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로 새 승리공식 슈틸리케, 희망을 쏘다
세대교체로 새 승리공식 슈틸리케, 희망을 쏘다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5-01-26 11:33
  • 승인 2015.01.26 11:33
  • 호수 1082
  • 5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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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아시안컵 준비과정에서부터 불안한 모습을 연출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컵 종반을 달려가면서 축구팬들의 우려를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대한민국축구대표팀은 지난 22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까지 4전 전승에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3회 연속 아시안컵 4강에 안착했다. 더욱이 그간 박주영바라기에 갇혀 있던 대표팀이 새로운 승리 공식을 이끌어 내면서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청신호를 켰다. 특히 이청용과 구자철의 조기 마감이라는 큰 어려움 속에서도 큰 동요 없이 전진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뚝심을 입증했다. 

  진현 + 성용 + 정협 급부상, 한국축구의 부활 예고
  기자회견 정면돌파…동기부여, 책임의식 심어 줘


축구대표팀은 지난 22일(한국시간)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전에 터진 손흥민의 두 골에 힘입어 우즈베키스탄을 2-0으로 제압하고 4강에 진출했다.

이날 승리의 주인공은 연장전에서 천금 같은 두 골을 터트린 손흥민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 개막 전부터 현지 언론에 지속적으로 거론될 만큼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조별 예선 초반 감기 몸살을 앓았던 손흥민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맘고생도 심했다.

조별 예선 1차전인 오만전 이후 2차전을 건너뛴 그는 호주와의 3차전에서 교체 투입됐지만 컨디션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약 40분간 슈팅 한 개를 남긴 것에 만족해야 했다.

더욱이 손흥민은 A매치와는 인연이 없었다. 소속팀에서는 펄펄 날고 있지만 최근 10경기 연속 A매치 무득점에 그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그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전반 25분 페널티 박스 왼쪽 모서리에서 감아찬 슈팅을 시작으로 슈팅 감각을 끌어 올렸고 왼쪽 측면에서 최전방으로 전진 배치된 연장전부터 날개를 달았다.

연장 전반 14분 김진수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침착한 슈팅으로 마무리했고 연장 후반 14분에는 차두리가 오른쪽에서 올린 땅볼 크로스를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하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그동안의 무득점은 걱정을 안했다.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심한 감기를 앓으면서 내 몸 상태가 100%가 아니었던 부분이 우려됐을 뿐이이었다”며 “경기를 항상 잘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무명 선수 이정협 발탁
축구계 깜짝 놀라

대표팀의 기대주였던 손흥민이 되살아나면서 슈틸리케호는 2018 월드컵을 향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시안컵 준비과정에서부터 불거졌던 자원부족 문제를 세대교체를 통한 새로운 승리공식을 만들고 있다.

특히 아시안컵 슈틸리케호를 거론할 때 늘 언급되는 이정협의 발탁은 슈틸리케 감독의 탁월한 선택으로 평가 받는다.

축구대표팀은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이후 원톱자원을 찾기에 고심을 거듭했다. 홍명보 감독이 신임했던 박주영은 지난해 10월이 돼서야 무적 신세를 면했고 사우디리그 데뷔전을 치른 이후 골을 넣자 다시 대표팀에 발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은 박주영에게 기회를 줬지만 박주영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국 대표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신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이라는 무명 선수를 깜짝 발탁하면서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이정협은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지난 4일 사우디아리비아와의 평가전에 A매치 데뷔골을 터드리며 이름을 알렸고 지난 17일 아시안컵 조별리그 1위 자리를 놓고 맞대결한 호주와의 경기에서 승리의 결승골을 터뜨리며 슈틸리케의 황태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정협은 대표팀에 발탁되자마자 슈팅의 대안으로 떠오르며 브라질 월드컵 통틀어 슈팅 0개를 기록한 원톱 박주영과 극명한 효율성 대비를 보여줬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로는 골키퍼를 빠트릴 수 없다. 평가전부터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던 김진현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발굴해낸 보석과도 같은 존재다.

골 결정력 부족에도 8강전까지 무실점을 기록한 것은 김진현의 공이 크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한국의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전반 4분 최전방의 나시모프가 오른쪽 페널티박스에서 날린 강력한 슈팅을 막아낸 것을 필두로 전반 17분에는 산자르 투르수노프의 슈팅을, 후반전에도 사르도르 라시도프의 슈팅을 몸을 던져 막아내서 고비를 넘겼다.

앞서 열린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전반 16분 네이선 번즈의 슈팅을 몸으로 막아냈고 후반 25분에도 같은 공격수의 슈팅을 걷어내는 등 호주의 파상 공세를 홀로 다 막아내며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진현은 8강까지 4경기 중 3경기에 출전해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2011 아시안컵 당시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선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설움을 이번 대회를 통해 털어냈다.

그는 또 대표 수문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8강 진출 팀 주전 골키퍼 가운데 맷 라이언(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방 횟수를 기록했다.

반면 설욕을 다짐했던 정성룡은 그라운드를 제대로 밟지 못하며 세대교체의 바람을 몸소 겪어야 했다.

여기에 경험과 탁월한 능력을 갖춘 기성용이 가세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승리 공식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기성용은 호주전 직후 현지 언론에서조차 경기 운영 능력을 극찬 받을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호주전에서 81%의 패스성공률을 보이며 호주전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그는 거리에 관계없이 동료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팀 득점의 발단 또는 전개는 대부분 기성용의 발끝에서 나왔다.

