 계약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사람의 목숨 값 치고는 턱없이 적은 돈이다.

그는 “최근 신생업체들이 난립하면서 가격경쟁이 붙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또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신체 절단 등 중상을 입히는 경우에는 500만~900만원 정도에 흥정이 오간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이들 업체들은 나름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의뢰인들을 상대로 갖가지 조건을 붙이기도 한다. ‘휴대폰은 기록이 남을 수 있으니 반드시 공중전화를 이용해 연락하라’거나 ‘약속 장소에는 꼭 혼자 나오라’고 요구하는 등 나름 몸 사리기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1980년대 ‘희대의 청부살인’

청부살인이라는 용어가 신문지상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청부살인사건을 꼽아봤다.


‘회사 찬탈음모’ 서울관광사장 청부살해 사건 (1980. 12)

지난 1980년 12월 9일 서울 성북경찰서는 당시 진기식 서울관광사장을 살해한 혐의로 문모씨와 살인을 교사한 서울관광 상무 김모씨를 구속했다. 당대 굴지의 관광회사를 무대로 한 상무의 회사 찬탈음모는 상당한 화제였다.

김씨는 진 사장을 살해하는 조건으로 문씨에게 900만원의 현금과 진 사장의 사진, 자택 약도 등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세금 90만원 더 낸 게 억울해서” 서울 세무원 청부 살해사건 (1981. 8)

국가 공무원이 청부살인의 목표가 된 사례도 있었다. 지난 1981년 8월 당시 서울 북부세무서 공무원 강정근씨 살해사건은 94만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직물상인의 청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서울 동대문 경찰서는 1981년 8월 강씨에 대한 살인을 의뢰한 동대문시장 직물상 김모(당시 35세)씨와 살해과정을 총괄한 부동산업자 이모(당시 36세)씨를 비롯한 하수인 3명을 검거했다.

당시 김씨는 “신고한 금액 외에 세무사찰을 받는 바람에 94만원을 더 추징당하자 악감정이 생겼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김씨는 수사망이 좁혀오는 중에도 부산에서 느긋하게 해수욕을 즐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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