8강전에서도 기성용은 우즈벡의 거친 압박에도 불구하고 양 팀 통틀어 최고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총 124차례 볼을 차지한 기성용은 95회의 패스를 시도했고 성공률은 무려 91%에 달했다.

또 조별리그에서도 절정의 패스 감각을 선보여 모두 188회 패스를 시도해 174번의 성공을 거둬 패스성공률 92.4%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더욱이 기성용은 8강전에서 3단 변신을 선보여 축구팬의 갈채를 받았다.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후반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꿨고 이후 연장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활약하면서 이날 손흥민의 결승 선제골의 기반이 됐다.

이에 이정협, 기성용, 김진현으로 이어지는 슈틸리케의 새로운 승리 공식은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위한 축구대표팀의 해법으로 부각되고 있다.

찜하면 맹활약…
슈틸리케 법칙 주목

이번 대회를 통해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찜하면 맹활약하는 일명 ‘슈틸리케 법칙’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 하루 전 기자회견에 대동하고 나오는 선수 또는 경기 이틀 전 훈련 때 인터뷰이로 내세우는 선수가 본 경기에서 맹활약하는 현상이 속출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한두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시안컵 내내 이어졌다.

오만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슈틸리케 감독은 기자회견장에 기성용을 데리고 나왔다.

아마도 첫 경기인 만큼 주장이자 핵심인 미드필더를 데려온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기성용은 “그간 대표팀서 좋지 않은 모습들과 결과들이 있었다. 이번 대회가 우리에게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우승이란 목표를 향해 좋은 모습을 보이면 대표팀 위상도 올라갈 것이다. 내일 경기가 첫 단추다. 선수들에게 부담이 되지만 꼭 승점 3점을 따야 하는 이유”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한국은 미드필드를 완전히 장악했고 이후 기성용은 경기마다 승승장구하며 중원을 호령했다.
2차전인 쿠퀘이트 전을 앞두고 대표팀은 이청용을 비롯해 3명의 선수가 오만전 부상을 당했고 손흥민, 김진현은 감기 몸살로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미드필드 자원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 경기 이틀 전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장 인터뷰에서 남태희를 내보냈다. 구자철, 손흥민을 대신하게 된 남태희는 전반 36분 헤딩골을 기록하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남태희 골이 이번 대회 한국의 상승세를 이끌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쿠웨이트 전 하루 앞둔 공식 가지회견에는 차두리를 대동했다. 차두리는 역대 아시안컵에 참가한 한국 선수 중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워 “쑥쓰럽다”고 밝혔지만 이날 쿠웨이트 전에서 활약하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 같은 흐름은 호주 전에서도 이어졌다. 호주 전을 이틀 앞두고 브리즈번 훈련장에서 열린 인터뷰에 이근호와 이정협이 등장했다.

이정협은 앞선 두 경기에서 교체로만 나섰고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를 보여 선발 출전이 불분명했다. 이근호 역시 눈에 띄는 공격력을 보이지 못해 답답함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들은 호주 전에서 결승골을 합작하며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

호주 전 하루 앞둔 기자회견때는 슈틸리케 감독이 곽태휘를 데리고 나왔다. 곽태휘는 훈련 중 부상을 당해 1, 2차전에 결장했다.

그러나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여기 곽태휘가 왔다는 것은 오늘 밤 아프거나 하는 일이 없으면 내일 선발 출전한다는 얘기다”라며 못 박았다. 곽태휘는 선발 출전해 늪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며 호주 공격을 분쇄했다.

8강전을 앞두고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장에서는 김진현과 김영권을, 하루 앞둔 공식 기자회견장에는 손흥민을 데리고 나왔다.

특히 손흥민은 감기 몸살로 제대로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심하는 미디어 앞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결국 손흥민은 8강전에서 2골 연속 성공시키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또 김진현과 김영권은 철벽 수비를 구사하며 슈틸리케 법칙을 증명했다.
 

물론 슈틸리케 법칙에 대해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담당자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냉철한 판단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축구대표팀 관계자는 “감독님이 굉장히 섬세하시다. 선수들을 면밀하게 관찰하신다. 그리고는 이 선수가 그런 자리에 나가도 될 상태인지,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확신하면 데리고 나가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한 관계자는 “한국인 지도자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활약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보통 배려 차원에서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면서 “감독님은 오히려 그런 선수들에게 더 강력한 동기부여와 책임의식을 심어준다”고 덧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아시안컵에서 축구대표팀은 스스로 어수선한 모습들을 지워나가며 2018년을 향한 희망을 만들고 있다.

더욱이 슈틸리케 감독의 세심한 관찰과 판단 속에 연출되는 과감함은 한국축구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극대화를 위해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또 월드컵 준비를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발굴하고 있다는 점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신의 한 수가 돋보인다. 더욱이 일정 중 핵심 자원들의 부상으로 전력에 차질을 빚었지만 큰 흔들림 없이 꾸준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은 슈틸리케 감독의 뚝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최종 결과에 따라 비난의 목소리도 쏟아질 수 있지만 슈틸리케가 공약한 성공적인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흔들림 없는 진화를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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